보이지 않는 살인자 (9)

by 온실라

관장실을 나온 노아와 정민은 일단 사무실을 나서기로 했다. 드디어 사건 현장인 서관 1층 비상계단 입구 안으로 가보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사무실을 나서기 무섭게 정민은 주위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다음, 덤빌 듯이 노아에게 물었다.


“어떻게 알았어?”


“뭘요, 선배?”


“7월 전시회. 이하윤 작가 단독 전시회였다는 거. 어떻게 알았어?”


이번 사건이 터지기 전까지 노아는 하윤이 누구인지조차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어떻게 도훈이 끼어들려고 했던 전시회가 본래 하윤의 단독전시회라는 것을 안 걸까. 김준호 관장에 의하면 이 전시회는 화랑관에서도 극비로 진행하고 있었던 것 같은데.


“때려맞추기였어요.”


노아는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저도 확신은 없었어요. 그런데 어제 강훈 형사님한테 들은 이야기가 좀 이상해서 말이에요. 그래서 혹시 했는데 진짜 그랬던 거네요.”


“어제 들은 이야기? 어떤거?”


정민은 급히 강훈이 어제 공유한 정보 중 하윤에 관한 부분만 곱씹어보았다. 하윤이 화랑관 2층 전시장을 떠나지 않고 계속 맴돌았기 때문에 용의선상에 오르긴 했지만 2층을 벗어난 적은 없었다는 이야기. 그뿐이었다.


“그 이하윤 작가란 분 아직 직접 만나서 이야기해본 건 아니니까 확신할 순 없지만,”


어쩔 수 없다는 듯 노아가 설명했다.


“굉장히 독특한 성격의 소유자인 것 같아요.”


“그래.”


정민도 바로 동의했다.


“그건 나도 알아. 하지만 예술가인데다 천재니까…….”


“그렇죠.”


노아가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더니 갑자기 덧붙였다.


“그러니 좀 나르시스트적인 면이 있더라도 이해할만하죠.”


“뭐?”


정민이 황당하다는 듯 되물었다.


“나르시스트라니? 누가? 이하윤 작가가?”


“나르시스트인지까지는 모르겠어요. 하지만 그런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뭘 보고? 아니, 애초에 넌 아직 이하윤 작가를 보지도 못했잖아.”


정민은 이맛살을 찌푸려가면서까지 열심히 따졌다. 하윤과 딱히 개인적 친분은 없었지만, 한국 미술계에 새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천재 화가가 문외한인 노아에게 비난을 받는 것 같아 변호하고 싶은 마음이 든 것이다.


정민이 민감하게 반응하자 노아도 난처해보이는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정민은 노아가 그저 상황에 맞는 리액션을 취하는 것일 뿐 사실 속으로는 전혀 흔들리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노아는 웃는 얼굴로 설명을을 시작했다.


“전 당연히 이하윤 씨를 모르죠. 제가 틀렸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구요. 만약 나르시스트라는 단어 선택이 부적절했다면 사과할게요. 다만 어제 그 사람이 화랑관에서 보인 행동은, 굉장히 이상하게 느껴졌거든요.”


“이하윤 작가가 어제 화랑관에서 보인 행동?”


그러니까 화랑관 2층 전시관에만 계속 머물렀던…… 정민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건 사실 정민도 이상하다고 생각하긴 했다. 하지만 고작 그 정도 사실에서 노아는 하윤이 7월 전시회에 단독으로 참가할 예정이었다는 걸 어떻게 알아낸 걸까.


“이하윤 씨는 화랑관의 초대를 받고 주환 작가님의 전시회 겸 프라이빗 파티에 왔어요. 하지만 그는 파티는 거의 참석하지 않았죠. 끝나기 직전에 얼굴을 비춘 정도가 전부였어요. 파티에 참석해 사람들과 교류하는 게 목적이 아니었다는 거죠.”


“그렇지.”


“그럼 전시회 관람이 목적이었을까요? 그것도 아니었어요. 언뜻 그렇게 보이지만요. 만약 이하윤 씨가 주환 작가님의 작품들을 감상하게 목적이었다면 화랑관 2층에만 머물지 않았겠죠. 서관 1층에도 좋은 작품들이 많이 전시돼 있었잖아요?”


“......그렇지.”


정민은 점점 미궁에 빠지는 기분이 들었다. 노아의 말대로였다. 어젯밤 하윤은 주환의 작품을 감상하는 것도 아니었고 사람들과 만나는 것도 아니었다. 그럼 대체 하윤은 어제 왜 화랑관에 왔고, 또 왜 계속 화랑관 2층만 왔다갔다 했단 말인가?


