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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an Apr 13. 2022

세계사를 바꾼 7개의 강 60

2. 이스라엘과 요단강


 하카톤 

     

사무엘의 아들들이 뇌물을 받고 부당한 판결을 내렸다. 그 일로 사무엘의 정국 장악력이 약해졌다. 어쩔 수 없이 권력의 일부를 왕에게 넘겨야 했다. 이스라엘 역사상 처음으로 신권과 왕권이 분리됐다.  

     

권력은 독차지해야 직성이 풀린다. 권력의 속성은 나누어 가지길 거부한다. 나눌 분(分)에는 칼(刀)로 고기(肉)를 나누어 가진다는 뜻이 담겨있다. 그럴 경우 늘 문제가 되는 것이 공정이다. 항상 남의 고기가 커 보이기 때문이다. 탐욕의 틈새에서 불만이 싹튼다. 


고기 나누기가 그럴 정도인데 하물며 권력은 어떻겠나. 더구나 권력의 크기는 눈으로는 쉽게 측정되지 않는다. 칼이 바르게 나눈다하더라도 이를 해석하는 사람의 눈에는 달리 보이기 마련이다. 


저마다의 눈에 탐욕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욕망이라는 그릇에는 원래부터 적정량이 없다. 권력자가 자신의 권력을 누군가와 나누어 가져야 할 때 비극은 잉태된다.


권력자는 상대에게 들어줄 권력의 양을 최대한 줄이려 든다. 사무엘도 예외는 아니었다. 신권을 장악한 사무엘은 애초부터 누구와 권력을 나눌 생각이 없었다. 누구를 왕으로 삼을 생각은 더더욱 갖지 않았다. 


그의 제자들이 쓴 것으로 추정되는 구약성경은 “백성들의 바람을 기쁘게 여기지 않았다-사무엘 상 8:5”고 인정했다. 백성들의 바람이란 왕을 의미했다. 


그런데 피치 못할 일이 생겼다. 자신의 아들들이 부정부패에 연루됐기 때문이다. 성서는 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생략했다. 결국 이 일로 백성의 다수가 원하는 왕을 지목해야만 했다. 그러나 왕을 선택하는 자와 왕을 바라는 자들의 일치점은 요원했다.

   

사무엘이 원하는 왕은 조금 모자라는 왕이었다. 백성들에겐 불신 받고, 자신에겐 고분고분하고. 그런 조건을 만족시키려면 초라한 가문 출신이어야 했다. 흠결이 많은 인물일수록 좋았다. 정치적 카리스마와는 거리가 멀어야 했다. 


그를 따르는 자가 많으면 곤란했다. 하지만 외모만큼 번드레할수록 좋았다. 그래야 백성들을 현혹하기 쉬웠다. 겉은 화려하나 속은 허접한 인물. 그런 자를 고르다보니 한참 모자라는 왕을 선택했다. 


사울이라는 인물이었다. 그는 당시 유대의 중심에서 배제된 베냐민 지파에 속했다. 겨우 사면을 받긴 했으나 12지파 가운데 가장 뒤진 집단이었다. 왕으로서 권위를 갖기 힘든 조건이었다. 


사울은 우유부단하고 수줍음을 잘 타는 성격이었다. 모든 것이 사무엘의 마음에 들었다. 그를 왕으로 지명했다. 왕이 된 후에도 사울은 여전히 밭에서 소를 몰며 농사를 지었다. 그저 외모 하나만 그럴 듯했다. 이때까진 문제가 없어 보였다. 


그러나 자리가 사람을 변하게 했다. 막상 왕으로 뽑히고 나니까 슬슬 임명권자의 뜻을 그르치려 들었다. 그래서 권력은 아들과도 나눌 수 없나 보다.      


사무엘과 사울의 관계는 줄곧 삐걱거렸다. 그런 중에 사울의 권력은 조금씩 커져갔다. 그에게는 사무엘이 가지지 못한 것이 하나 있었다. 군사력이었다. 마오쩌둥의 말처럼 예나 지금이나 권력은 총구(군사력)에서 나온다.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승리하면서 사울의 그립감은 점점 더 단단해졌다. 


사울의 힘이 커질수록 사무엘과의 관계는 악화됐다. 마침내 이 둘은 정면충돌했다. 숙적 블레셋이 쳐들어왔을 때 사울은 즉각 군대를 출동시켜야 했다. 상황이 급박했으나 그럴 수 없었다. 신국에선 전쟁에 앞서 먼저 제사부터 지내야 했다. 그러나 제사를 주관할 사무엘이 제때 나타나지 않았다. 


다급해진 사울은 자신의 주제로 제사를 올렸다. 하지만 이는 제사장 사무엘에 대한 명백한 월권이었다. 사무엘은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 –사무엘 상 13:14’이라며 경고했다. 


사무엘과 사울은 아말렉과의 전쟁 후 완전히 갈라지게 된다. 사무엘은 전쟁을 앞두고 “적의 군사는 물론 남녀노소 모든 백성과 그들의 가축까지 진멸하라”고 명했다. 그런데 사울은 사람만 죽이고 양과 소 가운데 좋은 것들을 남겨 두었다. 두고두고 활용하기 위해서였다. 


사무엘은 “내 귀에 양의 울음소리가 들림은 어찌된 일이냐”며 사울을 다그쳤다. 분노한 사무엘은 왕을 퇴위시키기로 작정했다. 신성(神聖)이 세속의 권력보다 앞선 시대였다. 


수 천 년 후에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신성 로마제국 하인리히 4세 황제가 교황 앞에 무릎 꿇었다. 이른바 ‘카노사의 굴욕’이다. 이 사건은 ‘아비뇽 유수’로 이어지며 교황권의 약세를 불러왔다.  


사무엘은 새로운 왕을 물색했다. 새 왕의 조건도 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번엔 더 열악한 상대를 물색했다. 그는 작은 마을 베들레헴으로 찾아갔다. 훗날 예수가 태어난 곳이다. 사무엘은 시골 목동의 집안에서 왕재를 찾으려 했다. 여덟 명의 아들을 둔 이새라는 목동의 집이었다. 


눈치 없는 목동은 장신에다 미남인 맏아들 엘리압을 먼저 선보였다. 사무엘의 성에 찰리 없었다. 이미 잘난 사내에게 실망한 다음이었다. 잇달아 일곱 명의 아들을 내보였으나 모두 사무엘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직 막내가 남아 있긴 한데. 설마 막내가 사무엘이 원하는 왕재 일리 없었다. 막내는 히브리어로 ‘하카톤(haqqaton)’이라 부른다. 이 단어에는 ‘하찮고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그 날 이새의 막내아들 다윗은 형들에게 중요한 일(왕위 간택)이 있어 홀로 양을 돌보고 있었다. 양은 늘 누군가의 돌봄이 필요한 동물이다. ‘하카톤’ 다윗은 보기에 평범했다. 가문도 좋지 않았다. 룻이나 나합 같은 이방 여인의 피를 이어받았다. 


모계를 중시하는 유대 사회에서 모압 여인의 피가 섞였다는 것은 왕가의 혈통으론 낙제점이었다. 다윗은 ‘하카톤’ 다윗을 왕으로 간택됐다. 이로 인해 이스라엘은 극심한 내전으로 빠져 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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