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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십세기 소년 Jan 30. 2021

#모두의 4차 산업혁명 : 11교시

거대사를 통괄하는 산업혁명 클래스

반가워요.

오늘은 우리나라 역사로부터 오늘을 이해하고 내일을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 봅시다.


#18. 열 것이냐 말 것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최익현의 일성록,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위 사진은 제가 대한민국 역사박물관(서울시 중구 소재)에서 직접 찍어 온 것인데요, 조선말기 연암 최익현 선생 일성록(日星錄)의 한 장면입니다. 제가 대표적으로 많이 예를 들며 사용하는 '애정하는' 그림이기도 합니다. 지금껏 보지 못한 내연기관을 장착한 서양의 이양선 출몰을 바라보며 술렁거리는 듯한 조선 선비들의 모습(오른쪽)을 보시기 바랍니다. 지금껏 보지 못한 새로운 문명과의 본격적인 조우의 순간입니다. 


 당시 시대상을 조금 더 살펴보도록 하죠. 때는 1차 산업혁명이 지나고 2차 산업혁명이 활발히 진행되던 시기입니다. 19세기 후반 유럽과 미국에서는 자연 과학 발달과 전기·석유 등 새 동력 자원의 사용으로 생산력이 비약적으로 늘게 되었죠. 비록 세계 대전이란 모순된 사건으로 말미암아 철강·전기·석유화학 등 중화학 공업이 발전했으며, 자본주의 발달로 시장을 지배하는 대기업이 등장하게 되었지만 말이죠. 이후 국가 간, 기업 간 경쟁이 치열해졌고 서양 열강들은 산업 발전에 필요한 값싼 연료, 그리고 상품의 안정적인 판매처를 확보하기 위해 해외로 눈길을 돌리던 때입니다.


 방식은 모두 일반화를 할 수는 없지만 폭력적이었다고 전해집니다. 식민지 쟁탈과 수탈로 점철된 독점 자본주의와 배타적 민족주의가 결합된 제국주의 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아프리카·아시아·남아메리카 약소국을 식민지로 만들어가고 있었던 때입니다. 제국주의 열강은 우수한 백인이 미개한 지역에 문명을 전달해 주는 것은 당연하다는 백인 우월주의와 사회 진화론을 내세워 강대국으로서 약소국 지배를 합리화하던 시기였습니다. 한마디로 대항해 시대로부터 시작된 미지의 세계로의 순수한 여정은 점차 폭력적이고 이기적인 수탈과 핍박, 살육의 역사로 변모하게 된 것이죠. 


 당시 조선도 급변하는 세계정세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죠. 청나라와 일본은 서양 열강의 군사력에 굴복하며 각각 1840, 1854년에 문호를 개방하게 됩니다. 이에 서양 열강은 더 적극적으로 조선에 통상을 요구해 왔지요. 18세기 후반부터 이양선이 우리나라의 연해에 잇따라 출몰하여 해안을 측량하고 탐사하며, 통상 수교를 요구하자 조선 정부와 백성은 위기의식을 느꼈다고 전해집니다. 미국이 일으킨 제너럴 셔먼호 사건(1866)과 신미양요(1871), 프랑스가 자행한 병인양요(1866)가 대표적이죠. 강화도를 침략해 마을을 약탈하고 수백 점의 문화재를 빼앗아가기도 했습니다. 


 당시 조선은 60여 년간 이어진 세도정치로 집권층은 부패하고 백성의 생활은 피폐해진 상태였습니다. 이에 흥선대원군은 안으로는 적폐청산과 국가기강을 바로잡고 밖으로는 통상 수교의 문을 걸어 잠그는 쇄국정책을 펴게 되지요. 이때에는 사회층의 인식과 여론도 한몫 거들게 됩니다. 1860년대에 시작된 위정척사 운동은 서양의 통상 요구에 대응하여 서양과의 교역을 반대하는 통상 반대론을 내세웠습니다. 이어서 서양의 무력 침략에 대응하는 척화 주전론을 내세워 대원군의 통상 수교 거부 정책을 강력하게 뒷받침해 주게 되죠. 그리고 문호 개방을 전후한 1870년대에는 유생들이 왜양 일체론과 개항 불가론을 들어 개항 반대 운동을 전개하기도 했습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인 최익현은 개항에 반대하는 이유로 일본의 침략에 의한 국가 자주성의 손상, 일본과의 교역에 의한 산업의 피폐, 천주교의 확산에 의한 미풍양속의 파괴 등을 지적하는 상소를 올렸다고 합니다.   

