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몽골제국과 양자강
칸의 눈물
왕전을 만난 진시황은 신하에게 머리를 숙였다. 설마, 왕전이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황제가 내 앞에서 머리를… 왕전은 전쟁에 나가 초나라를 진시황에게 바쳤다.
그런 진시황을 왜 사가들은 부정적으로만 묘사했을까.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 진을 이은 한나라 사관들이 그를 공평하게 적어줄 리 없었다. 오로지 사마천만은 이렇게 남겼다.
배운 자들은 자기가 보고 들은 것에 얽매여 진나라가 오래 존속하지 못한 현상만 본다. 그 처음과 끝을 살피지 못한 채 모두들 비웃으며 감히 칭찬 같은 것은 엄두도 못 내고 있으니 이것이야 말로 귀로 음식을 먹으려 드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나. 슬픈 일이다. -사마천 ‘사기’
테무친 실용적 인물이었다. 그는 노획보다 분배에 더 정성을 기울였다. 전투에서 지는 것은 늘 있을 수 있다. 다음 전투에서 이기면 된다. 전리품 분배를 잘 못하면 아예 다음 전투에 나설 전의를 잃게 된다.
20대 중반에 이른 테무친은 스스로를 칸(Khan)이라고 불렀다. 이제 그는 단순한 부족의 우두머리가 아니었다. 칸은 ‘왕(王)’이라는 의미다. 일종의 정치 선언인 셈이다. 젊은 테무친의 대권 도전이었다.
테무친은 사전에 이를 왕칸에게 통보했다. 그가 반대하면 칸이라는 칭호를 포기해야 했다. 아직 그의 비위를 거스를 단계가 아니었다. 왕칸은 승낙을 했다. 수하가 왕이면 자신은 황제다. 굳이 마다할 이유가 없다.
부족이 커진 만큼 새로운 시스템을 필요로 했다. 테무친은 조직의 개혁을 단행했다. 혈연관계는 최대한 배제했다. 능력과 충성심을 우선했다. 몽골 고원에선 보기 드문 파격이었다. 피가 물보다 진한 원리는 어디서나 통용된다. 테무친은 이 원칙에 따르지 않았다.
가장 신뢰하는 부하에겐 주방과 식량을 맡겼다. 아버지의 독살로 인해 이 두 가지는 테무친에게 가장 사무치는 일이 됐다.
테무친의 칸 선언을 안다 자무카는 어떻게 바라보았을까. 안다(친구 또는 의형제)이지만 한 때 자신의 아래에 있던 테무친이다. 안다의 칸 선언은 그를 자극했다. 자무카는 신하들에게 자신을 구르칸(사해의 왕이라는 뜻)으로 부르게 했다.
자무카의 구르칸 선언은 주변 강대국들을 자극시켰다. 특히 왕칸이 불쾌한 반응을 보였다. 왕칸은 구르칸이라는 단어 자체를 싫어했다. 왕칸은 한 때 구르칸으로 불린 숙부를 몰아내고 정권을 탈취했다. 당시 테무친의 아버지는 왕칸을 도왔다.
자무카는 나이만, 타이치우드, 메리키트 등 주변 국가들을 동맹국으로 끌어들였다. 왕칸이나 테무친과 사이가 좋지 않은 나라들이었다. 결국 동맹군과 연합군 사이에 전쟁이 벌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