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몽골제국과 양자강
성산 부르칸 칼둔
이좌거의 호기로운 제안을 거절했다.
매복이라면 속임수를 쓰자는 건대 유학자의 도리가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필시 이웃 제후들의 비웃음을 사게 될 것이다”며 고개를 저었다. 성안군은 당당하게 싸우기를 원했다. 몸소 군사를 이끌고 나가 한신과 다투다 전사했다.
좀 더 허무한 경우도 있었다. 춘추시대 송(宋)나라에 양공이라는 군주가 있었다. 송과 초(楚)는 앙숙이었다. 두 나라 사이에 전쟁이 벌어졌다. 마침 초나라 군사들이 강을 건너오고 있었다. 송나라 신하 목이가 기습을 주장했다. 그러나 양공은 “선비답지 못하다”며 거절했다.
초나라 군대가 모두 강을 건너 온 후 전열을 가다듬고 있었다. 목이가 거듭 공격을 호소했다. 양공은 같은 이유로 물리쳤다. 양공은 채비를 다 갖춘 적과 싸우다 죽었다. 후세 사람들은 양공을 일러 송양지인(宋襄之仁)라 비웃었다.
유목민의 방식은 그들과 달랐다. 체면보다는 생존이 먼저였다. 테무친은 부르칸 칼둔산의 골짜기로 숨어들었다. ‘신의 산’이라는 뜻을 지닌 영산(靈山)이었다. 몽골 고원을 흐르는 세 강의 발원지이기도 하다. 몽골족이 가장 신성시하는 장소였다.
부르칸 칼둔의 품에 안긴 테무친은 비로소 안심했다. 목숨은 건졌다. 이제 그는 선택을 해야 했다. 자신의 앞에는 두 개의 갈림길이 놓여 있었다. 하나는 ‘당장 적과 맞서 싸우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어쨌든 살아남아 힘을 기른 다음 훗날을 도모하자’였다.
싸우기엔 적이 너무 강했다. 아내를 포기하고 새로운 목초지를 찾아 떠나면 살아남을 수 있다. 유목민은 본능적으로 사는 길을 안다. 그 길에선 큰 번영을 기대하긴 어렵다.
목숨을 걸고 싸운다면 예기치 못한 확산을 얻을 수도 있다. 그러나 너무 위험하다. 10대의 족장에겐 간단하지 않은 선택이었다. 테무친은 싸우기로 결정을 내렸다. 그는 부하들에게 이런 말을 들려주었다.
“두려우면 실행하지 마라. 실행을 하면 두려워하지 마라.”
그렇다고 무작정 싸울 순 없었다. 이기는 싸움을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