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경찰에 진술하신 걸로 알지만, 한 번 더 확인하고 싶습니다.”
노아가 매우 조심스럽게 질문을 시작했다.
“피해자의 사망시각은 7시 45분에서 10시 사이라고 합니다. 당시 부관장님의 알리바이를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7시 45분에는 아직 도서관에 있었을 겁니다. 도훈 작가님과 미팅이 있었지요.”
우현도 천천히 대답을 시작했다.
“도서관에는 5분 정도 더 있었을 겁니다. 이후 관장님과 서교수님께 인사를 드리고 나왔지요. 원래대로라면 연회장으로 돌아가야 했지만, 해야 할 일이 갑자기 생각나 사무실로 갔습니다. 가서 일을 하고 있는데 가족에게 전화가 오더군요.”
“들었습니다. 따님에게서 전화가 왔었다지요?”
“그렇습니다.”
딸을 언급하자 우현의 얼굴이 조금 부드러워졌다. 다섯살난 딸아이의 사랑스러운 모습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 것 같았다.
“아이가 제가 보고 싶다고 아내에게게 떼를 쓴 모양입니다. 아이를 달래려고 화상통화를 했지요. 짧게 끝낼 생각이었는데, 막상 하다 보니 20분이나 지났더군요. 시간을 보니 벌써 8시 반이 넘었습니다. 서둘러 동관 1층으로 돌아갔지요.”
“서두른 이유가 있습니까? 세민 팀장님이 담당하고 있었다고 들었는데.”
“맞습니다. 하지만 세민 팀장에게 다 떠넘기고 있기 미안해서 말입니다.”
우현이 한쪽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동관 1층으로 가니 참석자 분들은 다 이미 라운지로 옮기셨더군요. 저도 라운지로 갔습니다. 가서 주환 작가님과 짧게 얘기를 하고 다른 몇 분들과도 얘기를 나눴지요. 그리고 파티가 끝나는 9시까지 라운지에 있었습니다.”
“세민 팀장님은 보셨나요?”
“봤습니다.”
우현이 바로 대답했다. 하지만 잠시 생각한 후 덧붙였다.
“막 내려갔을 때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직원 중 한 사람에게 물어보니 라운지의 방 중 하나에서 쉬고 있을 테니 일이 있으면 부르라고 했다고 하더군요. 나중에 사람들과 얘기를 하고 있으려니 언제부턴가 라운지에 있더군요. 그때 봤습니다.”
“세민 팀장님이 보통 그런 식으로 일하시나요?”
“보통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현이 쓴웃음을 지어보였다.
“평소에는 굉장히 꼼꼼하고 철두철미하게 일하는 친구입니다. 하지만 그날은 컨디션이 별로였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그러려니 했습니다.”
“그럼 관장님도 세민 팀장님의 그런 행동을 딱히 이상하게 받아들이진 않았군요?”
“일적으로 문제가 된 건 없었으니까요.”
우현이 헛기침을 했다.
“그리고 현재 직급상으로 제가 높긴 하지만 세민 팀장 역시 그 정도 재량은 있는 위치입니다. 제가 뭐라할 문제는 아니지요.”
우현의 미묘한 뉘앙스에서 정민은 우현도 세민이 그날 태만한 태도를 보인 이유를 알고 있음을 눈치챌 수 있었다. 엄밀히 말해 우현은 경쟁의 승리자였지만 마냥 편해보이진 않았다. 세민의 말대로 동기이자 친구로 오랜 세월 함께 해왔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파티 참석자분들이 전부 떠나시고 난 다음에는 수민 큐레이터님과 짧게 미팅을 가졌습니다. 이후 뒷정리를 하고…… 10시 좀 넘어서 퇴근했습니다.”
“혹시 관장님께 찾아가지는 않으셨나요? 그때까지 계속 도서관에 있으셨다고 들었는데.”
“연락은 드렸습니다. 하지만 도서관에 가진 않았습니다.”
우현이 말했다.
“뒷정리가 다 끝났고 혹시 더 필요하신 게 있으신지…… 없으니까 먼저 퇴근하라고 하시더군요. 그래서 먼저 퇴근했습니다.”
“혹시 퇴근한 시간을 정확히 기억하시나요?”
“확실하진 않습니다만 10시 15분쯤일 겁니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노아가 꾸벅 고개를 숙여보였다. 우현은 이제 끝났다고 생각했는지 한시름 놓은 얼굴이었다. 하지만 이어진 노아의 말에 다시 표정이 굳었다.
