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인들 (5)

by 온실라

“감사합니다.”


아무 것도 눈치 채지 못한 것처럼 노아가 말했다. 그러고는 조금 조심스러운 투로 말을 이었다.


“그리고 조금 민감한 질문일 수 있습니다만…….”


“예, 말씀하시죠.”


“사건 당시의 알리바이를 알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경찰에 의하면 사망추정시간이 오후 7시 47분에서 10시 사이라고 하더군요.”


“오후 7시 47분…… 저는 계속 동관 1층 라운지에 있었습니다.”


대답하는 세민의 목소리도 덩달아 조심스러워졌다.


“파티에 참석하신 분들이 불편한 점이 없도록 제가 관리하고 있었으니까요. 그때쯤에는 참석자분들이 대부분 식사를 마치고 라운지로 이동했을 때니까 저도 같이 이동했을 겁니다. 파티가 끝날 때까지 라운지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9시쯤 우현 부관장, 그리고 수민 큐레이터님과 같이 짤막하게 회의를 했습니다. 대단한 건 없었어요. 그 후에는 케이터링 업체와 직원들과 함께 연회장과 라운지를 정리하고…… 다 끝난 다음 10시쯤 퇴근한 것 같습니다.”


“아, 그럼 김준호 관장님보다 빨리 퇴근하셨군요?”


“예. 관장님께서 기다리지말고 먼저 퇴근하라고 하셔서…… 전 먼저 퇴근했습니다. 우현 부관장은 남았지만…….”


“그러고 보니 저도 팀장님을 라운지에서 본 기억이 나네요.”


자연스럽게, 동시에 갑작스럽게 노아가 주제를 바꿨다.


“다만 계속 라운지에 계셨던 것 같진 않습니다. 혹시 중간 중간 다른 곳에도 가셨나요?”


“연회장과 라운지만 왔다 갔다 했습니다. 케이터링 직원들에게도 지시를 내려야 할 것들이 있어서요.”


그렇게 대답한 후, 세민은 잠시 머뭇거렸다. 무언가를 말 할지 말지 고민하는 듯했다. 이에 노아는 세민을 안심시킬만한 편안한 미소를 지으며 부드럽게 말했다.


“괜찮습니다, 팀장님. 저희는 팀장님이 생각하시는 것보다 이미 많은 것을 들었습니다. 그것도 관장님께 직접요.”


“.......”


“7월 특별 전시회가 어떤 의미였는지도 물론 알고 있습니다. 관장님께서 그 자리를 빌려 어떤 발표를 하려고 하시고 있었는지도요.”


“.......”


끙. 세민이 짧게 신음을 내뱉었다. 그러고는 한동안 노아를 뚫어지게 쳐다보다가, 불쑥 내뱉었다.


“기자님은 이미 눈치채고 있으셨던 것 같군요.”


“무엇을 말입니까?”


“제가 그 7월 전시회에 대해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 말입니다.”


“어림짐작하고 있을 뿐입니다. 아마 좋은 감정은 아니시겠지요.”


“물론 아닙니다.”


세민이 대답했다. 언성이 살짝 올라간 것이 감정도 함께 격앙된 듯 했다. 정민은 놀라지 않았다. 오히려 세민이 7월 특별 전시회에 대해 아무 생각도 없다고 했다면 더 놀랐을 것이다.


“사실 사적인 이야기도 하고 창피한 이야기이기도 해서 말씀드리려고 하지 않았습니다만…….”


세민이 말하다 말고 입맛을 다셨다. 정민은 날카롭게 빛나는 그의 두 눈이 마치 화가 난 것처럼 보인다고 생각했다.


“우현 부관장과 저는 화랑관 입사동기입니다. 저희 둘 다 관장님 밑에서 기본부터 배웠고 모든 커리어를 여기서 쌓았지요. 그만큼 이곳 화랑관에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화랑관 외에 다른 곳에서 일하는 것은 상상도 해본 적 없을 정도로 말이죠.”


말을 하다 멈추고 세민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순간 정민은 세민이 답지 않게 몹시 쓸쓸하고 처량해보인다고 생각했다.


“우현 부관장과 전 친구이자 동료였고 라이벌이었습니다. 관장님께서 무언가를 저희 둘에게 약속하신 건 아니었지만, 저희 둘 다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죠. 관장님께서 은퇴하시면 이 화랑관을 물려받는 건 저나 우현 부관장, 둘 중 하나가 될 거라구요. 그리고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관장님의 뒤를 이어 화랑관의 관장이 되는 것이 저의 꿈이자 목표였습니다. 그 목표 하나만을 보고 일하며 지금까지 달려왔지요. 그리고 이미 다 관장님께 들으셨겠지만…… 후계자 경쟁의 승리자는 우현 부관장입니다. 전 패배했지요.”


