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향살이는 쉽지 않다
어느덧, 일본에 온 지도 두 달을 향해 가고 있다. 그리고 일본 회사 생활을 시작한 지 한 달 하고도 절반이 지나갔고.
일본은 지금 연말연시 휴가 중이다. 법적으로 정해진 휴가는 아니지만 관례적으로 쉬는 휴가인 것 같더라고. 회사 재량에 따라 휴가 기간이 정해지는데, 지금 회사는 12월 28일부터 1월 3일까지가 연휴 기간이다. 그래서 지금 장기 휴가 동안 요즘 일상을 토닥토닥 적어보고 있다.
2023년을 보내고 2024년을 맞이하려 하는 지금 생각보다도 많은 변화에 숨이 턱 막히곤 한다.
요즘 나는 여러모로 방황하고 있다. 특히 정신적으로.
일본에 이직을 하고 나서 비로소 느낀 것이 있다.
정말 나는 일본 취업에 미련만 갖고 있었구나.
꽤나 오래전부터 버킷리스트였다. 일본에서 일해보기. 그리고 그 버킷리스트가 이루어질 듯 말 듯한 상황이 코로나 때 오래 지속되면서, 그게 내게는 큰 미련이 된 거지.
그래서 그 미련을 해소시키고 싶어서 일본 이직을 준비했다. 일본에 가도 후회할 것 같지만 안 가도 후회할 것 같았거든. 이러나저러나 후회할 거라면 하고 후회를 하자, 싶었다. 그래서 이렇게 일본에 왔다.
그렇게 내 버킷리스트는 달성된 것이다.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었다. 일본에 와서 무얼 해야겠다는 목표 설정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런 말이 있지 않은가, 취업이 목표가 되면 안 되고 대학이 목표가 되면 안 된다고. 그걸 통해 무얼 하고 싶은지가 더 중요하다고. 그래 내가 딱 그 꼴이다. 일본에 가는 것이 목표였지, 일본에서 무얼 해내야겠다가 없었던 것이다.
회사를 다니고 일본에서 생활을 하고는 있지만 솔직히 말해서 무얼 위해서 다니는지 그 목적을 잘 모르게 되었다. (생각보다 나는 목적 중시 인간이었던 거라는 새로운 발견을 했다.)
그리고 요즘 일본어의 한계에 몇 번이고 뼈저리게 느낀다.
일본어로 하루 종일 생활하는데, 특히 비즈니스 상황에서 써야만 한다는 것이 요즘 꽤나 버겁게 느껴진다.
회의 내용을 따라가는 것이 버겁고 대화를 하는 것도 버겁다. 사내에서도 아직 말을 제대로 하는 것이 급급한데 거래처와의 회의도 있다 보니 정말 정말 하루하루가 너무 길어서 뇌에 방전이 올 정도다. (자괴감과 자조감은 말할 필요도 없고)
그러다 보니 업무를 이해하는데도 큰 지장이 생기고 있다. 이쯤 되니 지금 프로젝트가 워낙 어려운 내용이라 내가 따라잡지 못하는 것이 당연한 건지, 아니면 그렇게 어려운 내용이 아닌데 언어 실력이 부족해서 그런 건지 감조차 잡히지 않고 있다.
그래서 이제 곧 꽉 채운 2개월 차를 맞이하는데, 이걸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모르겠다. 하루가 너무 길어서 “아직도 2개월밖에 안되었다고?!”라는 생각과 동시에 “아니지, 만약에 지금 1년을 꽉 채웠는데 이 정도 실력인 것보다야 2개월 차에 이 정도의 모자람인 게 훨씬 낫지”라는 생각도 든다.
그만큼 내 머리와 마음은 혼란 그 자체다.
그래서 지금 여기서의 모든 생활을 접고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냐고 한다면, 그건 또 잘 모르겠다.
냅다 모든 걸 내려놓고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몇 번이고 불쑥 튀어나오지만, 뭔가 그렇게 해버리면 미래의 내가 또 다른 자괴감을 안고 살아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냥 그 모습이 너무 선명하게 그려진다.
그래서 조금 더 할 수 있을 만큼은 버텨보려고.
미련으로 시작한 여정이니, 끝나는 것 또한 미련이 사라질 때 홀연히 사라져야겠단 생각을 하고 있다.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 것 같기도)
업무적으로 스트레스를 받고 방향성을 잃어 허둥대고 있지만, 그걸 제외하면 전체적인 생활은 즐겁다. 첫 자취(정말 말 그대로 혼자서 살기)는 생각보다 재밌다. 특히 요리하는 게.
맛은 보장할 수 없지만 먹고 싶은 음식을 만들어 먹고, 남은 재료를 어떻게 하면 다 쓸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것도 좋다. 동네 마트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어디는 무엇이 싸고 어디는 무엇이 비싸고를 알아가는 것마저도.
죽어있던 덕후의 심장을 조금씩 울리는 것도 소소한 즐거움이다. 이번 연휴에는 영화관에 가서 애니메이션 극장판을 보고 오려고 한다. 2024년에는 개봉하는 여럿 극장판들이 있어서 그걸 하나씩 독파해나갈 생각에 소소하게 설레기도 한다.
그냥 지금 느끼는 이 힘듦을 잘 견뎌내면 세계 평화를 이뤄내지는 못할지언정 노벨상을 타는 것도 아닐지언정, 내 삶의 어느 한 분기점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오늘 하루도 보내본다.
2024년에는 조금 더 보람차고 조금 덜 아픈 하루를 보낼 수 있기를!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