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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포터 Mar 10. 2021

나는 우울할 때 사주를 봐

행복은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다.

당신을 도를 믿으십니까? 아뇨 저는 사주를 믿습니다

 

 사주, 그것은 네이버 어학 사전에 따르면 “사람이 태어난 연월일시의 네 간지(干支). 또는 이에 근거하여 사람의 길흉화복을 알아보는 점”이라고 한다. 

 

 내가 사주에 목을 매게 된 것은 작년 9월. 그러니까, 내가 일본 취업을 포기했던 그 시기와 맞물린다. 


 일본 회사 입사가 과연 답인가, 정답 없는 고민이 끝이 보이지 않던 시절 나는 내 인생의 앞날이 무척이나 두려웠다. 이미 나는 잘못된 길로 들어온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사주 앱을 설치했다. 사주는 생일과 태어난 시각으로 나의 앞날을 점쳐주는 것이 아닌가! (단순히 운으로 평가하는 게 아니기에 굉장히 신빙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유사 과학과도 같은 그것에 나는 꽤나 심적으로, 정신적으로 의지했다.


언젠가 나의 재물운에 “계약을 조심해라. 손해를 입기 쉬운 달이다.”라고 적혀 있던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계약을 할 만한 상황이 아니었기에 가벼운 마음으로 엄마에게 전후 상황을 설명했다. 그러더니 엄마는 말을 꺼냈다.


 “일본 집 계약 아닐까? 곧 있으면 일본 입국 금지 조치 해제되는 분위기라며?”


 그 말에 나는 “오! 맞는 것 같아!”라며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그날그날의 운세를 알아보고 그달의 운세에 귀 기울이며 그 상황을 어떻게든 합리화를 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때까지는 그저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느낌으로 운세를 파악했는데 내가 온전히 사주 폴인럽이 된 데에는 큰 계기가 있었다.




 일본 회사에 입사 취소 통지를 하고 한국 취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고 있던 때, 사주에서 이런 문구가 나왔다. 


“전번도 모르는 지인이 나를 회사 사람에게 소개해서
나를 스카우트하려고 한다.” 

 

 솔직히 나는 이 결과를 처음 봤을 때 피식 웃어넘겼었다. 나는 그 당시 24살이었고 내 주변에서 취업한 사람은커녕 취준을 하는 사람도 없었다. 다들 대학생인 마당에 무슨 스카웃이라는 말인가! 사주도 엇나갈 때가 많았기 때문에 이번에도 그러려니 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러다 우연히 인턴이 붙게 되어 11월 입사가 결정되고, 남은 휴일을 유유자적하며 보내던 중 한 카톡 메시지를 받았다. 그 카톡의 주인공은 O 언니였다. (이전 글에서 설명한 적 있지만 내가 입사를 포기한 여러 일본 기업 중 한 회사에 입사한 언니다. ) 


 그 언니와는 가장 최근에 랜선 술자리를 가진 적이 있었다. 그러다 묵히고 있던 감정을 언니에게 털어놓았다.


 “사실 나는 그 기업을 포기한 걸 엄청 많이 후회했어.
그래서 그 기업에서 일하고 있는 언니가 너무 부러워.”


 그 연락 이후 2주 만에 온 연락이었다. 


 언니는 카톡으로 내 안부를 묻고는 가장 먼저 내 전화번호를 물어보았다. 대수롭지 않게 연락처를 넘겼고 그 후로 전화 통화로 언니가 전해준 이야기는 다음과 같았다.  


    저번에 혜리 네가 우리 회사 오지 않은 걸 후회했다고 했잖아? 내가 인사 부장님께 너에 대해서 전했더니 한 번 회장님께 혜리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라고 하더라고. 그러면 서류 없이 바로 면접 보고 우리 회사 올 수 있을 것 같다는데, 혹시 너만 괜찮다면 회장님께 네 이야기 해도 될까?  


 예상치도 못했던 이야기에 나는 잠시 사고가 멈췄다. 언니와 나의 관계는 참으로 얄팍했다. 우리 둘 사이의 공통점은 정말 이것이 다였다. “동기가 될 뻔했던 사이”. 이것 외에 공통점이 있거나 같이 나누었던 추억이 있던 것이 아니었다. ‘왜 이렇게까지 잘해주는 거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그것보다도 내가 스쳐 지나가듯 한 이야기에 귀 기울여 마음을 써준 언니에게 나는 이루 다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고마웠다.


