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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an Apr 07. 2022

세계사를 바꾼 7개의 강 54

2. 이스라엘과 요단강


청년 모세 

 

본토 이집트인들이 셈족을 몰아내며 왕권을 회복했다.     

  

권력을 되찾은 이집트인들은 억눌렀던 증오심을 폭발시켰다. 그동안 외부세력에 당해왔던 울분을 한꺼번에 터트렸다. 외부인에 대한 탄압과 추방이 시작됐다. 정권이 바뀌어도 통상 보복이 가해진다. 하물며 지배민족이 달라졌다.


유대인들은 이집트에서 부를 쌓았고, 급격히 수를 늘려갔다. 이는 유대인들의 장기다. 어디를 가든 그곳의 상권부터 장악했다. 유대인들에게 부를 빼앗긴 이집트인들은 몹시 사나워졌다. 유대인들은 손쉬운 표적이 됐다.

부를 가지면 영향력이 확대된다. 토착민 파라오는 그 점을 두려워했다. 두려움은 폭압적인 유대인 탄압으로 이어졌다. 방법은 잔인했다. 유대인의 수를 제한하기 위해 새로 태어난 아들을 죽였고, 남은 자들은 노예로 삼아 대규모 토목 사업에 동원했다. 역사에 기록된 첫 ‘홀로코스트’였다. 


한 때 제국의 공로자요 협력자였던 유대인들은 졸지에 노예로 전락했다. 이후 유대인들에 대한 핍박은 주체를 바꾸어가며 1948년 이스라엘의 건국 직전까지 계속됐다. 중세와 근세 유럽의 유대인 탄압은 혹독했다. 


15세기 네덜란드의 유대인들은 노란색 헝겊을 표식으로 달고 다녀야 했다. 한 유대인 남성은 젊은 아가씨가 고개를 돌려 자신을 쳐다보았다는 이유로 처벌받았다. 남자가 여자를 본 것이 아니라 여자 쪽이 남자를 쳐다보았다. 그에게 죄가 있다면 오로지 잘생긴 외모뿐이었다.  


17세기 스페인에서는 화형 당한 유대인들이 많았다. 스페인의 이단금문소는 3만2,000 명의 이교도를 불 태워 죽였다. 그 가운데 상당수는 유대인들이었다. 예일대 교수 에이미 추아는 그 무렵 약 20만 명의 유대인들이 박해를 피해 스페인을 떠났다고 주장했다. 


2차 대전의 나치 독일은 600만의 유대인들을 학살했다. 영화 ‘영광의 탈출’은 모사드의 설립과정을 소개했다. 미국 CIA, 영국 M16, 러시아 KGB와 함께 세계 4대 정보기관 가운데 하나로 손꼽히는 모사드는 당초 민간 기구로 발족했다. 


영화에는 모사드의 대원 선발 기준이 나온다. 유대인 학살로 악명 높은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사람이거나 그들의 가족이 우선 선발 대상이었다. 나치에 의해 죽음 일보 직전까지 갔거나, 가족들의 참담한 희생을 목격한 이들이 어떤 각오로 모사드에 몸을 담았을지 짐작된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결기였다. 이미 한 번 죽음 문턱을 경험한 사람들이었다. 


모사드 건물의 입구에는 이런 말이 적혀 있다. ‘지략이 없으면 백성이 망하여도 지략이 많으면 평안을 누린다.’ 구약성경 잠언 11장 14절에 나오는 구절이다. 


토착 파라오는 유대인 아이 가운데 아들만 골라서 죽였다. 남자는 언제든 칼을 들 수 있다. 그 칼은 파라오를 향할 것이다. 여자는 노예로 삼거나 이집트 남성과 혼인하게 만들었다. 노골적 유대인 말살정책이었다.


그런 중에 한 여성이 아들을 낳았다. 파라오의 명에 따라 죽여야 했지만 차마 그러지 못했다. 여성은 아들을 바구니에 담아 나일 강에 흘려보냈다. 바구니를 발견하고 아이를 구한 사람은 마침 이집트 공주였다. 물에서 건져냈다는 의미의 모세라는 이름을 지었다. 


모세는 신비로운 인물이다. 심지어 이집트인이라는 설도 없지 않다. 심리학자 프로이트는 ‘모세와 일신교(Moses and Monotheism)'에서 “모세는 사실 이집트인이며 이크나톤과 관련 있다. 이크나톤의 측근으로 일신교의 신봉자였다. 이크나톤의 죽음 이후 유대인과 결합했다”고 주장했다.  


투탕카멘의 아버지 이크나톤은 ‘태양신 아텐(Aten)'만 신으로 인정하는 종교개혁을 단행한 인물이다. 기득권 종교집단이 이를 그냥 둘리 없었다. 그는 의문의 죽임을 당했다. 아들 투탕카멘은 아버지를 죽인 기득권 세력과 손을 잡았다. 이집트는 다신교 체제로 환원됐다. 


이집트뿐 아니라 일신교와 다신교의 충돌은 오랜 역사를 지녔다. 고대 이집트의 경우와 달리 대부분 일신교 쪽이 승리했다. 일신교는 강력한 다신교 국가였던 로마에서 판테온(만신전)을 몰아냈다. 이슬람교 역시 이집트에서 많은 신들을 쫓아냈다.     

 

청년이 된 모세는 한 이집트인을 살해했다. 자신의 동족인 유대인을 살해하려던 자였다. 그 일로 이집트를 탈출해야 했다. 모세는 미디안 광야로 숨어들어 평범한 목자로 살아갔다. 


어느 날 모세는 호렙산에 올랐다가 신을 만났다. 이후 그의 인생은 180도 달라졌다. 호렙산은 이스라엘 민족의 성산(聖山)이다. 선지자 엘리야가 폭군의 탄압을 피해 도망 다니던 무렵 신을 만난 곳이기도 하다.


신은 모세에게 유대인들을 이집트에서 구해내 가나안으로 인도하라는 임무를 맡겼다. 모세는 지팡이 하나만 손에 쥔 채 파라오의 궁전으로 향했다. 모세의 상대는 이집트 역사상 가장 위대한 파라오 람세스 2세였다.  


역사학자들은 이집트에는 기원전 3000년께부터 왕조가 존재했다고 추정한다. 이집트의 왕은 파라오(Pharaoh)로 불렸다. 파라오는 ‘위대한 집’ 즉 신전의 주인이었다. 왕권과 신권을 한 손에 쥔 막강한 권력자였다. 파라오는 영생을 염원했다. 죽은 몸을 미라로 만들어 육체의 환생을 도모했다. 피라미드는 부활을 위한 제단이었다.   

  

가장 위대한 이집트 파라오와 가장 뛰어난 유대인 리더 모세가 정면충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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