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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an Apr 09. 2022

세계사를 바꾼 7개의 강 56

2. 이스라엘과 요단강

열 가지 재앙 

     

이스라엘의 신은 분노의 신이다.     

 

신은 모세를 통해 파라오와 그 백성들에게 내릴 열 가지 재앙을 예고했다. 유대 백성을 풀어주지 않으면 곧 재앙들이 들이닥칠 예정이었다. 대지의 주인 파라오는 물러서질 않았다. 한 번 밀리면 끝까지 밀린다는 통치의 기본원리를 제국을 이끌어 온 그가 모를 리 없었다. 


어지간히 버티던 그도 마지막 재앙 앞에선 무너졌다. 자신의 제국 안에 있는 모든 인간과 가축의 장자와 처음 난 것의 생명을 앗아가는 참변이었다. 람세스 2세의 장자도 예외는 아니었다.     

  

온 이집트가 울음소리로 가득 찼다. 오직 유대인들만 그 재앙에서 벗어났다.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른 유대인 집에는 죽음의 사자가 넘어 오지 못했다. 유대인들은 이 날을 유월절(pass over)이라 부른다. 우리의 광복절에 해당하는 가장 큰 명절이다. 


죽음의 사자는 유대인의 집을 그냥 지나쳤다. 유대인들은 급하게 이집트를 빠져 나오느라 발효되어 미쳐 부풀지 않은 빵을 먹어야 했다. 그를 기념하여 지금도 유월절에는 이스트를 넣지 않은 빵을 먹는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이내 절망했다. 홍해라는 거대한 물의 벽이 그들을 가로막고 있었다. 한편 유대인들을 떠나보낸 람세스 2세는 곧바로 자신의 결정을 후회했다. 노예가 없으면 신도시 건설을 중단해야 한다. 


람세스 2세는 전차 600대와 병력을 동원하여 유대인들을 추격했다. 앞은 바다, 뒤는 파라오의 군대에 처한 유대인들은 모세에게 불만을 터트렸다. 죽기보다는 노예로 사는 편이 낫다고 소리쳤다. 성서는 광야 기간 동안 적어도 12번의 반란이 있었다고 기록해 두었다. 출애굽은 고난과 반란의 연속이었다. 


신은 홍해를 가르는 이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했다. 종종 믿음은 이런 의문을 품게 만든다. 왜 온갖 고난을 주고 나서야 신의 권능은 발휘되는 것인지. 도스토예프스키는 이렇게 답했다.      


“신앙은 기적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기적이 신앙에서 나온다.”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으면 산을 옮길 것이다. -마태복음 17:20” 이는 예수의 대답이다.      


유대인의 광야 유랑은 40년 동안 이어졌다. 당시 사람들의 수명을 감안할 때 거의 한 사람의 생애에 해당하는 긴 기간이었다. 유랑 무리의 불만은 그치지 않았다. 툭하면 싸웠다. 그들에겐 아직 법(法)이 없었다. 때문에 집단의 재판장을 겸하고 있던 모세의 할 일이 많아졌다.


모세의 장인이 사위에게 법을 만들라고 조언했다. 2백만 집단에겐 훨씬 이전부터 법이 필요했다.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에 따르면  “소문을 공유할 뒷담화로 결속할 수 있는 집단의 자연적 규모는 150명 내외다. 침팬지의 경우 20~50 마리 정도다. 이를 넘으면 공식서열, 직함, 법이 필요해 진다.” 


그들에겐 족쇄가 될 수도 있는 법이라는 새로운 제도의 필요성을 어떻게 설득시킬까. 모세는 신비로운 방식으로 율법 시대를 열었다. 그는 혼자 산으로 올라갔다. 얼마 후 커다란 돌 판을 갖고 내려 왔다. 


열 가지의 기본법이 적힌 돌이었다. 그 밖에도 수 백 개의 이르는 하위 법이 속속 제정됐다. 모세가 이스라엘의 입법자로 불리는 이유다. 이스라엘 입법 기관 의회에는 모세상이 서 있다.    

   

40년 세월은 모세를 노인으로 만들었다. 소년은 청년이 되고, 청년은 노인이 되기 마련이다. 노년의 모세에겐 한 가지 소망이 있었다. 가나안 땅을 밟아 본 후 죽는 것이다. 하지만 신은 모세의 소망을 허락하지 않았다. 이유는 단순했다. 신의 말을 고스란히 따르지 않아서다. 


유대 백성이 물을 원하자 신은 모세에게 “바위에 명하여 물이 나오게 하라 –민수기 20:8”고 명했다. 그런데 모세는 무리의 불평에 흥분한 나머지 지팡이로 바위를 두 번 내리쳤다. 물은 쏟아졌으나 그 일로 모세는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다. 신이 명을 곧이곧대로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팡이를 두 번 내리친 죄다. 


‘약속의 땅’을 바라며 40년을 버틴 모세는 그 땅을 눈앞에 두고 죽었다. 마지막으로 그는 산 위에 올라가 젖과 꿀이 흐르는 소망의 땅을 바라보았다. ‘하늘에서 이슬이 내려와 대지를 적시고, 풀을 자라게 해 그 풀로 양을 살찌우고 밀과 과일을 익게 하는 땅 –신명기 33:28’이 그의 눈앞에 펼쳐졌다. 


모세의 입에서 “이스라엘이여, 너는 참 행복한 사람이구나”라는 탄식이 흘러나왔다. 미국의 작가 앤디 루니는 “모든 사람이 산의 정상에 서길 원하지만, 행복은 산을 오르는 동안에 있다”고 말했다. 


묘한 반전이다. 누구나 정상에 서야 비로소 행복해질 거라고 믿지만 정작 행복은 오르는 사이 이미 맛보았다. 신이 자신의 소망을 외면했을 때 역설적으로 지나 온 모든 고난들이 행복이었다는 사실을 죽기 직전 모세는 깨닫지 않았을까.   

   

모세의 탄식은 헬렌 켈러의 고백과 겹쳐진다. 그녀는 자서전에 이렇게 썼다.      

“빛과 꽃과 천상의 음악이 가득한 기쁨 넘치는 삶을 주어 감사드린다.”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을까. 헬렌 켈러는 어린 시절 청각과 시각을 한꺼번에 잃은 장애인이다. 그런데도 빛과 꽃과 음악에 감사했다. 그녀는 그 가운데 어느 것도 실제로 느끼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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