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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an Apr 02. 2022

세계사를 바꾼 7개의 강 49

2. 이스라엘과 요단강


두 개의 기둥     


요단강은 서구문명을 키운 젖줄이었다.  

    

건축물로 치면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와 함께 수천 년 동안 서구문명을 떠받쳐온 두 개의 기둥 가운데 하나였다. 이 두 기둥은 헤브라이즘과 헬레니즘이라는 지붕을 어깨 위에 짊어지고 있다. 


이 둘은 서로 다투어 왔다. 오래도록 헤브라이즘은 헬레니즘을 핍박했다. 근대 이후 후자의 우세가 드러나면서 전자는 위기를 맞기도 했다. 그러나 어느 사이엔가 서로는 서로를 닮아갔다. 이해관계에 따라 서로를 용인하면서 기특하게도 서구 이외의 문명에 대한 경멸이라는 공통점을 발견해냈다.   

    

요단강은 천국으로 향하는 문(門)이다. 강의 이편과 저편, 각자의 서 있는 위치에 따라 신성과 세속으로 구분됐다. 그 차이는 엄혹했다. 강은 소망과 사랑을 품고 있지만 때로 극렬한 증오를 표출하기도 했다. 저편의 무리에게 나눠 줘야할 때 사랑은 인색했다. 기울어진 사랑은 일방적 증오의 가려진 뒷모습에 불과했다. 


요단강은 원래 특별한 의미를 갖지 않았다. 중동의 작은 강에 불과했다. 3천 년 일단의 무리가 그곳을 건너는 순간 강의 윤곽은 천국과 지옥의 경계로 선명하게 드러나기 시작했다.      


수천 년의 시차를 두고 요단강 서편에 두 개의 이스라엘이 건국됐다. 

그 때마다 강은 몸살을 앓았다. 푸른 강물은 피로 붉게 물들었다.      


요단강을 품고 있는 중동 일대는 대 제국의 기원이 되어 왔다. 모여 살기에 편리하지만 침략하기에도 용이했다. 최초의 제국 아카드와 로마가 이곳을 지배했고, 오스만 제국을 거쳐 대영제국이 유니언잭 깃발을 높이 세웠다. 


1948년 5월 14일 영국은 팔레스타인 지역에 대한 위임 통치를 종료했다. 그와 함께 벤구리온 이스라엘 대통령은 역사적인 독립을 선언했다. 유대인들은 2천 년 만에 이 지역 주권을 회복했다. 하지만 이스라엘호의 항해는 오래 전  그 때와 마찬가지로 출발부터 거센 폭풍우를 만나야 했다. 


영국군이 철수한 다음 날 이스라엘은 바로 아랍과 전투를 치렀다. 이는 이스라엘이 향후 겪어야할 수많은 전쟁 가운데 하나에 불과했다. 이스라엘은 아랍연합(1948년) 이집트(1956년) 이집트, 요르단, 시리아, 레바논 연합군(1967년·일명 6일 전쟁), 아랍연합(1973년)과 잇달아 전쟁을 벌였다. 21세기 들어서도 이스라엘의 가자지구와 요단강 서안에는 매캐한 화약 냄새가 그치지 않고 있다. 


이스라엘은 곧 시오니즘이다. 자신들의 축복받은 땅에 대한 열망이다. 시온(Zion)은 예루살렘 여러 언덕 가운데 하나였다. 그 의미는 점차 확대돼 예루살렘을 대신했다. 2천 년 이후엔 유대의 민족주의 운동으로 진화했다. 


시오니즘은 국경선과 시민권에 둘러싸인 군사요새다. 요단강은 신성과 세속을 구분하는 국경으로 시오니즘을 단단히 에워싸고 있다. 그곳으로 들어가려면 반드시 사증이 필요하다. 


전 세계 어느 곳에도 없는 ‘야곱의 사다리’ 사증이다. 이를 지참하지 않은 자에게 요단의 서쪽은 금단의 땅이다. 피를 흘리지 않으면 입국이 불가능하다. 요단강과 ‘야곱의 사다리’를 이해하지 않으면 시오니즘은 단지 하나의 민족주의에 불과하다. 


이웃과 사이좋게 지내는 민족은 드물다. 그 점을 십분 인정하더라도 유대민족의 이웃과의 불협화음은 유별나다. 수천 년 전 애굽(이집트)을 탈출한 그들의 조상이 하나의 원칙을 천명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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