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인들 (3)

by 온실라

노아의 느닷없는 부탁에 안내데스크 직원들은 처음에는 망설이는 기색을 보였다. 하지만 노아가 이미 김준호 관장으로부터 직원들을 인터뷰할 수 있는 허가를 받았다는 것을 부드럽게 설명하자 조금 안심한듯 평소의 미소를 되찾았다. 우현과 세민에게는 남자직원이 전화를 걸어주었다. 내선전화로 두 사람과 통화한 남자직원은 얼마 지나지 않아 노아에게 둘의 답변을 전달했다.


“두 분 다 가능하다고 하십니다.”


남자직원이 말했다.


“세민 팀장님은 15분 후에 로비로 직접 오겠다고 하셨습니다. 부관장님은 점심 때밖에 시간이 안 되실 것 같다고 12시쯤에 보자고 하시네요. 괜찮으실까요?”


“예, 좋습니다.”


노아가 싱글벙글 웃으며 답하자 남자 직원은 바로 다시 수화기에 대고 낮은 목소리로 뭐라 뭐라 중얼거렸다. 직후, 남직원은 수화기를 내려놓고 노아에게 세민이 곧 내려 올 거라고 말했다. 자신의 임무는 끝났다는 듯 한결 후련한 얼굴이었다.


“감사합니다.”


노아도 더 이상 볼 일이 없다는 듯 감사인사를 했다. 그러다가 기습적으로 두 직원에게 물었다.


“두 분은 그제 파티 때도 여기 안내데스크에 계시지 않으셨나요?”


“예, 그랬습니다.”


얼떨결에 남자 직원이 대답했다. 그의 눈은 다시 불안한 빛을 띠고 있었다. 아무래도 이 사건과 엮이고 싶지 않은 맘일 것이라고 정민은 짐작했다.


“그제도 저희가 안내데스크를 맡았지요. 왜 그러십니까?”


“대단한 건 아닙니다. 아무래도 두 분 낯이 익어서요.”


처음 화랑관에 도착했을 때부터 눈치채고 있었으면서 마치 방금 깨달은 사람처럼 노아가 너스레를 떨었다. 정민이 직원들의 눈치를 살펴보니 두 사람도 노아의 말을 믿는 눈치가 아니었다. 하지만 노아는 천연덕스럽게 그들에게 계속 말을 걸었다.


“혹시 두 분은 성함이 어떻게 되시나요?”


“전 황영문이라고 합니다.”


“이다혜입니다.”


여직원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남자 직원 영문보다는 훨씬 침착한 투였다. 노아가 또 물었다.


“두 분은 원래 안내데스크 담당이신가요?”


“.......”


영문이 뭔가 대답하려다말고 멈칫했다. 곤란해보이는 눈치였다. 반면 다혜는 바로 대답했다.


“예, 그렇습니다.”


“.......”


영문은 아예 입을 다물었다. 말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판단한 것 같았다. 정민은 그런 영문의 반응에 기묘한 느낌을 받았다. 단순히 이번 사건과 관계되고 싶지 않은 마음에서 보이는 반응이라고 하기엔 과한 것 같았다.


그제야 정민은 처음으로 안내데스크 직원들을 자세히 관찰했다. 다혜는 이제 20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단아한 분위기의 여자였다. 그녀는 꽤나 예쁜 얼굴의 소유자임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눈에 띄는 스타일은 아니었는데 그건 그녀의 외양과 분위기가 화랑관 같은 대형 전시관이나 미술관 직원의 교과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전형적이었기 때문이다. 직업 특성상 다혜와 같은 여직원들을 자주 보는 정민 입장에서는 그녀와 화랑관의 다른 여직원들을 바로 구분하기가 쉽지 않게 느껴질 정도였다.


반면 영문은 특색이 있었다. 일단 그는 최소 30대 초반으로 추정됐다. 안내데스크 직원치고는 나이가 꽤 많은 편인 것 같았다. 그리고 그는 중키에 통통한 체형이었는데 샴페인 색의 큰 뿔테안경을 쓰고 있었다. 일반적인 안경이 아니라 뽐내기에 적합한 패션안경이었다. 보통의 안내데스크 직원의 외견과 비교하면 확연히 눈에 띄는 차림이었다. 정민은 이런 영문의 모습이 어제는 자신의 눈에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는 사실이 신기하게까지 느껴졌다.