 그러다 문득 어느 사주 내용이 내 머릿속을 스쳤다.


 확실히 언니는 내 전화번호도 없었다. 친구나 선후배 그런 느낌보다도 지인이란 느낌이 강한 관계였다. 그리고 언니가 회사 사람에게 전한 내용은 취직과 관련된 내용이었다. 


 언니의 이야기에 얼떨떨하던 정신이 갑자기 화들짝 깨어났다. 언니의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나는 대뜸 이 말부터 꺼냈다.


 “언니가 내 귀인이구나!”




 나는 떠듬떠듬 사주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언니도 내 이야기에 많이 놀란 눈치였다. 이게 무슨 일인가 하며 서로 웃어 보였다. 나는 언니에게는 일주일 정도 생각할 시간을 받을 수 있었다.


 이쯤 되자 ‘나는 그 회사에 가야 하는 운명인 건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안그래도 최근 사주에 심취해있었는데 이렇게까지 지독히 얽혀버리면 이게 내 운명인가 싶지 않겠는가? 그래서 나의 사주와 지금 이 상황이 나에게 무엇을 말해주려고 하는 것인지 꽤 깊이 고민했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나는 언니의 제안을 거절했다. 언니의 제안은 내년 4월인 2021년 4월 입사를 염두에 두는 것이었는데, 나의 인턴 계약 기간이 딱 4월에 끝나게 되어 있었다. 다시 말해 인턴 생활을 제대로 마치지 못한 채 일본을 가야 하는 것이었다. (일본의 경우, 입사일로부터 최소 15일 정도 전에 미리 입국해야 한다. 거주지 등록, 휴대폰 개통, 계좌 개설 등 앞으로의 생활에 필요한 기초 준비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 코로나라는 상황을 고려하면 자가 격리 시간을 포함해, 한 달 정도 먼저 가 있어야 하는 셈이다.)


 물론 면접을 한 번 봐본다고 해서 내가 무조건 합격하는 것도 아니었기에 가벼운 마음으로 볼 수도 있는 것이었겠지만 그때의 나는 그러기가 싫었다. 인턴에 합격했을 때 나 스스로 다짐했던 것이 있었다. 앞으로의 사회생활을 위해 인턴 때 첫발을 잘 디디고 싶었다. 그래서 첫 시작을 잘하는 것도 중요했지만 인턴을 잘 마무리하는 것도 내 인생 계획에 중요한 포인트였다.


 그런데 일본 회사를 택하게 되면 나의 이 다짐은 어긋나게 된다. 그 불안감과 무언가 설명할 수 없는 켕김에 구태여 무리를 하지 않기로 했다. 이전 글에서도 말했듯 나는 그 회사를 동경한 게 아니라 언니들의 일하는 행위를 부러워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아마 언니는 이 부분을 조금 오해한 게 아닌가 싶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 굳이 이 말은 꺼내지 않았다. )




 이날 이후로 사주는 내게 단순한 유사 과학이 아니었다. 내가 힘들 때 나의 길잡이가 되어줄 수 있는 친구였다. 그래서 매일매일 출석 체크를 하고 그날 하루의 점을 치며 나만의 하루를 시작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온전히 사주에 얽매여 동동거리고 있지 않다. 좋은 점괘가 나오면 그날 하루는 가뿐한 마음으로 즐겁게 보낼 수 있고 나쁜 점괘가 나오면 그 하루는 더 나빠지지 않도록 가다 담을 수 있기 때문이다. (때때로는 중요한 날에 사주를 봤더니 그날 하루가 잘 풀릴 거란 결과가 나오면 그게 그렇게 의지가 될 수가 없다!)


 내가 했던 고민과 앞으로의 고민은 정답 없는 문제들의 나열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 무엇을 선택해도 정답이 아니며 그 무엇을 선택해도 오답이 아니다. 정답과 오답이란 건 사실상 우리 인생에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어떻게 하느냐에 달라질 부분일 것이기에.


 어차피 답이 없는 고민이기에 어깨짐을 내려놓고 조금은 가볍게 생각해볼 수 있는 게 아닐까? 


 그래서 나는 오늘도 사주로 하루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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