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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an Mar 26. 2022

세계사를 바꾼 7개의 강(42)

1. 몽골제국과 양자강

누가 옳으냐?

     

쿠빌라이는 다시 양자강을 건넜다.     

 

이번엔 대권을 위해 남에서 북으로 옮겨 갔다. 내전의 불길한 그림자가 온통 제국을 뒤덮기 시작했다. 유례없는 몽골군끼리의 내전이었다. 


아릭 부케가 묘한 견제구를 날려 보냈다. 쿠빌라이를 카라코룸으로 초청한 것이다. 죽은 황제 뭉케를 애도하자는 그럴듯한 제안이었다. 위장된 유인책이었다. 조부 칭기즈칸은 왕칸의 제안을 받아들인 후 위험에 빠졌다. 


상대의 의도를 읽은 쿠빌라이는 거절했다. 그는 아릭 부케의 얕은꾀에 놀아 날만큼 어리석지 않았다. 쿠빌라이의 참모들은 아릭 부케의 장기판 내용을 휜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쿠빌라이가 먼저 승점을 올렸다. 쿠빌라이는 1260년 5월 개평에서 쿠릴타이를 열어 대칸의 자리에 올랐다. 아릭 부케에게 한방 먹인 셈이었다. 자신의 초청을 거절하더니 설마 수도 카라코룸이 아닌 곳에서 쿠릴타이를 열 줄은 짐작조차 못했다.

  

다음 달 아릭 부케도 서둘러 카라코룸에서 쿠릴타이를 개최했다. 이로써 몽골 사상 처음으로 두 명의 대칸이 선출됐다. 이제 양측은 전쟁을 향한 외길 수순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마주 선 두 열차는 서로를 향해 맹렬히 돌진했다. 


여전히 명분은 아릭 부케 편이었다. 스기야마 마사아키는 쿠빌라이의 처지를 ‘단순 반란자’로 표현했다. 그 점에선 나중에 언급할 카이사르도 마찬가지였다. 이전 대칸들은 모두 칭기즈칸의 고향이나 카라코룸에서 선출됐다. 칭기즈칸 가문의 법에 따르면 쿠빌라이의 대칸 선출은 무효였다.  


정통성은 지지자들에게도 영향을 주었다. 킵차크 칸국의 새로운 계승자 베르케와 중앙아시아 차가다이도 아릭 부케를 지지했다. 심지어 중동의 훌레구 마저 아릭 부케 쪽에 사절을 파견했다. 


훌레구는 마음속으로 쿠빌라이를 지지했지만 따로 보험을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쿠빌라이는 사면초가에 빠졌다. 몽골 제국 내부만 놓고 보면 그의 편은 아무도 없었다. 그 점 역시 막 루비콘 강을 건넌 카이사르와 흡사했다. 


카이사르측은 쿠빌라이와 마찬가지로 반란군이었다. 폼페이우스는 이를 진압하는 장군이었고. 그러나 양측 모두 정신적 우세는 반란군에게 있었다. 절박함은 아무래도 반란군 쪽이 더 앞선다. 그들은 말 그대로 죽음을 각오하고 싸움에 임하기 때문이다. 물러나면 모두 죽는다.      


그럴 바엔 차라리 죽기 살기로 싸우자.  

    

실제 내전에 임하는 결의만큼은 쿠빌라이 측이 앞섰다. 그들에겐 벼랑 끝에 몰린 전쟁이었다. 대칸부터 일개 병사에 이르기까지 한 걸음만 물러서도 물속에 처박히는 배수진을 치고 있었다.  


아릭 부케 진영에는 그런 절박함이 없었다. 쿠빌라이 측이 단단한 군사동맹이었다면 아릭 부케 진영은 느슨한 외교 연합이었다. 쿠빌라이는 초반부터 거칠게 상대를 몰아붙였다. 심리적 압박감을 주기 위해서였다. 상대의 거센 공세에 아릭 부케는 잠시 수도 카라코룸을 내주었다. 


쿠빌라이는 일부 수비대만 남기고 수도에서 철군하는 실수를 범했다. 전략가인 그로서는 흔치 않은 과오였다. 수도를 다시 내준 쿠빌라이는 새로운 전술을 시도했다. 수도 봉쇄였다. 나폴레옹이 영국에게 취한 해상봉쇄와 맥을 같이하는 전략이었다.


몽골의 수도는 외부로부터 식량을 비롯한 생필품을 공급받아야 생존 가능했다.  식량 공급 차단은 이 도시의 숨통을 조이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아릭 부케는 오래 견디지 못했다. 수도를 버리고 일리 계곡으로 숨어들었다. 그곳은 차가다이의 영토였다. 아릭 부케는 그곳에서 치명적 실수를 범했다. 남의 영토에서 대규모 살육을 단행했다. 


몽골족은 몽골족에 대해 관대해야 한다. 범죄자의 처벌이 아니고는 몽골족은 종족을 죽여선 안 된다. 험악한 환경에 익숙하지 않은 ‘어린 왕자’ 아릭 부케는 이성을 잃어가고 있었다.  


제국의 민심이 차츰 아릭 부케를 떠나갔다. 그는 형인 쿠빌라이와 태생적 기질부터 달랐다. 쿠빌라이는 목숨을 걸어야 하는 상황에선 목숨을 거는 승부사였다. 아릭 부케는 겉으론 사나워 보이지만 내면은 여린 인물이었다. 아릭 부케는 곧 형에게 항복했다. 


역사가 라시드 앗 딘은 두 칸의 대면 장면을 이렇게 적어두었다. 쿠빌라이가 “너와 나 가운데 누가 옳으냐?”고 물었다. 모든 것을 체념한 아릭 부케는 “그 때는 내가 옳았지만 지금은 형이 옳다”고 답했다.       


북쪽 일은 해결됐으나 남쪽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첩첩산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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