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몽골제국과 양자강
발주나의 맹약
고난은 그들을 더 단단하게 결속시켰다.
테무친은 부하들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목숨이라도 내줄 수 있었다. 부하들은 테무친에게 무한충성을 맹세했다. 그들 가운데 누구도 테무친을 배반하지 않았다. 1203년 여름이었다. 역사가들은 이를 ‘발주나의 맹약’이라고 부른다.
발주나에서 테무친과 흙탕물을 함께 마신 이들은 전원 최고의 지위에 올랐다. 고난을 함께 나눈 대가다. 그들에겐 사형을 9번 면죄 받을 권리와 전쟁 노획물의 우선권이 주어졌다. 테무친의 천막을 마음대로 드나드는 특권도 허용됐다. 그 권리는 9대에 걸쳐 세습됐다.
테무친의 휘하에는 용장들이 많았다. 제베 노욘과 젤메는 물론 수보타이, 카사르, 무굴리 등 숱한 용사들이 그와 함께 사선을 넘나들었다. 그들은 단순히 용맹함을 지닌 장수가 아니었다. 적진 깊숙이 고립되었을 때도 독자적 판단이 가능한 장수들이었다. 장수에 대한 테무친의 평가는 냉정했다. 용감한 장수보다 현명한 장수를 더 높이 샀다.
테무친은 “예수타이만큼 용감한 장수는 없다. 하지만 그는 사령관이 될 수 없다. 그는 오랜 싸움에도 지치지 않는다. 그래서 다른 병사들의 체력이 자신과 다르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는다. 병사들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는 장수에게 사령관을 맡길 순 없다”고 말했다.
용감하지만 우둔한 장수에겐 후방의 보급품 관리를 맡겼다. 더 미련하면 아예 가축을 돌보게 했다. 용감하지만 조금 모자라는 측근 카사르에겐 칸의 상징인 칼을 받드는 자리를 주었다. 반면 성급한 공격을 참으면서 결정적인 때가 올 때까지 기다릴 줄 아는 수보타이는 사령관에 임명했다.
우둔하건 현명하건 그들에겐 공통점이 하나 있었다. 테무친의 부하들은 누구도 칸을 배반하지 않았다. 대부대를 이끌고 머나먼 미지의 땅으로 가 공을 세우고도 반드시 테무친에게 돌아왔다. 그들은 그곳에 남아 스스로 왕이 될 수도 있었다. 돌아온 그들의 수레엔 전리품이 한가득 실려 있었다.
수보타이는 타타르와의 전쟁 때 거짓 항복 전술을 사용했다. 적을 방심하게 만든 다음 역습으로 대승을 거두었다. 항복을 하려다 마음을 바꾼 것 아니냐는 의혹에 수보타이는 “아름다운 여자와 멋진 말은 모두 칸의 것이다. 칸을 배반하면 사막을 헤매다가 죽어도 좋다”며 변함없는 충성을 과시했다.
‘발주나의 맹약’ 이후 정세는 급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