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인들 (8)

by 온실라

노아와 정민이 정훈을 만난 장소는 신우 대학 정문 근처에 위치한 프랜차이즈 빵집이었다. 총 3층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1층에서는 빵이 진열돼 있었고 2층과 3층에는 빵과 커피를 즐길 수 있는 테이블들이 준비돼 있었다. 정훈은 3층에서 라떼 한잔을 마시며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정민은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나름 손님들로 북적이는 2층과 달리 3층은 한산한 편이었다. 여기라면 누구도 세 사람의 이야기를 엿들을 염려는 없을 것 같았다.


“어서 와라 노아야. 안녕하십니까, 정민 기자님.”


정훈은 예의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두 사람을 맞이했다. 두 사람이 앉기 무섭게 미리 사놓은 빵들을 권유하기도 했다. 정민은 정훈이 자신을 보고도 전혀 놀라지 않는 것을 보고 노아가 이미 말을 해두었으리라 짐작했다. 솔직히 의외였다. 조카인 노아야 그렇다고 쳐도 자신이 인터뷰에 동석하는 건 불편할 수 있을 텐데 말이다. 그만큼 자신 있고 떳떳하다는 걸까.


확실히 경찰이 확인한 바에 따르면 정훈은 완벽한 알리바이가 있었다. 도훈이 살해당한 날, 정훈은 오후 7시부터 10시 30분까지 5층 도서관에 있었다. 그것도 김준호 관장과 함께. CCTV를 조작한 게 아닌 이상 정훈은 절대로 범행이 불가능했다.


하지만, 정훈에 대해 의심쩍은 부분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가장 큰 의혹은 역시 외부인에 불과한 정훈이 도훈과의 미팅에 참석했느냐는 것이었다. 이때 도훈은 김준호 관장에게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데도 불구하고 김준호 관장은 그 요청을 단칼에 거절 못하고 끌려가는 중이었다. 화랑관의 치부, 혹은 김준호 관장 본인의 치부를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르는 자리였다. 부관장인 우현이야 후계자니까 그렇다고 쳐도 정훈은 왜? 단순 외부전문가 자격으로 참여했다고 보기에는 뭔가 이상한 점이 많다고 정민은 생각했다.


그날 있었던 도훈과의 미팅에 대해 김준호 관장도, 우현도 입을 열지 않았다. 하지만 정훈은 다를지도 몰랐다. 어쨌든 혈육인 노아가 있으니까.


“도훈 작가님 일 때문에 나를 보고 싶다고 했지?”


“예, 작은 아버지.”


정훈과 비슷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노아가 대답했다. 문득 정민은 정훈과 노아의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역시 많이 닮았다. 특히 상대를 안심시키는 듯한 저 표정과 말투, 제스처 까지도. 피는 못속이는 모양이다.


“제가 경찰에게서 자문을 부탁 받게 되서요. 그래서 당시 파티에 참석하셨던 분들을 만나 이야기를 좀 들어보고 있는 중이에요.”


“그래.”


정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너희 형제는 예전부터 그런 부분에서 특출났지. 난 네가 분명 경찰이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말이다.”


“저도 어렸을 때는 경찰이 꿈이었죠.”


노아가 화답했다. 그러고는 기습적으로 물었다.


“김준호 관장님에게서 이미 연락 받으셨죠?”


“뭘 말이냐?”


정훈이 시치미를 뗐다. 하지만 이어지는 노아의 말에 살짝 표정이 굳고 말았다.


“그제 있었던 미팅에 관해서요. 피해자와 김준호 관장, 정우현 부관장, 그리고 작은 아버지만 참석했던 미팅. 주제는 7월에 있을 특별 전시회에 관해서였죠.”


“......이미 다 알고 물으니 내가 따로 설명해야 할 건 없겠구나.”


표정이 굳는 건 잠깐. 정훈은 어느새 부드럽고 상냥한 얼굴로 돌아와 있었다. 그의 물흐르는 듯한 화법도 변한 것은 없었다. 하지만 정민은 그가 난처해하고 있음을 직감적으로 눈치챘다. 아마 자신이 이 미팅에 참여할 수밖에 없었던 설득력 있는 명분을 만들어내기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미술에 문외한인 제가 얼핏 듣기로도 이 7월 전시회는 화랑관에게 굉장히 중요한 전시회 같더라구요.”


