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몽골제국과 양자강
훈(Hun)족
큰 착각이었다. 자신들이 이 전투에서 이길 수 있다는 오만함.
고대나 중세 전투에서 승패를 가른 결정적 요소는 거리였다. 이전까지 유럽의 전투는 대부분 근접전이었다. 적과의 거리는 중요하지 않았다. 갑옷은 거리를 무시하도록 강요했다. 맞붙었을 땐 유리하지만 떨어지면 오히려 거추장스러운 장비였다.
원정군은 거리를 활용했다. 독일연합군에겐 낯선 전투 방식이었다. 그것을 가능하게 만든 것은 갑옷과 활의 차이였다.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한 독일연합군의 무거운 갑옷은 거꾸로 독이 됐다. 800년 전에도 유럽은 같은 방식에 의해 호되게 당한 아픈 기억이 있었다.
로마의 멸망 원인에는 여러 가지 요인을 들 수 있다. 훈(Hun)족의 침입도 그 중 하나다. 4세기 훈족이 동쪽에서 쳐들어오자 그들에게 터전을 내준 게르만족은 이탈리아 반도로 밀고 들어갔다. 일종의 도미노 효과였다.
그곳의 노 제국 로마는 찬란한 대리석 기둥만 남은 상태였다. 게르만족의 거친 전투력을 감당할 수 없었다. 유럽의 모든 길을 장악했던 로마는 그렇게 무너졌다. 당시 훈족에겐 놀라운 무기가 있었다.
뛰어난 기동력이었다. 스피드는 양 군 사이에 거리확보를 가능하게 해 주었다. 훈족은 그 차이를 최대한 이용했다. 로마의 역사가 암비아누스는 훈족에 대해 “움직임이 날렵하고 흩어졌다가는 재빨리 다시 모여 넓은 들판을 휩쓸었다”고 서술했다. 그들에겐 또 아틸라(406?~453)라는 탁월한 리더가 있었다.
800년 후 몽골군은 훈족의 장점을 고스란히 재현했다. 몽골군은 특화된 기동력을 지니고 있었다. 광활한 도로 위에서 페라리와의 속도 경쟁은 무의미하다. 또한 그들에겐 리더 칭기즈칸(1162~1227)이 있었다.
칭기즈칸의 많은 장점 가운데 하나는 공정함이었다. 그는 약탈한 물건을 고르게 나누어주었다. 탐욕스런 유목민 족장들과는 다른 방식이었다. 공정한 분배는 유목민 전사들을 똘똘 뭉치게 만든 원동력이었다.
칭기즈칸 이전 지구 위의 대륙들은 분리되어 있었다. 12세기 들어 아시아와 유럽은 하나로 묶이려 했다. 그로 인해 세계사는 요동치기 시작했다. 각각의 조각들은 이전의 모습을 포기하고, 대형 모자이크의 일부로 변모했다. 중세 유럽은 서둘러 잠에서 깨어났다.
유럽을 깨운 칭기즈칸에겐 세계전쟁사에 남은 독특한 전술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