“지금부터 묻는 질문들은 정말 민감한 질문들이니 불편하시면 답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진심으로 죄송스럽다는 듯 노아는 거의 사과하는 어조였다.
“그날 피해자와 함께 한 미팅…… 혹시 그 내용을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그건 어려울 것 같은데요.”
우현이 칼 같이 거절했다. 하지만 노아는 포기하지 않았다.
“7월에 열릴 특별 전시회 관련 내용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윤 작가님의 단독 전시회였죠? 김준호 관장님은 그 전시회에서 중대발표를 계획하고 계셨구요.”
“그걸 어떻게…….”
노아의 말에 우현은 깜짝 놀란 것 같았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노아가 더욱 우현을 몰아붙였다.
“피해자가 무리하게 이 전시회에 참여를 요구한 것으로 압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관장님은 이를 딱 잘라 거절하지 못하셨구요. 그때문에 주환 작가님을 위한 파티가 열리는 밤에도 피해자와 미팅을 가지셔야 했지요. 심지어 그 자리에는 화랑관 관계자가 아닌 저희 작은 아버지도 계셨죠.”
“서교수님이 기자님 작은 아버지십니까?”
우현이 다시 한 번 놀랐다는 제스처를 취했다. 하지만 노아는 흔들리지 않고 던졌던 질문을 밀고 나갔다.
“그 미팅에 관장님이 참석을 허락한 다른 한 사람은 바로 부관장님이십니다. 여기에도 분명 저희가 모르는 어떤 이유가 있겠죠.”
우현과 눈을 맞추며 노아가 설득조로 말을 계속했다.
“피해자는 이 미팅이 끝난 직후, 모습을 감췄고 다음날 살해당한 채 발견됐습니다. 분명 그날의 미팅과 이번 사건 사이에 밀접한 관계가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날 미팅에서 피해자와 어떤 말이 오갔는지 알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
노아의 호소에 우현은 잠시 고민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시간은 오래가지 않았다.
“기자님이 제게 물어보신다는 건, 관장님께서 기자님에게 그 내용을 가르쳐주시지 않았다는 뜻이겠죠.”
우현이 무거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저 역시 이에 관해 기자님께 어떤 말씀을 드리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만약 이야기를 들으신다면, 관장님께 직접 듣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 말은 피해자의 요청을 거절하지 못한 이유가 관장님과 더 밀접하게 관계 돼있다는 뜻입니까?”
“.......”
날카로운 노아의 질문이었다. 정민의 귀에는 공격적으로까지 들렸다. 하지만 우현은 대응하지 않았다. 입을 다물어버릴 뿐이었다. 마치 묵비권을 행사하는 것 같다고 정민은 생각했다.
“혹시라도 제 질문에 기분이 상하셨다면 용서해주십시오.”
노아가 재빨리 사과했다. 우현은 이에도 가타부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노아는 팽팽한 긴장의 끈을 놓지않겠다는 듯 새로운 질문을 던졌다.
“부관장님이 화랑관의 마스터키를 관리한다고 들었습니다. 평소 가지고 다니십니까?”
“......아닙니다.”
침묵을 깨고 우현이 대답했다. 노아의 이번 질문은 대답해도 문제가 없다고 판단한 것 같았다.
“제 방에 있습니다. 서랍에 넣어놓고 있지요. 보통 쓸 일이 자주 있진 않습니다.”
“그렇군요.”
노아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새로운 질문을 던졌다.
“다른 직원들도 부관장님이 마스터키를 관리하신다는 걸 알고 있지요?”
“예. 알고 있습니다. 필요할 때는 제게 와서 받아가지요.”
“그렇다면 모두 마스터키가 부관장님의 방에 있는 것도 알고 있겠군요?”
“예. 대부분 알고 있을 겁니다.”
“부관장님이 키를 정확히 어디에 넣어 보관하는지도 다들 알고 있나요?”
“글쎄요.”
우현이 이상하다는 듯 노아를 보며 대답했다. 그는 노아가 마스터키에 대해 캐묻는 이유를 전혀 짐작하지 못하는 듯했다.
“몇 명은 알고 있을지도 모르지요. 제가 어느 서랍에서 마스터키를 꺼내는지 본 사람들도 있을 테니까요. 그런데 이건 왜 물어보시는 겁니까?”