싱글벙글 웃으며 노아가 말을 이었다.


“거기에 피해자는 훼방을 놓고 있는 입장이었죠. 그런데 모종의 이유로, 김준호 관장님은 피해자의 무리한 요구를 거절하지 못하고 있었구요.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다 해도 일개 화가가 그 정도 갑질을 할 수 있었다는 건…… 관장님이 뭔가 약점을 잡혔다고 봐야겠죠?”


“.......”


“그런데 그런 민감한 미팅에 작은 아버지도 같이 계셨죠. 어째서였을까요?”


“도훈 작가를 설득하기 위함이었지.”


정훈이 조금 우울한 투로 대답했다.


“내가 대단한 사람은 아니지만, 어쨌든 나름의 위치가 있으니 말이다. 도훈 작가를 설득해달라고 김준호 관장님에게 부탁을 받았지. 솔직히 도훈 작가 성격을 생각하면 내 말을 들을 것 같았지만, 거절하기 어려워 수락했다. 그게 전부란다.”


“그럴 수도 있겠죠.”


의외로 순순히 노아가 수긍한다는 투로 말했다. 하지만 뒤이어 내뱉은 말은 정훈은 물론이고 정민도 깜짝놀라게 만들었다.


“아니면 전혀 다른 이유가 있었을 수 있구요. 작은 아버지도 그 자리에 있으실 수 밖에 없는 이유요. 예를 들면, 피해자가 잡은 약점에 작은 아버지도 관계됐다거나.”


“......!”


정훈은 노아에게 뭐라 말하려던 것을 겨우 참은듯했다. 온화한 성품의 정훈이 아니라 성격이 급한 사람이었다면, 고함을 질렀을지도 모르겠다고 정민은 생각했다. 그만큼 노아의 발언은 날카로웠고 또 무례했다. 아무리 그래도 혈육에게 저렇게 직설적으로…… 정민은 갑자기 자리가 불편해졌다.


“그 약점이 뭐였을까요.”


상관하지 않고 노아가 말을 이었다.


“김준호 관장님의 개인적인 약점일까요, 아니면 화랑관의 약점일까요. 전 후자라고 생각해요. 김준호 관장님의 개인적인 문제라면 절대로 작은 아버지나 정우현 부관장까지 끌어들였을리 없으니까요. 무엇보다 윤수진 씨를 부를 이유가 없으니까요. 그분이 사실상 화랑관의 주인이라면서요?”


“.......”


정훈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듣고만 있었다. 노아는 정훈이 이렇다 할 반응을 보여주지 않자 계속 떠들었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날 있었던 피해자와의 미팅에만 주목하겠죠. 하지만 사실 그날밤 미팅은 두 개였어요. 하나는 피해자와의 미팅. 두 번째는 직후 일어난 윤수진 씨와의 미팅. 작은 아버지는 이 두 미팅 모두 참석하셨죠.”


“.......”


“피해자와의 미팅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일어난 두 번째 미팅. 심지어 김준호 관장님보다도 윗사람인 윤수진 씨가 두 분이 계신 도서관으로 직접 오기까지 했죠. 최대한 비밀스럽게 이 미팅을 진행시킬 필요가 있었던 거겠죠. 그렇다면 이 두 번째 미팅의 이유는 뭐였을까. 전 아마 보고였다고 생각해요. 김준호 관장님이 피해자와의 미팅에 관해 윤수진 씨에게 보고해야 할 무언가가 있었던 거겠죠.”


“하지만…….”


가만히 듣고 있던 정민이 참지 못하고 끼어들었다.


“그건…… 뭔가 이상해. 7월 전시회가 아무리 중요하다 해도…… 그게 윤수진 씨한테 그렇게 긴급하게 보고할 정도로 중요한 사항이었을까? 그 전시회를 어떻게 할지 정도의 재량은 김준호 관장님에게 있을 거야. 애초에 세명 그룹은 후계 문제를 전적으로 김준호 관장님에게 맡긴 걸로 아는데…….”


“그래요. 그러니까 두 번째 미팅의 주제는 전시회가 아니었을 거예요.”


노아가 기다렸다는 듯 정민의 의문에 대답했다.


“약점. 피해자가 쥐고 있던 화랑관의 약점. 이게 윤수진 씨한테 알리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중요한 문제였겠죠.”