“그렇군요.”


깊게 공감한다는 듯 노아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이 많이 안 좋으셨겠군요.”


“안좋았죠.”


세민이 내뱉었다.


“오해는 하지 마십시오. 우현 부관장이 아니라 제가 됐어야만 했다 이런 얘기를 하는 건 아닙니다. 우현 부관장의 능력이나 실적은 저와 비교해도 전혀 모자람이 없으니까요. 어디까지나 관장님의 선택이신 거죠. 그리고 전 그 선택을 받아들였습니다. 다만…… 인간적으로 아직 어려운 마음이 들긴 합니다.”


그렇게 말하며 세민이 잠시 눈을 감았다. 하지만 말은 끊지 않고 계속했다.


“그제도 그랬습니다. 도훈 작가님이 화랑관에 찾아오고 제가 맞이했죠. 하윤 작가님을 보러 갔다기에 무슨 사고라도 칠까 싶어 헐레벌떡 2층으로 갔지요. 가서 관장님께서 도서관에서 기다리고 계시다고 전했죠. 하지만 제 역할은 거기까지였습니다. 도훈 작가님과 관장님 사이에 무슨 일이 있는 것인지, 무슨 대화가 오가는 것인지 알지도 못했죠. 반면 우현 부관장은 도훈 작가님과의 미팅에 참여했구요. 우현 부관장이 앞으로 화랑관을 책임질 사람이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겁니다만…… 속으로 참 씁쓸하더군요. 솔직히 일할 맛이 나지 않았습니다.”


노아는 말없이 세민의 독백 같은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정민도 가만히 세민의 다음 말이 이어지기를 기다렸다. 세민이 말을 이었다.


“그제 파티 총괄로서 제 역할은 직원들을 잘 관리해 파티가 부족한 점 없이 진행되도록 하는 것만이 아니었습니다. 파티에 참석하신 높으신 분들과 만나 화랑관을 대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업무 중 하나였죠. 하지만 그날은 정말 사람들을 만나 떠들 기분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군요. 그럼 어떻게 하셨나요?”


“파티가 원활하게 진행되도록 가끔 직원들을 만나 체크하는 것 외에는 계속 숨어있었습니다.”


세민이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사실 케이터링 직원이나 저희 직원들이나 이런 파티에 익숙했기 때문에 제가 일일히 다 지시사항을 내릴 필요도 없었지요. 제대로 일하고 있는지 가끔 체크하면 충분했으니까요. 그런 때를 제외하면 컨디션이 안 좋다는 핑계를 대고 라운지의 방 중 하나에 틀어박혀있었습니다. 도훈 작가님에게 전화를 받았을 때도 방에 혼자 있었습니다. 일이 바쁘다는 건 거짓말이었지요. 그저 도훈 작가님을 상대할 기분이 아니라 그냥 내일 연락하겠다고 미룬 겁니다. 그게 설마 이렇게 될 줄은…….”


세민이 다시 한 번 말끝을 흐렸다. 정민은 조금 전보다는 세민이 진심을 담아 안타까워하는 것 같다고 느꼈다. 만약 세민이 도훈의 전화를 받고 바로 도훈을 만났다면, 도훈은 살해당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도훈의 죽음에 세민의 책임이 있다고 할 수는 없지만, 보통의 사람이라면 도의적으로라도 무거운 감정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다.


“알겠습니다.”


세민의 감정에 깊이 공감한다는 듯 노아가 연거푸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넌지시 물었다.


“그렇다면 팀장님은 파티 중에 동관 1층을 벗어난 적이 없다고 생각해도 되겠습니까?”


“예, 계속 동관 1층에 있었습니다.”


세민이 즉답했다.


“파티 중에는 거기서 벗어난 적이 없습니다. 어쨌든 제가 책임자니까요. 자리를 아예 비우기는 어려웠죠.”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노아가 화답했다.


“바쁘실 텐데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저야말로 감사합니다. 저희 미술관에 이런 사건이 일어나다니, 정말 끔찍합니다.”


자리에 일어서며 세민이 가볍게 진저리를 쳐보였다. 그리고 노아를 보며 살짝 웃었다.


