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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an Apr 12. 2022

세계사를 바꾼 7개의 강 59

2. 이스라엘과 요단강 


첫 실패 

    

1095년 십자군 전쟁을 선언하며 교황 우르바노 2세가 한 말이다.     

 

여리고 다음 목적지는 아이 성이었다. 작고 만만한 상대였다. 여리고에 비하면 성의 방비도 약하고 주민도 많지 않았다. 여호수아는 3천의 군사를 보내 그곳을 공격했다. 


이 방식은 군사적으론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먼저 적진을 정찰했고, 상대의 규모에 따라 적당한 수의 군사를 보냈다. 그런데 실패했다.  


성서 기자의 결론은 역시 ‘신의 뜻’이었다. 인간의 방식으론 문제가 없었으나 신의 뜻은 달랐다. 전쟁의 승패를 결정하는 것은 인간이 아니라 오직 그 분, 신의 뜻이라는 해석이었다. 구약성경은 끊임없이 이 점을 강조하고 있다. 


표현은 그렇게 했지만 실패 이후 여호수아는 훨씬 신중해졌다. 두 번째 아이 성 공격에는 삼만이나 되는 군사를 보냈다. 유대 군사들이 군사적 전술을 선보이기 시작한 것도 이 때부터다. 유대 군은 거짓으로 달아나는 척하는 위장전술과 매복을 처음으로 펼쳤다.  


상대는 변화된 전술에 당황했다. 더구나 이전의 승리로 그들은 방심하고 있었다. 유대 군사들이 달아나자 앞뒤 재보지도 않고 추격에 나섰다. 아이 성안의 군사들이 모두 밖으로 쏟아져 나오자 매복해있던 유대 군사들이 쉽게 성을 차지했다. 아이 성 1만2천 주민들은 남김없이 몰살당했다. 요단강 이편과 저편의 구분은 엄혹했다. 


승리에 이은 잔인한 학살은 상대의 대응에 변화를 가져왔다. 가나안 부족들은 연합군을 구성했다. 혼자서 안 되니 여럿이 힘을 뭉쳤다. 유대 군은 단숨에 병기와 병력에서 열세에 놓이게 됐다.


여호수아는 또 다른 전략으로 맞섰다. 이번엔 기습전이었다. 한 밤 중에 길갈에서 기브온까지 30㎞를 내달려 새벽을 틈타 적군을 덮쳤다. 숙달된 로마군이라면 5시간에 주파할 거리였다. 그러나 당시 유대 군은 밤을 새워 달려야 했다. 


무방비 상태였던 가나안 연합군의 대오는 쉽게 무너졌다. 전쟁은 오후 늦게까지 계속됐다. 미처 시간이 부족해 적군을 다 죽이지 못했다. 어두워지면 전투를 거칠 수밖에 없었다. 여호수아는 기도를 올렸다. 그러자 서편으로 기울어가던 태양이 멈추어 섰다. 


태양이 머물고 달이 멈추기를 백성이 그 대적에게 원수를 갚기까지 하였느니라. -여호수아서 10:12 이 구절은 나중에 천동설의 배경이 됐다. 태양이 멈추었다는 것은 곧 태양이 움직인다는 의미다. 지구는 그대로 있고, 태양이 움직인다는 게 천동설이다. 이로 인해 지동설을 주장하던 많은 과학자들이 죽음으로 내몰렸다. 


유대인들이 가나안을 모두 정복했다. 이후부터 사사의 시대가 열렸다. 고대 이스라엘 사사(Judge)는 재판관이면서 전시에는 군사 지휘권을 가졌다. 사사시대를 거치며 조금씩 신권이 약해지면서 이스라엘 역사상 최초로 왕정시대가 열리게 된다.  


이스라엘 역사에는 12명(13명이라는 주장도)의 사사가 있었다. 그들의 권한은 한시적이었다. 용도가 없어지면 곧 자리에서 물러났다. 로마 공화정의 독재관과 비슷한 위치였다. 


이스라엘에서 왕정은 절대로 허용될 수 없었다. 이스라엘은 신이 직접 다스리는 나라였다. 그런 만큼 신권이 강력했다. 사사들은 주어진 역할을 마친 후 원래의 위치로 돌아갔다. 12명 가운데 마지막 사사가 긴 머리카락으로 유명한 삼손이다. 


이 무렵 이스라엘의 숙적 블레셋이 등장했다. 블레셋은 팔레스타인을 가리키는 말이다. 지중해를 건너온 블레셋 민족은 이미 철기문명을 받아들였다. 뛰어난 무기에  체격도 월등해 오랫동안 유대인들을 괴롭혔다. 이들 사이 악연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라는 이름으로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삼손은 블레셋 여인 데릴라의 유혹에 빠져 힘의 원천인 머리카락을 잃었다. 그로인해 눈이 뽑힌 채 신전에서 맷돌을 돌리는 신세로 전락했다. 삼손은 신전의 돌기둥을 무너뜨려 3천 명이나 되는 블레셋 사람들과 함께 죽었다. 영화의 소재로 자주 나올 만큼 드라마틱한 최후였다. 


강력한 이웃의 출현은 강력한 리더십을 필요로 했다. 사사시대의 혼란상은 아테네의 초기 민주정을 연상시켰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웃 나라 같은 강력한 왕을 열망했다. 이솝 이야기에 나오는 개구리들처럼. 


하지만 제사장 사무엘은 이스라엘의 왕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들이 사고를 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왕을 임명해야 했다. 하지만 왕권과 신권의 다툼은 점점 격화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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