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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포터 Mar 10. 2021

나의 첫 직장은 실패했다.

나의 일본 취업의 모든 것

“혜리 씨의 첫 직장은 어디에요?”

 종종 이런 질문을 들을 때마다 나는 대답 대신 이 말을 덧붙인다.

 “어떤 회사를 말하는 건가요?”


 나에게는 두 가지 회사가 있다. 하나는 입사 예정인 신분으로 약 1년 동안 발만 담가왔던 곳이고 다른 하나는 실제로 입사해 근무를 하고 있는 곳이다. 나는 이 두 개의 회사 중 어디를 첫 회사라고 말해야 할지 망설이고야 만다. 일반적으로라면 두 번째의 경우만을 첫 회사라 하겠지만 나에게는 첫 번째의 경우에 나름의 역사가 담겨 있는지라 첫 회사 같은 느낌이 농후하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첫 회사의 기준을 묻고야 만다.


 지금부터 나를 혼란스럽게 한 그 첫 번째 회사에 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나는 일본 취업을 준비했었다. 1년간의 일본 교환 유학 끝에 일본에서 일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멋모르고 지원한 일본 기업에 운 좋게 2차 면접까지 가게 되자 일종의 확신이 들었다. ‘생각보다 일본 취업이라면 잘 해낼 수 있을지도 몰라!’ 지극히도 미약한 근거였지만 저스펙을 갖고 있고 앞으로의 커리어를 고민하던 내게는 넘치고도 충분한 계기였다. 그렇게 나는 한 해 동안 일본 취업 준비에 몸을 담갔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일본 취업은 실패했다. 여러 가지 의미로 말이다. 실패한 첫 번째 이유는 타협과 합리화로 기업을 택한 것이고 두 번째 이유는 입사일이 밀리면서 입사를 포기한 것이다.


 타협과 합리화

 첫 번째부터 이야기하자면, 내가 입사하기로 한 회사는 나의 성에 차지 못했다. 중소 SI 업계였으며 그곳에서의 역할은 기술직으로서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파견직이었다. 기술을 익히면 설령 해외에서 일한다고 해도 언젠가 한국에 다시 돌아왔을 때 먹고 살 구실은 할 수 있겠지, 라는 막연함에 지원을 한 곳이었다. 


 이 회사 전에 여러 곳의 합격 통지서를 받기는 했지만 나는 그보다 더 좋은 곳에 갈 수 있다는 근자감이 넘쳤었다. 그래서 미련도 없이 입사 거절 메일을 보내고 다시 취준에 매진했었다.


 이것이 안일한 생각이었음을 깨달은 것은 그리 길지 않았다. 딱 한 달. 한 달 동안 다른 곳에 지원하고 모든 서류가 떨어지고, 내가 포기한 선택을 후회하기 반복했다.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무한 루프를 돌고 있는 이 과정에 나는 어딘가 고장 난 것 같았다. 이미 그때는 11월이었다. 이번에 실패하면 내년에도 취준을 해야만 했다. 끝없는 상념과 행위를 끝내고 싶다고 생각하던 찰나에 이 회사에 붙은 것이다. 이곳에 가고 싶지 않았다는 마음보다 취준을 끝내고 싶다는 마음이 더욱 컸기에 입사를 택했다.


 나는 나의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분명 잘 될 거라고 나를 다독였다. 게다가 이 회사는 OJT의 일환으로 매달 본사 직원이 한국으로 와서 한국 입사 예정자들을 교육하는 커리큘럼을 꾸렸는데, 이때 나와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나의 처지를 받아들이기 쉽게 했다. (회사 업무용 메일을 주고, 회사 사람만 볼 수 있다는 기밀문서를 보게 해주는 것에서 회사에 갖고 있던 모든 불만을 내려놓았다. 그렇게 보면 나는 조직 내재화가 참 잘 이루어졌다고 생각한다.)


입사일이 밀리다

 이 상태 그대로 일본에 갔으면 좋았으련만, 여기서 두 번째 이유가 등장한다. 코로나와 입사일에 맞물리게 된 것이다. 원래대로라면 2020년 봄에 나는 일본에 입국할 예정이었다. (일본 취업의 경우, 신입사원이 입사하는 시기는 모든 기업이 일괄적으로 이루어진다. 해외 입사자도 예외는 아니다.) 입국하기 전까지 집을 알아보고 일본 입국을 위한 준비를 해야 할 터였다. 하지만 2020년 3월 초, 일본은 한국인의 입국을 금지했다.


 비즈니스 비자를 가지고 있어도 통용되지 않았다. 그러면서 나의 입사일은 밀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7월이었다. (7월인지 8월인지 살짝 기억이 애매하다.) 그때라면 코로나가 잠잠해질 것이라는 회사의 믿음에서 비롯된 시기였다. 하지만 5~6월이 되어서도 잠잠해질 기미가 보이지 않자 회사는 입국을 10월로 미뤘고 최악의 경우 그다음 해인 2021년 2월 입사를 생각해달라고 했다.


 나는 이미 2020년 2월에 졸업을 한 상태였다. 졸업장이 있어야 비자가 나오기 쉽기 때문이었다. 7월로 입사가 밀렸을 때는 그때까지 나에게 부족한 공부에 매진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이러나저러나 기술직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프로그래밍 공부가 필수였다. 문과의 일대기를 살아온 나는 프로그래밍의 ㅍ자도 모르는 초짜였다. 그래서 한 편으로는 내가 공부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할 수 있는 기간이라 생각했다. 