“기자님에 대한 소문을 들었습니다. 꼭 사건의 범인을 잡아주시길 바랍니다.


“노력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감사합니다, 팀장님.”


노아도 자리에 일어났다. 노아와 세민은 악수를 했다. 정민도 엉거주춤 자리에 일어났지만, 세민과 악수는 하지 않고 목례만 하고 헤어졌다. 노아와의 대화를 마친 세민은 후련하다는 듯 당당히 카페를 나갔다. 노아는 그런 세민의 뒷모습을 한동안 바라보다가, 이윽고 정민에게로 시선을 돌리며 미소를 지었다.


“어땠어요, 선배?”


“뭐가?”


“안세민 씨요. 어느 정도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안세민 씨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


“아뇨. 아직은요.”


노아가 대답했다.


“안세민 씨의 이야기는 매우 조리있고 논리적이에요. 말이 안 되거나 이상한 점은 없었어요. 다만…….”


“다만?”


“.......”


노아는 정민의 반문에 답하지 않았다. 혼자만의 생각에 빠진 것 같았다. 정민도 굳이 묻지 않았다. 사실 정민은 세민을 용의자 중 하나로 의심하고 있지 않았다. 정민이 보기에 결국 중요한 사실은 하나였다. 세민이 내내 동관 1층에 있었다는 것. 그렇다면 세민이 CCTV에 찍히지 않고 서관 1층까지 이동하는 건 불가능하다. 즉, 세민은 범인이 될 수 없는 것이다.


반면 CCTV에 찍히지 않고 서관 1층까지 이동이 가능했을지도 모르는 사람과의 인터뷰가 곧 시작된다. 차가운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정민은 한 남자를 상상했다. 다부진 체격에 안경을 쓴 각진 얼굴의 남자. 정민은 의자 등받이에 깊숙히 등을 기댔다. 몸이 살짝 긴장되면서 짜릿한 흥분감 같은 것이 뱃속에서부터 올라왔다.


가장 유력한 용의자는 정우현이다. 정민은 그렇게 생각했다. 단순 감이 아니다. 모든 정황이 다 그렇지 않은가?








우현과의 만남은 동관 1층 라운지에서 이뤄졌다.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던 노아와 정민에게 화랑관 직원 중 한 사람이 와서 우현의 메시지를 전했고, 이에 응해 두 사람은 바로 동관 1층 라운지로 이동했다. 그때가 11시 50분이 조금 넘었을 때였다. 우현은 12시에 딱 맞춰서 라운지에 나타났는데, 한쪽 구석에 앉아 있는 노아와 정민을 바로 발견하고 다가왔다. 노아는 미소를 띤 채 일어났다. 두 사람은 악수를 했다.


“정우현입니다.”


“서노아라고 합니다. 바쁘실 텐데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우현과 정민은 구면이었기 때문에 서로에게 짧게 고개만 숙여보이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세 사람은 거의 동시에 자리에 앉았다. 우현은 석상처럼 딱딱한 얼굴로 말했다.


“재촉하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일이 있어서 점심 시간이 끝나기 전까지는 사무실에 돌아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양해부탁드립니다.”


“물론입니다. 그렇게 오래 걸리진 않을 것 같습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노아가 얼른 대답했다. 노아는 시종일관 특유의 부드러운 미소를 띠고 있었다. 노아를 마주하는 사람의 경계를 누그러뜨리고 안심시키는 평온한 미소였다. 하지만 우현은 계속해서 뚱한 무표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정민은 그 모습이 은근히 재미있었다. 노아의 살가움이 전혀 통하지 않는 인간을 드디어 발견한 것 같았다.


가까이서 본 우현은 생각보다 더 큰 체격의 소유자였다. 키도 180 중반 가까이 돼보였고, 떡 벌어진 어깨는 수영선수를 연상케했다. 정민은 우현을 곁눈질로 살피며 그가 이것저것 섞여있는 사람 같다고 생각했다. 안경 쓴 무표정한 얼굴은 공부벌레 같은 느낌을 주었지만, 그의 덩치는 꼭 운동하는 사람 같았다. 그런데 정작 일은 예술 쪽에 속해있다니. 그것도 이 화랑관의 다음 관장 내정자라니! 어지간한 미술적 감각과 지식이 없이는 성취할 수 없는 자리다. 조금 전 만난 세민도 그랬지만, 우현 역시 한국 미술계에서 손꼽히는 젊은 인재 중 하나 라고 할만 했다.

월요일 연재
이전 23화증인들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