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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an Apr 05. 2022

세계사를 바꾼 7개의 강 52

2. 이스라엘과 요단강

이삭과 이스마일 

    

아브라함은 다른 여인에게서 첫 아들 이스마일을 얻었다. 나중에 아브라함의 아내도 이삭을 낳게 된다. 이스마일과 이삭은 이복형제다. 한 뿌리에서 나온 형제는 아랍인과 유대인으로 갈라섰다. 


신은 90세에 이른 그의 아내에게 자식을 약속했다. 그의 아내조차 웃어 넘겼다. 완경은 신이 만든 조건이다. 그녀의 몸속에는 생명이 깃들 수 없었다. 그러나 신은 분명 그들 부부에게 약속했다. 약속이 유목민족들에게 갖는 의미는 엄중했다. 구두 약속은 곧 계약이었다. 


성서는 계약의 상징을 독특한 방식으로 기록해 두었다. ‘하나님은 둘로 쪼개진 동물의 사체 가운데로 횃불을 지나가게 했다.’ -창세기 15:17 이는 당시 가나안 사람들이 서로 간에 중요한 약조를 맺을 때 사용하는 방식이었다. 요즘으로 치면 공증을 받아 두는 셈이다.    

    

아브라함의 나이 백세가 되어서야 그 약속은 이루어졌다. 아내 사라의 몸에서 이삭이 태어났다. 70대 노인 시절부터 약속된 아들이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일까. 신은 그 기쁨을 자신의 위한 제물로 바칠 것을 명했다. 모리아 산에 올라 가 이삭을 번제의 제물로 삼으라고 지시했다.  


번제라 함은 신에게 바치는 제물을 죽인 다음 불로 태우는 것을 말한다. 제물은 다름 아닌 자신의 아들이었다. 신이 어떻게 그처럼 잔인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은 칸트를 비롯한 많은 철학자들에 의해 제기됐다. 


칸트에 따르면 “아들을 죽이라는 명령은 명백한 잘못이다. 따라서 아브라함은 그 명령을 내린 주체가 신이 맞는지 의심했어야 했다.”


아브라함의 속마음은 어땠을까. 억장이 무너졌을 것이다. 하지만 성서엔 그 부분에 대한 언급이 없다. 그러니 짐작만 할 뿐이다. 성서는 오직 아브라함의 동선(動線)에만 집중했다. 그의 심리적 동요를 추측할 문학적 언급은 생략됐다. 


아브라함은 아침 일찍 땔 나무를 가지고 아들과 함께 모리아 산으로 올라갔다. 아들의 몸을 태울 나무였다. 상황의 엄중함에 비해 아브라함은 너무나 태연했다. 이제부터 자신이 해야 할 일이 얼마나 끔찍한 짓인지 전혀 짐작하지 못하는 사람 같았다. 


산을 오른 아브라함은 칼을 빼들고 아들을 찌르려했다. 어찌 망설임이 없었을까. 성서는 아브라함의 망설임을 적지 않음으로서 그의 심리적 동요를 부정하고 있다. 신에 대한 온전한 순종만 드러내려 했다.  


아브라함이 막 칼을 빼들었을 때 신의 사자가 나타났다. 드라마틱한 타이밍이다. 그는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 알았다”며 아들 대신 번제로 쓸 양 한 마리를 건네주었다. 신은 아들 대신 사용할 양을 미리 준비해 두었다. 


다만 그가 자신의 명령에 순종하는 지 여부를 확인하고자 했다. 유대인들은 이를 ‘여호와 이레(여호와가 준비해 두었다는 의미)’라고 부르며 그 자리에 성전을 세웠다. 


이 과정은 기독교 성서와 이슬람교 코란에 공히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두 경전에는 결정적 차이점이 있다. 기독교 성서에 따르면 이날 아브라함과 함께 모리아 산을 오른 아들은 이삭이다. 


반면 코란은 그를 이복형제 이스마일이라 주장한다. 예루살렘은 메카, 메디나와 함께 이슬람교의 3대 성지로 손꼽힌다. 이슬람에서 모리아 산은 이스마일의 희생의식이 치러졌고, 무함마드가 죽은 후 승천한 곳이기도 하다. 코란은 이스마일을 예언자이며 선지자라고 –코란 19장 54절 기록해 두었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낳았고, 이삭은 야곱을 낳았다. 야곱에게는 12명의 아들이 있었다. 이스라엘 12지파는 그의 12명 아들에게서 나왔다. 유대인들이 유난히 12라는 숫자에 집착하는 이유다. 예수에게도 12제자가 있었다. 문제의 요셉은 야곱의 12번째 아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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