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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십세기 소년 Jan 31. 2021

#모두의 4차 산업혁명 : 17교시

거대사를 통괄하는 산업혁명 클래스

오늘 시간은 산업혁명의 대표적인 분야, 자동차를 주제로 이야기를 이어나가 볼께요. 


#24. 우리나라 자동차 史                       

                      

 우리나라는 그때 어떤 상황이었을까요? 이 시기는 영국 외 미국과 독일을 중심으로 2차 산업혁명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던 때입니다. 우리는 불행히도 산업혁명의 르네상스를 함께 하지 못하고 서서히 국격이 몰락해가는 과정에 놓여있었습니다. 세계 최초의 불평등 조약이라 칭하는 강화도 조약을 시작으로 일본의 국권 침탈이 본격화되던 시기였고, 어렵사리 1945년 해방을 겪고 난 후 1953년 또다시 6.25 전쟁이 발발하며 국토가 초토화되게 되죠.


 이후 전쟁의 아픔을 극복하며 세계 최빈국 대열에서 거듭나기 위한 노력이 시작되었는데요. 공업 발전을 상징하는 것 중 대표적인 것이 자동차 산업이죠. 우리나라 최초의 자동차를 아시나요? 보통은 현대 자동차의 ‘포니’를 최초의 자동차로 알고 계신 분들이 많더라고요. 그러나 ‘포니’는 우리나라 최초의 국산모델 브랜드를 가진 자동차였고, 최초의 타이틀은 이름을 제대로 명명하기 어려운 ‘시발 자동차’가 그것입니다.(웃음) 첫, 최초의 자동차라는 의미가 있겠습니다.     


[시발자동차 /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시발’이라는 이름의 자동차가 생산된 것은 한국 전쟁이 끝난 직후인 1955년 8월의 일입니다. 최초의 자동차는 을지로 천막 안에서 최무성, 최혜성, 최순성 3형제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전쟁이 끝나자 파괴된 자동차들의 부품을 활용하여 운행 가능한 자동차를 만들어내는 자동차 재생 산업이 활기를 띠었기 때문입니다. 지프의 엔진과 변속기, 차축 등을 이용하여 드럼통을 펴서 만든 첫 지프형 승용차로 우리 손으로 만든 첫 자동차였죠. 시발은 2도어 4기통 1.323cc 엔진에 전진 3단, 후진 1단 트랜스미션을 얹었으며, 국산화율이 50%나 되어 긍지가 대단했으나, 한 대 만드는데 4개월이나 걸려, 시발자동차의 값이 당시 8만 환으로 너무 비싸 사가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1955년 10월 광복 10주년을 기념하여 경복궁에서 열린 산업박람회 때 최무성 씨가 시발차를 출품하여 최우수 상품으로 선정됨과 동시에 대통령상을 수상함으로써 신문에 크게 보도되자 을지로 입구에 있던 그의 천막 공장에는 시발차를 사가려는 고객으로 문전성시를 이루었으며, 이로 인해 가격도 하루아침에 30만 환으로 뛰어 올랐다고 합니다. 대통령상을 받은 후 한 달도 못되어 1억 환 이상의 계약금이 들어와 이 돈으로 공장도 사고 시설도 제대로 갖추어서 양산 체제로 돌입했다고 하죠. 특히 영업용 택시로 인기가 높아서 흔히 지금 기억하시는 분들은 ‘시발 택시’로 많이들 알고 계시더라고요. 


 시발자동차는 소위 ‘빽’을 써야만 살 수 있을 만큼 인기가 있었다고 합니다. 상류층 사회에서는 이 자동차를 구입하기 위한 ‘시발계’까지 등장하였다고 합니다.


 자동차 공업을 발달시키기 위해 대한민국 정부는 1962년에 ‘자동차 진흥 정책’을 발표하였고, 자동차공업보호법을 시행하였습니다. 외국의 자동차 제조업체는 지역 업체와의 조인트 벤처 형태를 제외하고는 대한민국 국내에서 사업을 하는 것이 금지되었습니다. 정부의 이러한 정책은 다른 산업 분야에서 창립된 기업이 자동차 산업에 진출하여, 신생 업체를 창립하는 효과를 가져와 산업 부흥을 도모하였죠. 


 이후 현대자동차는 1975년 대한민국 최초의 고유 모델 자동차인 ‘포니’를 개발하여 1976년에 판매하기 시작했습니다. 같은 해 대한민국 승용차 시장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어 자동차가 많지 않던 시대에 10,726대가 판매되어 43.5%의 점유율을 보였다고 하죠. 이를 통하여 대한민국은 아시아에서는 일본에 이어 2번째로, 세계에서는 16번째로 고유 모델 자동차를 만든 국가가 되었습니다.


 제가 어린 시절에 저희 아버지가 포니를 구입하셔서 저희 네 가족이 서울 근교로 드라이브 나가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 서울 근교였다 하더라도 비포장 도로가 여전히 많아 덜컹거리는 차 안에서 멀미를 심하게 했던 기억도 있군요. 또 아버지께선 쉬는 날이면 커다란 고무다라와 긴 고무호스를 사용해 앞마당에서 정성껏 세차 하시던 모습과 차를 안 쓰는 날에는 회색 덮개로 꽁꽁 포장해 놓으셨던 것도 생각나네요. 오늘따라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많이 그립군요.


[포니 최초 모델 / 대한민국역사발물관에서]

    

 이후 현재까지 급속한 발전을 이뤄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가장 발전된 자동차 생산국 중의 하나가 되었습니다. 시발자동차가 등장한지 65년여가 지난 지금 우리의 자동차 산업은 놀랍게도 세계에서 경쟁력을 가진 주력 산업으로 부상한 것이죠. 1988년 연간 국내 생산량이 100만 대를 초과하였으며, 1990년대에는 디자인, 퍼포먼스, 기술 측면에서 그 능력을 입증할 뿐만 아니라, 그 완숙함을 나타내는 모델 생산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전기차 양산은 물론 수소차까지 연료 혁신을 이어가고 있고, 자율주행 기술도 점차 발전하는 과정에 있습니다. 이제는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이 자동차의 역사가 없었다면 현재와 같은 상황은 늦게 찾아왔겠지요. 


 1796년 증기 자동차가 최초로 등장하고 근 200여년이 지나는 동안 세계에서는 눈부신 기술발전을 이뤄냈습니다. 이제 인류는 삶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을 온전히 기계에 넘기려고 하고 있습니다. 바로 오랜 숙원인 자동차의 핸들을 완전히 놓는 것입니다. 운전을 하지 않고 이동하게 됨으로써 인류는 훨씬 더 많은 시간을 절약하기 위한 새로운 시도에 도전하게 됩니다.


다음 시간에는 미래 자동차 전쟁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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