 게다가 회사 측에서도 나름의 배려를 하겠다는 목표가 있던 것이었는지, 본사 직원들과 한국 입사 예정자들을 모아 zoom 간담회를 매달 주기적으로 마련했다. 이 회사의 소속감을 유지하고 한국인 입사 예정자들의 불안감을 잠재우려는 하나의 조치지 않았을까 지금 와서 생각해본다. 그러나 이 간담회가 나의 지금의 선택을 이끄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다.


 간담회에서 직원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을 때 무언가 켕기는 단어가 들려왔다. ‘자택 대기’라는 단어였다. 인터넷으로 이 단어에 관해 조사해보니, 일하지 못한 채 다음 일이 오기까지 그저 집에서 기다리고 있는 상태라는 의미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월급은 일정 금액 삭감된다. (이후 회사에 개인적으로 자택 대기에 관해 물어본 결과 60% 정도의 월급 밖에 지급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리고 지금 자택 대기를 하는 기술직 사람들이 있다고 했지만, 그 수는 알려주지 않았다.) 파견직의 현실이라며 적힌 글들에 무언가 머리를 한 대 맞은 느낌이었다.


 그래, 일본도 코로나였던 것이다. 그리고 내가 갈 업계는 파견 업계였다. 그것도 인재 파견. 사람이 직접 다른 회사에 방문함으로써 수익을 올리는 구조인데 사회적 거리 두기가 권장되고 있는 현실에 이는 부적합한 수익 모델이었다. 


 ‘지금 내가 일본을 가도 제대로 된 경력을 쌓지 못할 수 있다. 지금까지 쌓아 올린 일종의 합리화가 통용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 생각에 하루하루가 침체될 무렵 입사일이 다시 10월로, 그리고 2월로 밀린다는 이야기가 들려온 것이다.  


 나는 선택을 해야 했다. 일본에 갈 것인가 한국에 남을 것인가. 각각의 장단점은 분명했다. 일본을 택하면 돈의 많고 적음을 떠나 일단 나를 받아줄 회사가 분명히 존재한다는 안정감을 얻을 수 있었지만, 앞으로의 미래가 불투명했다. 한국을 택하면 지금 고민하는 모든 상념에서 벗어날 수 있었지만, 취준을 다시 시작해야 했다. 게다가 그 당시의 나에게는 졸업 이후로 공백기가 생겼기에 이를 상쇄시킬만한 어떠한 경험이나 무기가 필요했지만 나에게 가진 것은 없었다.


 사실 이미 어느 정도 마음이 기울어진 상태였으나, 그럼에도 확답을 내리지 못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나는 너무도 무서웠다, 앞으로 모든 것이 변할, 보이지 않는 미래가.


 그렇게 고민이 꼬리에 꼬리를 물던 중 9월 정도에 일본 입국 금지가 해제되었다는 기사가 나오면서 일본 회사가 비자 발급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비자와 관련된 서류 제출 마감 기한이 내 고민의 데드라인이었다. 그렇게 나는 고민의 끝에 데드라인 당일인 10월 9일, 일본 회사에 입사 취소 연락을 보냈다.


 몇 개월간 고민하고 괴로워하던 몇 개월간의 시간이 무색하게 나의 퇴사는 단 2통의 메신저로 끝이 나버렸다. 그리고 그 하루도 채 되지 않는 시간에 회사와의 모든 연결고리가 끊겼다.


 그 때의 기분은 형용할 수 없었다. 후련하기도 하고 섭섭하기도 하고. 그런데도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참으로 괜찮은 기분이었다는 것이다. 아마 오랜 기간에 거쳐 고민하고 고민한 덕택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후 나는 운 좋게도 10월 말에 스타트업 인턴이 붙어 11월부터 지금까지 인턴 라이프를 즐기고 있다. 일본 it 업계에 약간의 발을 담그며 프로그래밍을 공부하고, 위에 적지는 않았지만, 기획에 관련된 공부한 것이 좋게 보였던 모양이다. 나는 교육 기획으로 이곳에 입사했지만, 지금은 CX 업무를 내 타이틀로 삼고 일하고 있다. 


 사람 죽으라는 법은 없다고 어찌어찌 살아가고 있다. 다행히도 지금 업무도 꽤나 마음에 들며, 꽤나 나쁘지 않은 상태로 그때와는 다른 스트레스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러다가 문득 그 회사를 가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야 만다. 올해 1~2월부터 한국인 입국이 다시 금지되어서 나의 동기였던 사람들은 일본에 입국했을까 하는 궁금해진다. 연락은 끊긴 지 오래라 알 길은 더 이상 없지만 한때 같은 배를 탔던 동지로서 내가 가지 않은 길을 택한 그들의 모습을 나도 모르게 상상한다.


 결과적으로 오랜 시간 동안 염원했던 일본 취업이 이루어지지 않아 내 마음 한구석에는 일본 취업이 동경이자 미련으로 남았다. 그래서 앞으로 나는 나의 동경과 미련을 덜어내는 글을 쓰고자 한다. 일본 취업에 대하여, 일본 기업에 대하여 글을 쓰다 보면 이 동경과 미련이 (지금은 알 수 없지만) 어떤 형태를 보이게 되지 않을까? 그러다보면 나만의 길을 확신하는 때도 오겠지.


 나의 오랜 고민은 이렇게 종지부를 내렸지만 그럼에도 내 마음속에 일본 회사는 길이길이 보전될 것이다. 심심풀이 땅콩 정도로, 술 한잔에 기울이는 가벼운 안줏거리 정도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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