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몽골제국과 양자강
속임수
몽골군이 전투대형에서 가장 중시하는 것은 적과의 거리였다.
8백 년 전 훈족이 처음으로 유럽 기사들을 맞이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사거리 면에서 월등한 몽골군의 활은 상대와 200m 거리를 유지할 때 가장 높은 승률을 보였다.
화살 공세로 상대를 흩어지게 한 후 각개 격파했다. 강력한 공중 폭탄세례를 퍼붓고 난 다음 지상군을 보내 점령해가는 미군의 방식이다. 상대가 강할 때는 거짓 퇴각 전술을 즐겨 사용했다.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우세한 기동력 때문이었다. ‘신의 군대’ 임을 자처한 유럽 기사들은 거짓 전술을 수치로 여겼다.
1차 공격에서 기동성으로 적을 분산시킨 다음 부분으로 쪼개서 각각 사지에 몰아넣었다. 중무장한 유럽의 기사들로서는 감당할 재간이 없었다. 1대1 대결에서 기사들을 보호하기 위해 고안된 기병의 중무장은 기동성을 현저히 떨어뜨렸다. 몽골군의 전술은 현대전서도 유용함을 입증했다. 2차 대전서 맹위를 떨친 독일 기갑부대는 몽골군의 전술을 전범으로 삼았다.
사냥은 몽골군의 전쟁연습 방식 가운데 하나였다. 사냥훈련의 백미는 선택된 장소로 사냥감을 몰고 가는 일이었다. 정작 사냥은 무의미한 살육일 뿐이다. 발슈타트에서 몽골군은 사냥몰이 방식으로 독일연합군을 처단했다.
몽골군은 전통적으로 3군단 방식을 선호했다. 좌군과 우군이 긴 원호를 그리며 나아가고 그 뒤를 중앙군이 일직선으로 진군했다. 하나의 기둥과 두 개의 날개 안에 사냥감을 가두었다.
1241년 4월 4일 칭기즈칸의 손자 바투가 이끄는 몽골의 3군단이 다뉴브 강변에 집결했다. 몽골군은 그곳에서 헝가리 군과 마주쳤다. 헝가리(Hungary)는 훈(Hun)족의 후예다. 8백 년 전 그곳으로 왔던 유목민들이었다.
헝가리 군은 유럽 최강 군대의 하나였다. 병력의 수는 독일연합군보다 더 많았다. 일단 사냥전술에 휘말리면 수적 우세는 무의미해진다. 몽골군의 전술은 독일연합군을 상대 할 때와 동일했다.
헝가리의 벨라 4세는 멀찍이서 몽골군의 움직임을 관찰했다. 몽골군은 전투를 두려워하는 듯 보였다. 자신이 지휘하는 헝가리 대군을 보고는 주춤주춤 물러났다. 한 번쯤 왜 저럴까 의심해봤어야 했다.
최강이라는 군대가 왜 저럴까. 이런 의심 대신 얕은 생각이 그의 뇌를 지배했다. 모두가 저들에게 패했지만 나만은 이길 수 있어. 상대가 있는 게임에서 우쭐함만큼 위험한 함정은 없다. 몽골군의 후퇴와 헝가리 군의 추격은 6일간 이어졌다. 그들이 살아서 돌아갈 기회는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4월 10일 사조강변에 이른 몽골군은 갑자기 태도를 바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