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몽골제국과 양자강
손님
테무친의 아내는 임신을 한 상태였다.
그녀와 테무친은 오래 떨어져 있었다. 태중의 아이는 테무친의 자식일 리 없었다. 아들이었다. 테무친은 첫 아들의 이름을 조치라고 지었다. ‘손님’이라는 뜻이다. 서운함이 베여있는 이름이었다.
테무친은 조치를 다른 아들과 차별하지 않았다. 하지만 조치의 출생문제는 두고두고 그의 발목을 잡았다. 조치는 종종 아버지 칭기즈칸의 말을 거역했다. 조치는 나중에 동유럽 대초원에 자신의 나라를 세웠다. 오늘 날 러시아로 불리는 킵차크 칸국이다.
테무친과 자무카는 승리를 자축했다. 그들은 사이좋게 같은 지역에 터를 잡았다. 부족을 합한 것이다. 기업합병인 셈이다. 하지만 위험한 선택이었다. 우정은 나눌 수 있지만 권력은 그렇지 못했다. 자식과도 나눌 수 없는 게 권력의 속성이다.
둘 사이에 갈등이 생겼다. 권력은 우정에 금을 만들었다. 자무카는 흰 뼈 가문이다. 사냥꾼 가문의 검은 뼈 테무친과는 급이 달랐다. 묘하게도 부족민들 사이에 인기는 테무친이 더 높았다. 그것이 오히려 화를 불렀다.
자무카는 테무친을 시기했다. 자신보다 우월한 테무친을 인정하지 않았다. 자무카쪽에서 먼저 이별을 통보했다. 말과 소는 그대로 남겨두고 따로 야영지를 만들라고 명했다. 빈손으로 떠나가라는 싸늘한 작별인사였다.
19세 소년 족장은 홀로서기를 했다. 자신의 가축을 몰고 밤중에 야영지를 떠났다. 자무카는 추격해 오지 않았다. 이제 친구는 적으로 변했다. 이들 안다는 이후 20년 동안 몽골의 주도권을 놓고 치열하게 싸우게 된다.
자무카는 점점 포악해졌다. 테무친 부하들의 수급을 말 꼬리에 묶고 달리기도 했다. 이는 몽골에선 금기시 되는 행동이었다. 몽골인은 머리에 영혼이 있다고 믿었다. 때문에 어떤 일이 있어도 상대의 머리를 훼손시키진 않았다. 육체는 사라져도 영혼은 보존해야만 했다.
여론은 점점 테무친의 편으로 돌아섰다. 초원의 부족들이 속속 테무친 진영에 합류했다. 평소 사이가 나빴던 부족도 있었다. 테무친은 그들을 차별하지 않았다.
“전쟁에서 약탈한 물건을 공평하게 나눠준다고 하더라. 테무친이 타던 말을 받은 병사도 있다더라.”
몽골 고원에 바람처럼 빠르게 소문이 퍼져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