“강훈 형사님이 그렇게 얘기했을 때 전 생각했어요. 이하윤 씨는 대체 뭘 하고 있었던 걸까. 무슨 이유로 그런 행동을 한 걸까. 그러다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는데, 확실하지는 않았어요. 그래서 방금 관장님께 한 번 확인해봤는데 운좋게 맞아 떨어진 겁니다.”


“생각이라니? 어젯밤 이하윤 작가가 2층에 계속 있었던 이유가 뭔데?”


“그 사람은요, 선배.”


다시 생각해도 어이없다는 듯 노아가 피식 웃었다.


“자기 전시회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뭐?”


바로 이해하지 못한 정민이 되물었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노아가 설명을 계속했다.


“말 그대로에요. 이하윤 씨는 주환 작가님의 작품들을 보고 있지 않았어요. 화랑관 2층, 중앙관과 동관, 서관 2층에 전시될 자신의 작품들을 보고 있었던 거예요. 어디에 어떤 작품을 걸까, 어디가 좋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요. 자신만의 상상의 나래에 푹 빠져서 거의 2시간 가까이 화랑관 2층을 계속 돌아다녔던 겁니다.”


“.......”


“이제 알겠어요? 왜 제가 그 사람이 나르시스트적인 성향이 있는 것 같다고 했는지? 남의 전시회에 와서 작품을 감상하는는 게 아니라 그 공간에 자기 작품을 어떻게 전시할까만 골몰하는 화가라니…… 천재 예술가들 중에서도 흔한 유형은 아닐 것 같은데?”


“.......”


정민은 할 말을 잃었다. 노아의 말이 사실이라면 하윤이 확실히 자기도취적 성향이 있다고 밖에 볼 수 없을 것 같았다. 물론 전부 노아의 추론에 불과했지만, 노아는 이 추론에 근거해 하윤이 화랑관과 전시회를 준비하고 있을 것이란 걸 꿰뚫어보았다.


“그렇지만 그것만으로 7월에 특별 전시회를 계획하고 있다는 건 어떻게 안 거야?”


“그건 진짜 순수한 게스에요.”


노아가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근거가 아예 없던 건 아니지만. 본인 작품들을 어떻게 전시할지 벌써 그렇게 구체적으로 상상할 정도라면 꽤 근시일 내에 전시회가 잡혀있는 게 아닐까? 그렇게 추정정한거죠. 그래서 주환 작가님의 전시회 바로 다음이 아닐까 추측한 거구요.”


“그럼 단독전시회라는 건 어떻게?”


“화랑관 2층 전체를 계속 돌았잖아요. 그 공간을 본인이 다 쓸 거라는 거죠. 단체전시회라면 한 작가에게 그 정도로 큰 공간을 다 주겠어요?”


“하지만 하윤 작가가 서관 1층을 가지 않았다는 건…….”


노아의 추리대로라면 그 공간은 다른 누군가에게 할애됐다는 의미다. 아! 정민도 깨달았다.


“......설마 서관 1층은 도훈 작가에게……?”


“즉, 화랑관은 피해자의 무리한 요구를 거절하지 못하고 받아들이는 쪽으로 갔다고 생각할 수 있죠.”


거기까지 알아낸 정민이 기특하다는 듯 웃으며 노아가 말을 이었다.


“분명 이하윤 씨에게 먼저 양해를 구했겠죠? 이하윤 씨는 단독 전시회를 피해자와 함께 하는데 동의한 것 같구요. 다만 조건을 건 것 같아요. 2층 전시관은 전부 자신이 쓰고, 1층 서관에만 피해자의 작품을 전시하는 것으로요. 어쩌면 어젯밤 있었던 미팅은 화랑관에서 피해자에게 이하윤 씨의 조건을 알려주기 위함이 아니었을까요?”


“그렇다면…….”


끙. 정민은 자신도 모르게 신음소리를 내뱉었다. 하윤의 단독전시회를 훼방한 도훈도 도훈이지만, 하윤도 어지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뜩이나 하윤에 대한 열등감으로 불타는 도훈이다. 둘이 같이 전시회를 하는데 하윤에게는 2층 전체를 통째로 내주고, 도훈에게는 서관 1층만 쓰게 한다면 과연 도훈은 그 대우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사람들은 또 어떻게 생각할까.


“도훈 작가 성격상 절대 받아들였을 리 없는 조건인 것 같은데.”


“실제로 미팅은 금방 끝났죠. 관장님도 결정된 것은 없다는 투로 얘기했구요.”


노아가 맞장구를 쳤다.


“다만 딱 한 명, 이 일에 관해 다르게 얘기한 사람이 있었죠?”


“다르게 말한 사람? 누구?”


“안세민 씨요.”


노아가 즐겁다는 듯 히죽였다.


“피해자와 마지막으로 통화한 사람이기도 하죠. 강훈 형사님 말로는 피해자는 안세민 씨에게 자신의 전시회 참여가 확실시됐다는 투로 얘기했다고 했죠? 그건 과연 뭐였을까요?”