“.......”


정훈은 여전히 침묵을 지키고 있었지만, 조금 전보다 눈에 띄게 초조한 기색이었다. 평소의 웃는 얼굴은 무너진지 오래였다. 그럴만 하다고 정민은 생각했다. 누구라도 본인의 치부가 이렇게 깊게 파헤쳐진다면 결코 태연할 수 없을 것이다.


“피해자가 잡은 화랑관의 약점은 뭘까. 그리고 작은 아버지와 화랑관은 대체 무슨 관계이기에 이렇게까지 가깝게 엮인 걸까. 계속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문득, 어릴적 아버지랑 어머니가 나눴던 대화가 기억났어요.”


“.......”


“작은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였어요. 아버지가 말했죠. 다 잘 풀렸다고. 작은 아버지를 지원하는 회사가 있다고. 교수직을 구하는 것도 어렵지 않을 거라고.”


“.......”


괴롭다는 듯 정훈이 오른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헝클였다. 정민은 침을 꿀꺽 삼켰다. 미술계에 정통한 정민은 방금 노아의 말로 중요한 사실을 눈치챌 수 있었다.


“세명 그룹이군요.”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정민의 입에서 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세명 그룹이 교수님을 도와주신 거군요. 신우 대학교 교수직도…… 대체 왜?”


“.......”


정훈은 아예 두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침묵은 긍정. 정민은 자신이 정곡을 찔렀음을 알 수 있었다. 정훈은 노아와 정민에 의해 거의 벌거벗겨져 만신창이나 다름 없는 신세가 된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입을 굳게 닫고 있었다. 그리고 정훈이 묵비권을 행사한다면, 두 사람으로선 그의 입을 억지로 열 방도나 권한이 없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노아는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혈육을 압박하는 게 즐거운 건 아닌 모양이었다.


“작은 아버지.”


노아가 다시 입을 열었다.


“미팅의 내용이 무엇이었는지, 피해자가 잡고 있던 약점이 무엇이었는지 당연히 얘기해주시지 않겠죠.”


“.......”


“민감한 문제니까요. 하지만 그것만은 아닐 거라고 생각해요. 권한이 없으시겠죠. 아마 윤수진 씨, 어쩌면 세명 그룹의 허락을 받아야 할지도 모르죠. 이해합니다.”


“.......”


“그렇지만 중요한 건 이번 사건의 진범을 잡는 거예요.”


노아가 돌연 목소리를 낮췄다. 혹시라도 놓칠새라 정민도 바짝 귀를 기울였다.


“그런 의문을 가져본 적 없으세요? 화랑관 관계자도 아닌 피해자가 어떻게 화랑관의 약점을 알게됐을까?”


“......?”


정훈이 눈을 떴다. 그러고는 노아를 바라보았다. 그는 꼭 뒤통수라도 한대 얻어맞은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전 그날 미팅 이후 피해자가 살해당한 게 결코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분명 무언가 연관돼 있는 게 있어요. 하지만 미팅에서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 피해자가 쥐고 있던 화랑관의 약점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이상 이 상관관계를 완벽히 파악하는 건 무리에요.”


“......그래서?”


정훈의 입에서 답지 않은 거친 반문이 나왔다. 노아는 바로 대답했다.


“김준호 관장님, 그리고 윤수진 씨에게 우리를 위해 요청해주세요.”


“그날 미팅의 내용에 대해 털어놓으라고 말이지?”


“예. 제 목적은 오직 이 살인사건의 진범을 잡는 것 뿐이에요. 결코 화랑관의 비밀을 기사화하거나 이용하지 않을 겁니다. 절 한 번만 믿어주시고, 두 분에게 얘기해주세요.”


“알지. 네가 그럴 리 없다는 걸.”


정훈이 갈라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는 몹시 슬퍼보였다. 무엇이 그를 이렇게 슬프게 만드는 걸까? 정민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생각해보마.”


정훈이 맥없이 중얼거렸다. 그리고 노아가 어떤 감사의 말을 내뱉기도 전에, 두 눈을 감고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구나. 지금은 혼자 있게 해주겠니? 늦어도 내일까지는 다시 연락하마…….”


떨리는 정훈의 목소리가 마치 호소하는 것 같다고 정민은 생각했다. 잘생긴 노신사는 그 사이 10년은 더 늙어버린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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