그런데 원래 화랑관에 이런 안내데스크 직원이 있었나?


정민은 순간 고개를 갸웃했다. 지금까지 여러번 화랑관을 방문한 정민이었다. 그리고 그때마다 안내데스크에서 다혜 같은 인상의 여직원을 여럿 본 기억은 있었다. 하지만 남직원, 그것도 영문 같은 직원은 처음 보는 것 같았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안내데스크 직원들에게 큰 관심을 기울여본 적이 없었으니 단순히 기억을 못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정말 별 거 아니니 긴장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몇 가지 여러분께 묻고 싶은 게 있어서요.”


묘하게 불안한 눈치의 영문을 달래려는 듯 노아가 한결 더 부드러워진 투로 질문을 이어갔다.


“아무래도 두분이 그제 중앙관 로비를 계속 지키고 계셨으니까요.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입니다. 화랑관에 수상한 사람이 출입하는 걸 보진 못하셨습니까?”


“못봤습니다.”


영문이 즉답했다. 정민은 대답하는 영문을 보며 자신도 모르게 왼쪽 입꼬리를 한 번 씰룩이고 말았다. 노아의 질문에 영문이 적잖이 안도하는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경찰에게도 이미 말씀드렸지만, 그제 파티에 참석하신 분들 중 초대명단에 없으셨던 분은 없었습니다. 파티에 초대되신 분들 외에는 저희 직원이거나 케이터링 직원인데, 역시 신원이 불분명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렇군요.”


노아가 알겠다는 듯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화랑관으로 들어오는 입구는 여기 하나 뿐이였으니까요. 두 분이 지키고 계셨으니 놓치셨을 가능성은 없겠죠.”


“그렇습니다. 뒷문은 전부 잠겨져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두 분도 자리를 비우실 때가 있지 않으셨나요? 화장실을 갈 때라던가…….”


“물론 가끔 자리를 비울 때가 있었지만, 항상 교대로 했습니다.”


영문이 얼른 대답했다.


“그리 오래 걸리지도 않았구요. 어쨌든 최소한 한 명이 항상 데스크를 지켰습니다.”


“다른 직원들이나 손님들을 돕기 위해 두 분 다 자리를 비우는 일은 없었나요?”


“없었습니다.”


영문이 단언했다. 그러나 곧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반사적으로 노아의 질문에 부정적인 답을 내놨지만, 바로 무언가가 떠오른 듯했다. 그러나 노아는 모른척했다.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그러고는 변명하듯 덧붙였다.


“딱히 두 분을 취재하거나 조사하려는 건 아니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그저 안세민 씨가 내려오기 전까지 궁금했던 점을 확인차 여쭤본 거니까요. 혹시라도 불쾌하셨다면 사과드리겠습니다.”


“아닙니다.”


노아가 저자세로 나오자 영문은 한층 더 당황한듯했다. 영문은 은근히 다혜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다혜는 아무 말도 않겠다는 듯 입을 굳게 다물고 있었지만, 그녀의 침묵은 오히려 그녀가 뭔가를 알고 있다고 암시하는 것 같았다. 정민은 흘끗 노아 쪽을 보았다. 안절부절 못하는 영문의 모습을 눈치채지 못했을 리 없는 노아였지만, 오히려 더 철저하게 모른척하며 영문에게 계속 사과의 말을 하고 있었다. 그런 노아의 태도가 영문을 더욱 부담스럽게 만드는 것 같았다. 곤혹감을 감추지 못한 영문의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사실…….”


결국 영문이 항복했다. 주저하던 영문이 입을 열고 만 것이다.


“그제밤 파티 중에 제가 생각보다 오래 자리를 비우는 일이 있긴 했습니다.”


“그래요?”


매우 의외라는 얼굴로 노아가 되물었다. 이에 영문은 황급히 손을 내저으며 변명을 쏟아냈다.


“별 건 아니었습니다. 예상보다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경찰에도 이미 다 말했구요. 문제될 것은 전혀 없었습니다.”