 

[척화비 / ⓒ 한국민족문학대백과사전]

 ‘서양 오랑캐가 침범하였을 때 싸우지 않는 것은 화친하는 것이오, 화친을 주장하는 것은 나라를 파는 것이다. 우리의 만대자손에게 경고하노라. 병인년에 짓고 신미년에 세우다’라는 글귀를 새긴 척화비를 종로 네거리를 위시한 전국 교통 요충지 200여 개소에 세우고 쇄국정책을 선언합니다. 이는 통상 수교 거부 정책은 서양 세력의 침략을 일시적으로 저지하는 데에는 성공하였으나, 변화하는 세계정세에 주체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게 되는 상황을 가져오고 위기를 심화시키는 계기를 만들고 말았죠. 


 일본은 마침 조선에서 대원군이 물러나고 고종의 친정이 시작된 틈을 타 1875년 운요호 사건을 도발하여 1876년에 강제로 ‘조일수호조규(강화도조약)’를 체결하기에 이릅니다. 여담입니다만, 당시 강화도 조약을 체결하는 자리에서 한 조선 관료는 “우리 사이에 이런 형식이 뭐가 필요한가 그냥 하면 될 것을”이란 이야기를 했다는 설도 전해집니다. 또 강화도 조약의 효력이나 영향력에 대한 충분한 검토도 없이 무지한 상태로 의미없이 체결에 응해줬다는 설도 있으니 관료들조차 얼마나 세계정세에 귀 닫고, 눈이 멀었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저는 이 상황을 후에 국권까지 피탈당하게 만든 조선 역사상 최악의 불평등·불공정 MOU로 자주 표현하는데 아무튼 이로써 쇄국정책은 종지부를 찍고 조선은 아무런 준비 없이 문호를 개방, 세계 자본주의 열강 앞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고 맙니다. 


 만약 이 시기에 치밀한 전략과 비전을 갖고 서양 열강들과 활발한 교역을 통해 근대화를 적극 수용했다면 우린 지금 어떻게 변해있을까요? 매우 다양한 시나리오가 있겠지만 한 가지 확실한건 국제관계에서 소극적, 피동적 태도는 그만큼 기회비용을 더 크게 잃게 된다는 결론입니다. 낯선 세계의 모습에 두려워하고 있는 듯 보이는 ‘일성록’ 속 그들의 모습에서 마치 현재 4차 산업혁명을 대하는 우리의 상황 또한 별반 크게 다르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유럽은 개인정보보호와 활용을 위해 GDPR(General Data Protection Regulation, 유럽연합일반데이터보호규칙)을 제정하여 강력하고 안전한 개인정보 정책을 주도하고 있고, 스위스는 블록체인 금융 특구를 지정하여 글로벌 블록체인 시장을 선도하려 하고 있습니다. 일본은 오래전부터 원격진료를 시행해 오고 있고, 미국은 인공지능 개발 환경에 최적인 빅테크 플랫폼, 데이터 경제를 자랑합니다. 자율 주행차는 테슬라, 웨이모를 비롯해 레벨 4~5단계의 완전 자율주행 상용화에 주력 중이죠. 우린 어느 하나 손쉽게 선도할 수 없는 상태입니다. 여러분은 어느 쪽에 서시겠습니까? 일단 그때처럼 문을 굳게 닫는 것이 최선일까요? 조금 더 나중에 천천히 해도 괜찮다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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