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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an Apr 11. 2022

세계사를 바꾼 7개의 강 58

2. 이스라엘과 요단강


여리고성 

     

요단강은 갈릴리 호수에서 시작해 사해로 흐른다. 현재는 농업 관개로 인해 개울처럼 되어버렸지만 당시에는 꽤 수량이 풍부했다. 요단강은 해수면보다 아래로 흘러 당시의 기술로는 그 물을 농업에 활용할 수 없었다. 


유대 민족이 요단강을 건넌 것은 4월로 추정된다. 우기의 끝 무렵이어서 제법 강물이 불어나 있었다. 걸어서는 도저히 건널 수 없는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대 백성들은 강물로 천천히 걸어들어 갔다. 믿기지 않는 행동이었다. 


제사장들이 맨 앞에 섰다. 그 뒤를 2백만의 백성들이 뒤따랐다. 강 건너 편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았다면 분명 집단 자살로 여겼을 것이다. 넘실거리는 강물로 바리바리 짐을 진 사람들이 술에 취한 듯 걸어 들어가는 기이한 모습이 펼쳐졌다. 죽음의 행렬이었다.   

   

어쩌자는 걸까.     

선두로 걷던 제사장들의 발이 요단강 강물에 닿았다. 강물은 더욱 세차게 느껴졌다. 물의 흐름은 거침없었다. 제사장들의 몸이 물에 푹 잠겼다. 모두가 숨죽여 이 장면을 지켜보았다. 저대로 두면 다 죽는데. 

200만 명이 강물에 수장되기 일보직전이었다. 


그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강물이 조금씩 줄었다. 조금 전까지 맹렬했던 기세가 확연히 수그러들었다. 서서히 맨 바닥을 드러냈다. 뒤 따르던 백성들은 아예 강바닥을 밟으며 걸었다. 


200만이나 되는 백성들이 모두 건널 때까지 강물은 흐름을 멈추었다. 여호수아로 짐작되는 성서의 기자는 이 진기한 장면에 대해 친절한 설명을 남기지 않았다. 그의 표현은 간단했다.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물에 잠기자 곧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물이 그쳐서 (생략) 물은 온전히 끊어지매 (생략) 모든 이스라엘은 그 마른 땅으로 건너났더라. -여호수아 3:15-17)

요단강이 신국의 국경으로 비로소 제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요단강을 건너면 곧바로 여리고 성이다. 높은 성벽과 깊은 해자를 두른 천혜의 요새다. 가나안 인근에 이만한 조건을 갖춘 성이 없었다. 더구나 성안에는 물과 식량이 풍부했다. 방어에 유리한 모든 것을 갖춘 성이었다. 


외부의 적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에 용이한 이곳은 기원전 7000년께부터 집단 거주지로 자리를 잡고 있었다. 여리고 일대는 인류학적, 고고학적 가치가 높은 인류의 오래된 정착지다. 


호모 사피엔스가 아프리카를 떠나 중동에 이른 것은 약 7만 년 전으로 알려졌다. 약 18,000년 전부터 마지막 빙하기가 물러나면서 지구는 호모 사피엔스의 삶에 적합한 기후로 변했다. 


각종 곡식들이 주변에서 자라나기 시작했다. 이후 인류는 떠돌이 생활방식을 버리고 정착을 늘려갔다. 영구 정착촌이 생기면서 야생곡물을 채취하고 가공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냈다. 기원전 8500년 무렵 중동에는 여리고 같은 정착촌이 여럿 생겨났다.      


가나안 땅을 밟은 유대 백성들은 즉시 요란한 입국 절차를 밟았다. 여리고 성 앞에서 돌칼로 모든 남자들의 할례를 단행했다. 이는 유대인들을 타 민족과 구분하기 위한 엄숙한 제의(祭儀)였다. 고대 이스라엘에선 금속을 제단에서 사용할 수 없었다. 


남자들은 거친 돌로 피부의 일부를 잘라냈다. 마취 없이 수술을 자행해졌으니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아픔보다 더 큰 문제는 이후에 벌어질 일이었다. 이 순간 적이 쳐들어오면 이스라엘 민족은 몰살당할 처지였다.


적들은 유대남자들을 모두 죽이고 여자들은 노예나 첩으로 삼을 것이다. 할례를 끝낸 유대인 남자들은 일제히 전투 불능 상태에 빠졌다. 고통은 차치하고 꼬박 며칠 동안 몸을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 적과의 전투를 눈앞에 두고 자진해서 무장해제를 해버린 셈이다. 


할례는 요단강, 야곱의 사다리와 함께 유대인들이 갖는 타민족과의 구분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야를 거쳐 오는 동안 유대인들은 할례를 할 수 없었다. 그들에게 무 할례는 참을 수 없는 수치였다.  


곧 전쟁에 임할 전사들이 벌렁벌렁 땅에 드러누워 있었다. 제대로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이런 모순이 있을까. 신성한 땅에 무 할례의 몸으로 들어갈 순 없다. 그렇더라도 하필 이런 상황에서 수술을 단행해야 했을까. 

이제 꼼짝없이 전멸당할 처지였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어찌 보면 유대인들의 할례보다 더 이해되지 않는 대목이었다. 유대 군사들이 전투력을 완전히 상실한 채 며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도 여리고의 군사들은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공격을 하면 승리가 보장됐다. 이런 사실을 놓쳤을까, 아니면 함정으로 보았을까. 성서의 기자는 그런 상대의 이해할 수 없는 움직임에 대해선 한 마디 언급도 하지 않았다. 


어이없는 일은 연이어 벌어졌다. 여리고 성의 방비는 단단했다. 성벽을 부셔야하는 유대인들에게는 투석기가 없었다. 공성(攻城)을 위한 가장 기본적인 장비였다. 그런데 성벽은 어이없는 방식으로 무너졌다. 오로지 나팔을 불며 여러 사람들이 큰 소리로 외쳤을 뿐인데 돌로 만든 성벽이 해체됐다. 여호수아서에 나오는 세 번째 이적이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말없이 엿새 동안 성을 빙빙 돌았다. 그저 묵묵히 성을 돌고 또 돌았을 뿐이다. 7일 째 되는 날엔 제사장 7명이 나팔을 불며 성을 일곱 바퀴 돌았다. 그에 맞춰 백성들이 큰 소리로 외쳤다. 그러자 성벽이 갑자기 무너져 내렸다. 


여리고 성에서 유대인들은 잔인했다. 성을 정탐할 때 도움을 준 여인과 그녀의 집안사람들을 제외하고 모든 주민과 그들의 가축마저 죽였다. 호흡이 있는 모든 것을 멸하라는 신의 명에 따른 것이었다. 


신이 이렇게 잔인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은 당연하다. 훗날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 사울과 대 제사장 사무엘의 갈등에서도 신은 ‘모든 생명을 남김없이 죽이라’는 사무엘의 편을 들었다. 모든 생명에는 여자와 어린아이는 물론 그들의 가축까지 포함됐다. 


요단강 이편과 저편은 철저히 구분됐다. 저편에 속한 생명에게 베풀 자비란 없었다. 1948년 개국 이래 주변 국가들과 끊임없이 전쟁을 치러온 이스라엘의 밑바탕 정서를 짐작해 볼 수 있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Deus vult!)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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