“개인적인 궁금증입니다.”
노아가 넉살좋게 웃어보였다. 우현의 질문을 제대로 답하지 않고 넘어가려는 것이었다.
“정말 쓸데 없지만 개인적인 궁금증이 또 있습니다. 혹시 오늘 저녁 비가 올 예정이란 걸 알고 계신가요?”
“알고 있습니다.”
우현이 대놓고 인상을 찡그리며 대답했다. 우현의 표정에서 정민은 노아의 의미없는 질문의 연속에 그가 슬슬 짜증을 느끼고 있음을 읽을 수 있었다.
“혹시 어떻게 알았는지 물어봐도 될까요? 평소 날씨를 자주 체크하시는 편인가요?”
“아닙니다.”
우현이 차갑게 대답했다.
“아내가 오늘 아침에 우산을 주더군요. 저녁에 비가 온다고 예보가 있으니 챙겨가라구요. 전 평소 날씨를 체크하지 않는 편입니다.”
“그렇다면 어제 비 예보가 있었다는 사실도 몰랐겠군요.”
“몰랐습니다.”
우현이 즉답했다. 그러고는 바로 덧붙였다.
“혹시 더 물어보실 게 남았습니까? 이제 슬슬 돌아가봐야 할 것 같아서요.”
“딱 한 가지만 더 물어보겠습니다.”
우현은 그만 미팅을 끝내고 싶다는 심정을 대놓고 드러내고 있었지만 노아는 끄떡도 하지 않았다. 뻔뻔한 미소와 함께 노아가 물었다.
“경찰에게 이미 들으셨겠지만, 이번 사건에서 범인의 모습이 화랑관 내부 CCTV에 찍히지 않았습니다. 혹시 화랑관 안에서 CCTV를 피해 이동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까? 비밀통로라거나?”
“없습니다.”
노아의 마지막 말에 우현은 거의 실소를 터뜨릴 뻔한 것 같았다. 정민은 우현이 처음 노아와 대화를 시작했을 때보다 훨씬 적대적인, 거의 경멸 어린 시선으로 노아를 보는 것 같다고 느꼈다.
“당연히 사각지대는 있습니다. 하지만 사각지대만 골라 이동할 수 있는 길 같은 건 없습니다. 비밀통로도 당연히 없구요. 다만,”
우현이 순간 멈칫했다. 잊고 있던 기억이 갑자기 떠오른 사람 같았다.
“4층은 현재 인테리어를 리노베이트 중이라 CCTV가 없습니다. 잠시 치워놓았지요.”
“4층 전부 그렇습니까?”
“예, 4층 전부 그렇습니다.”
우현이 당당하게 대답했다. 뭐가 문제냐는 투였다. 하긴. 정민도 4층에 CCTV가 없다는 게 문제가 될 건 없다고 생각했다. CCTV가 있든 없든 4층에서는 동관에서 서관으로, 혹은 서관에서 동관으로 이동하 수 없다. 이동하려면 3층의 브릿지를 활용하거나 1, 2층으로 내려가는 방법 밖에 없는데 여기에는 CCTV가 없는 곳이 없지 않은가.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부관장님.”
여전히 웃음을 잃지 않으며 노아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미팅이 끝났다는 신호였다. 그제야 우현도 표정을 풀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세민과 달리 그는 노아를 전혀 신뢰하는 눈빛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만약 새로운 질문이 생기면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괜찮을까요?”
“그렇게 하십시오.”
마지못해 우현이 대답했다. 그러고는 대충 인사하고 서둘러 라운지를 벗어났다. 멀어져가는 우현의 등을 보며 노아는 뜻모를 웃음을 짓고 있었다. 정민은 한숨을 쉬었다. 그녀는 여전히 우현을 계속 의심하고 있었지만, 그는 범행이 가능했던 시간대에 사무실에 계속 머물렀다는 철통 같은 알리바이를 가지고 있었다. 그의 가족이 그를 위해 위증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아마도 아닐 것이다. 그의 아내는 몰라도 5살짜리 아이가 경찰에게 거짓말을 할 수 있을 리는 없으니까.
“화랑관에서 만날 사람은 다 만난 것 같네요.”
노아가 정민을 돌아보며 말했다.
“혹시 떠나기 전에 만나보고 싶은 사람 있어요, 선배?”
있었다.
노아와 달리 취조목적으로 만나려는 건 아니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