“글쎄…….?”


정민은 고개를 갸웃했다. 세민이 거짓말을 한 걸까? 무엇을 위해? 세민이 거짓말을 한 게 아니라면 설마 도훈이 그 굴욕적인 조건을 받아들였다는 걸까? 아니다. 도훈이 받아들였다면 김준호 관장이 아무 것도 결정된 것이 없다고 말했겠는가? 그럼 도훈은 그저 자신만만했던 걸까? 본인이 무엇을 요구하더라도 화랑관이 결국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만약 그것도 아니라면……?


“2층으로 가죠, 선배.”


엘리베이터를 잡으며 노아가 말했다. 딴생각에 빠져 있던 정민은 눈을 깜빡이며 노아를 돌아보았다. 서관 1층으로 가는 게 아니었나? 그렇다면 1층으로 내려가서 가는 게 더 빠를 텐데.


“경찰이 뽑은 유력 용의자들의 동선 좀 확인해볼까 해서요.”


정민의 생각을 눈치챈 노아가 말했다.


“말이 나온 김에 이하윤 씨부터요. 어때요?”


“알았어.”


정민은 납득했다는 듯 바로 동의했다. 두 사람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동관 2층에 내렸다. 그리고 서관 2층 전시관을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전시관은 변함없이 주환의 훌륭한 그림들로 가득했다. 하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정민은 그림들에 눈길이 잘 가지 않았다. 노아는 그림들 쪽은 아예 보지도 않는 것 같았다. 다만 쉼없이 천장 부근만 갸웃거리고 있었다. 정민은 노아가 2층에 설치된 CCTV들의 위치를 하나 하나 체크하고 있음을 알아챘다.


“그림들이 있는 전시장 내부에는 CCTV가 여러개 설치돼 있네요.”


노아가 중얼거렸다.


“하지만 아까 엘리베이터 내릴 때 확인했을 때 복도에는 따로 설치된 게 없는 것 같았는데. 그럼 1층도……?”


그랬던가? 노아의 말에 정민도 같이 전시관 내부에 설치된 CCTV들을 하나씩 확인해보았다. 동관과 중앙관 2층을 통과해 서관 2층의 모퉁이를 돌고나서야 정민은 노아가 옳았음을 알 수 있었다. 길게 쭉 뻗은 복도에는 CCTV가 전혀 설치돼 있지 않았다. 다만 복도 양 옆의 공간에는 주환의 그림들이 전시돼 있었기 때문에 CCTV가 제대로 설치돼 있었다. 즉, 관객들이 작품을 관람하기 위해 이동하는 경로에 한해서는 CCTV 사각지대가 존재하는 셈이었다.


“서관 1층과 동관 1층도 비슷하겠죠?”


노아가 물었다. 정민은 확답하진 못했지만, 아마 같은 구조일 거라고 생각했다. 서관 2층 복도 끝까지 걸어가본 두 사람은 다시 서관 2층 엘리베이터 앞으로 돌아왔다. 옆에는 보기만 해도 무거워보이는 비상계단 입구용 철문이 있었다. 노아는 아래층으로 내려가기 위해 엘리베이터 아래쪽 화살표 버튼을 눌렀다. 마침 엘리베이터는 4층에 멈춰있었는데, 노아가 버튼을 누르자마자 바로 내려오기 시작했다.


“10초도 안 걸리네요.”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는 것을 보며 노아가 뜬금없이 한마디 했다. 정민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지만, 노아가 하윤에 이어 수민의 동선을 체크하고 있음을 눈치챘다. 두 사람은 엘리베이터에 올라타 1층을 눌렀다. 마찬가지로 10초도 안 걸려 1층에 도착했고 두 사람은 바로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엘리베이터 왼쪽의 철문은 활짝 열려있었고 폴리스 라인이 쳐져있었다. 앞에는 경찰관 한 명이 지키고 있었는데 노아와 정민을 보고 흠칫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노아가 이름을 밝히자 바로 인상을 풀었다. 그렇지만 당부의 말은 잊지 않았다.


“현장이 훼손되지 않도록 주의부탁드립니다.”


그런 것치곤 너무 아무 것도 없다고 정민은 생각했다. 비상계단 안쪽은 어젯밤 정민이 이용했을 때와 달라진 점이 아무 것도 없었다. 단 하나, 회색빛 바닥에 그려진 하얀 시체 윤곽선을 제외하면 말이다. 도훈이 저기 쓰러져 있었구나. 정민은 순간 헛구역질이 올라올 것 같은 기분을 애써 억눌렀다. 시체 윤곽선을 보자 문득 창백한 얼굴로 쓰러져 죽어있는 도훈의 모습이 영화의 한장면마냥 머릿속에 떠오르고만 것이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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