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몽골제국과 양자강
실크로드
칭기즈칸의 상징은 9개의 야크 꼬리를 가진 흰색 깃발로 결정됐다.
9개 야크 꼬리 깃발은 대륙의 동쪽 끝 고려에서 인도, 중동, 서쪽의 동유럽에 이르기까지 유라시아 대륙을 누비고 다녔다. 칭기즈칸은 다양한 부족 간의 다툼을 방지하기 위해 야삭(법률)을 제정했다.
칭기즈칸의 야삭은 여성의 납치를 법으로 금지시켰다. 약탈혼으로 태어난 아이가 자라서 여성의 약탈을 법으로 막았다. 칭기즈칸은 또 종교의 자유를 보장했다. 야삭은 종교의 자유를 천명한 인류 최초의 법전이다. 칭기즈칸은 자신의 하늘(텡그리)은 곧 모든 사람의 하늘이라 믿었다.
금의 장종(章宗)이 서거했다. 후계자는 영제였다. 그는 사절을 보내 칭기즈칸에게 신하의 예를 갖춰줄 것을 요구했다. 무릎을 꿇고 황제의 칙서를 받으라는 얘기였다. 칭기즈칸은 남쪽을 향해 탁 침을 뱉었다.
“내가 왜 그런 자에게 고개를 숙여야 하나?”
금은 여진족의 나라다. 여진족은 그곳의 주인이었던 거란(契丹)족을 몰아내고 화북 땅을 차지했다. 거란족은 더 옛 주인 한족들을 양자강 남쪽으로 쫓아버렸다. 남으로 옮긴 송(宋)은 남송(南宋)으로 격하됐다.
당시 금나라의 인구는 5000만이었다. 몽골 고원 전체 인구는 모두 합쳐봐야 300만 남짓이었다. 금나라에는 잘 조직되고 훈련된 군대가 있었다. 칭기즈칸은 대금 전쟁을 선포했다. 금나라 영제의 반응은 퉁명스러웠다.
“어떻게 너희 따위를 두려워하랴.”
1부 리그 팀은 2부 리그 상위팀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미 과거의 1부 리그 팀이 아니었다. 칭기즈칸은 거란족에게 금으로 가는 길을 요구했다. 거란은 금과 몽골 사이 완충지대였다. 거란족이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자신들을 몰아낸 여진족에 대신 복수를 해주겠다는 데야.
거란족은 칭기즈칸에게 가정교사 노릇을 했다. 그들을 통해 정주사회를 이해했다. 정주사회 군대와 싸우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을 다스리는 일은 여간 복잡하지 않았다. 칭기즈칸은 거란족 야율초재를 중용했다. 칭기즈칸은 그를 통해 말 위에서 세상을 정복할 순 있어도, 말 위에서 세상을 다스릴 순 없다는 이치를 터득했다.
정주사회에 동화된 거란족은 몽골에서 원(元)제국으로 넘어가는 과정을 도왔다. 당시 거란족 가운데는 네스토리우스파 기독교인이 많았다. 그들은 자녀의 이름을 심온(審溫․Simon) 보육사(保六賜․Paul) 아고(雅古․Jacob) 악난(岳難․John) 같은 기독교의 세례명을 따서 지었다. 한편 중동에서 온 무슬림들은 숫자에 능했다. 칭기즈칸은 그들을 제국의 재정분야에 투입했다.
몽골은 개전 초반 금에 큰 타격을 입혔다. 전쟁은 기병부대 간의 싸움에서 결판났다. 금은 일찌감치 핵심 기병부대를 잃었다. 칭기즈칸의 기병은 거침없이 화북의 평원을 질주했다. 그러나 이내 성벽이라는 낯선 장애물이 그들을 가로막았다. 말이 넘기엔 너무 높은 장벽이었다.
몽골은 다양한 공성(攻城) 무기를 개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