강훈의 용의자 리스트에 영문의 이름이 없었던 것을 생각하면 확실히 별 일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 그래도 정민은 일단 영문의 다음 말이 이어지기를 기다렸다. 영문은 주절주절 말을 이었다.


“파티가 끝나고 손님들이 떠날 때 나눠드리려고 준비한 팜플렛이 있었는데…… 작은 상자로 두 박스가 준비돼 있었는데 착오로 한 박스만 안내데스크에 전달이 돼서요. 나머지 한 박스는 중앙관 3층으로 잘못 보내졌다고 하더군요. 무대 뒤쪽 비품창고 어딘가에 있을 거라고…… 다시 가지고 와야 하는데 다른 직원들은 다 바쁜 것 같아서…… 다혜 씨에게 제가 가겠다고 하고 중앙관 3층으로 갔습니다. 찾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걸려서…… 20분 좀 넘게 자리를 비웠던 것 같습니다.”


“그러셨군요.”


다 이해한다는 듯 노아가 대답했다.


“혹시 그때가 몇시쯤 있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7시 50분쯤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때부터 한 두 분씩 떠나는 손님들이 계셔서…… 나중에 부족할 수도 있으니 미리 찾아서 가져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랬군요. 알겠습니다.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시 한 번 정중하게 감사를 표하며 노아가 빙긋 웃었다. 정민의 눈에는 영문에 대한 노아의 궁금증이 해소됐다는 신호처럼 보였다. 이후에도 노아는 태연하게 두 직원과 대화를 이어갔지만, 사건과는 별 상관없는 이야기들을 늘어놓았다. 그런 노아의 모습에 다혜는 몰라도 영문은 확실히 안도한 것 같았다. 경찰과 마찬가지로 노아 역시 영문의 행적에 별 의구심을 보이지 않는 것 같았으니까.


그건 정민도 그랬다. 영문이란 존재가 안내데스크 직원치고는 튀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범인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진 않았다. 무엇보다 안내데스크를 떠나있었을 때 중앙관 3층에 있었다고 하지 않은가. 경찰도 분명 CCTV로 영문의 알리바이를 확인했을 것이다. 그리고 별 다른 이상한 점이 없으니 그를 용의선상에서 제외한 것이겠지.


그렇게 몇 분 정도가 흘렀다.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는 신호음이 들리더니 로비 쪽으로 세민이 걸어왔다. 파티 때와 다름 없이 깔끔한 정장을 차려입고 있었고, 여전히 신경질적이고 날카로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세민이 등장함과 동시에 영문과 다혜는 바로 입을 다물었다. 군기가 잘 든 군인처럼 자세도 한층 더 뻣뻣해진 느낌이었다. 세민은 날카롭게 두 직원을 한 번 훑어본 다음, 노아와 정민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안세민이라고 합니다.”


“서노아입니다.”


서글서글 웃으며 노아가 세민과 악수했다. 세민은 묘한 눈빛으로 노아를 봤다. 무심하다 못해 화가나있는 것 같은 얼굴의 자신과는 대조적으로 초면임에도 친근감 가득한 웃음을 머금고 있는 노아가 낯선듯했다. 세민은 구면인 정민에게는 짧게 고개를 숙이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정민도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를 받았다.


“장소를 옮겨서 이야기를 하는 게 좋을 것 같군요.”


세민이 말했다. 그는 말투나 표정이 딱딱하기는 했지만 김준호 관장이나 안내데스크 직원들과는 달리 노아와의 대화에 꽤 적극적인 자세로 임하고 있었다.


“5층으로 가실까요? 거기 카페가 하나 있는데 지금은 아마 아무도 없을 겁니다. 커피 좋아하시나요?”


“없으면 못살죠.”


노아가 화답했다. 노아는 세민과 마주하면서도 그 어떠한 불편함이나 거리감도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다. 노아의 친화력을 잘 아는 정민이었지만 내심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만약 그녀가 세민과 대화를 이어가야 하는 입장이었다면 아마 어떻게 해야 그 자리에서 도망칠 수 있을지만 계속 머리를 굴렸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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