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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채환 Nov 07. 2023

[열두 발자국]  1/2

함께 책 읽기 ③ - 정재승, 열두 발자국

■ 읽게 된 계기

 "이 분이 엄청 유명한 분이에요"라는 딸아이 추천도 있었고. 여기저기 방송에도 많이 출연하는 분이라, 과학자이신 분인데 어떤 얘기로 청중들을 매료시키는 걸까 평소에 궁금함도 있었다. 



■ 감상 및 추천

 좋게 말하면 그냥 자연스럽게, 좀 문제의식을 가지고 보자면 관성적으로 타성에 젖어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과학'은 어떤 눈으로 현상과 세상과 사회를 바라보는지, '과학적 태도'라는 것은 어떤 자세로 각종 문제들을 마주하는 것인지를 아주 재미나고도 편안하게 소개해주는 책이다. 

 구체적인 과학적 내용들의 소개도 좋고, 지난 추천글에서도 소개했던 '합리주의', '회의주의', '지성주의' 등에 대한 소개와 강조는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합리적 태도란 논리적 관점에서 상황을 들여다보고 원인과 결과를 명확히 찾고자 노력하는 태도를 

   말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여러분에게 '회의주의자'로서의 삶의 태도를 권해드립니다.
 *회의주의적인 삶의 태도란 어떤 것도 쉽게 믿지 않고, 원인과 결과의 관계를 생각해 보려 애쓰는 태도를 

   말합니다.

 *지성주의란 하나의 사상이나 생각에 몰입하지 않고, 우리 모두가 계속 생각하는 주체가 되는 것입니다.

 *반지성주의란 지성의 산물, 지적 노력과 성취를 그다지 존중하지 않거나, 심지어 폄하하고 지적 유산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 태도를 말합니다.

 작가의 우려와 마찬가지로, '반지성주의', '진영 논리', '맹목' 등이 과학적 사고의 반대편에 자리하고 있는 것들이지 않을까 싶다. 



■ 함께 읽으면 좋은 책

▶ [과학콘서트] - 정재승

 : 더 일상적인 혹은 과학과 관련이 없을 듯한 내용 속에 숨어 있는 과학적 원리들이 소개되어 있다. 듣기 좋은 음악, 백화점의 구조, 왜 내 차선만 차가 막히나 등과 같은 재미난 내용들이 많이 있다.


▶ [우리기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 김초엽

 : 역시 딸이이가 재밌다고 추천해줘서 읽은 책. 최근에 중국에서 '최고 인기 외국인작가상'도 수상했다는 뉴스를 보고 다시 기억이 떠올랐다. 한 개체가 죽고 나서 다른 개체가 그전 기억과 경험을 이어받는 등 외계인과 그 문명에 대한 상상과 설정이 매우 독창적이고 참신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 주요 문장 (요약 또는 마음에 드는 문장)

▶첫 번째 발자국 - 선택하는 동안 뇌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마시멜로 챌린지(스무 가닥의 스파게티 면과 접착테이프, 마시멜로 1개로 18분 안에 높은 탑을 쌓는 게임)

미국 경영대학원(MBA) 학생들이나 변호사처럼 소위 가방 끈이 길다고 하는 명석한 사람들이 쌓은 탑의 높이가 유치원생이 쌓은 탑의 높이보다 현저히 낮다는 충격적인 결과를 보여줍니다.


 회사는 종종 계획을 얼마나 잘 세웠는지를 중요하게 따집니다. 그리고 계획대로 일을 진행했는지를 따져 묻습니다. ...

 처음 해보는 일은 계획할 수 없습니다. 혁신은 계획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혁신은 다양한 시도를 하고 계획을 끊임없이 수정해 나가는 과정에서 이루어집니다. ... 특히 처음 해보는 일에서는 계획보다 실행력이 더 중요합니다.

 

 그랬던 여러분을 막고 '도대체 너의 계획은 무엇이냐'를 따져 묻고 시간 계획을 요구하고 나름의 가설을 세우게 하고 거기에 접근하라고 요구하는 곳이 바로 '학교'입니다. 실행력으로 충만했던 유치원생 같은 여러분을 주저앉게 만들고 계획에 치중하게 만든 곳이 안타깝게도 제가 있는 학교라는 곳입니다.


 상금이 커질수록 사람들은 시야가 좁아지고 조급해집니다. 이것을 터널 비전(tunnel vision) 현상이라고 부르지요. 그래서 '어딘가에 기대지 않고 스스로 온전히 서 있을 수 있을 때' 탑의 높이를 측정한다는 당연한 원칙을 무시하게 됩니다. 탑의 균형과 안정은 고려하지 않은 채 그저 높은 탑을 쌓으려고 노력합니다.


 창의적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서는 한 발작국 떨어져 문제를 볼 필요가 있고, 실패하더라도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어야 하는데, 무조건 성공해야 하고 가장 높은 탑을 쌓아야만 한다면 시야가 좁아져서 '과제 집착형'으로 다가가게 된다는 겁니다.


 아이폰 사용자들도 20%만 자신이 이전 핸드폰에는 없던, 이번 아이폰에만 있는 기능을 쓴다고 대답합니다. ... 그렇다면 왜 아이폰을 구입할까요? 그냥 아이폰을 쓰고 싶은 거죠. 아이폰의 그 느낌이 좋고, 모양이 좋고, 자꾸 들여다보고 싶고, 아이폰 사용자 그룹 안에 끼고 싶고요.


 인간의 뇌는 오늘날 자칫 잘못된 의사결정을 하기 딱 좋게 디자인 돼 있습니다. 우리의 뇌는 약 3만 년 전의 원시적인 상황에서 생존과 짝짓기에 필요한 선택을 하기 적절한 정도로 진화해왔습니다. ... 그래서 '저 사람이 내 친구인가 적인가. 저 사람이 내 섹스파트너가 될 수 있는가' 같은 단순한 기준으로 국회의원을 뽑고, 직업을 선택하고, 미래를 계획한다는 겁니다. 


 나이 들어 가장 많이 하는 후회 중 하나가 '이거 괜히 했다'라는 후회보다 '내가 그때 그걸 했어야 했는데'라는 후회라고 합니다. 


 미국 해병대에는 '70% 룰'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70% 정도 확신이 들면 95% 확신이 들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일단 의사결정을 하고 실행에 옮기라는 겁니다. 


 정동영 후보의 공약을 이명박 후보의 공약이라고 보여줘도 이명박 지지자들은 모두 '좋다'고 대답해요. ... 정동영 후보의 공약인지 이명박 후보의 공약인지가 중요하지, 공약의 내용이 중요하지 않다는 얘기입니다. 이것이 바로 '진영논리'를 만드는 뇌의 생물학적 메커니즘이라고 할 수 있죠.


 좋은 의사결정이란 무엇일까요? ... 저에게 물으신다면,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의사결정을 한 후 빠르게 실행에 옮기고, 잘못됐다고 판단되면 끊임없이 의사결정을 조정하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인지적 유연성'이 떨어집니다. 인지적 유연성이란 상황이 바뀌었을 때 자신의 전략을 바꾸는 능력을 말하는 데, 그걸 잘 못하게 돼요. ... 역사학자 아널드 토인비가 말하는 이른바 '휴브리스(hubris, 지나친 자기과신)'가 바로 이런 겁니다. 영웅은 결국 자신을 영웅으로 만들어준 경험에 발목이 잡히는 거죠.


 (이번 선거를) 상식대 몰상식의 대결이라고 얘기해버리는 순간, 상대 진영과는 어떠한 타협도 할 수 없게 됩니다. 반대 진영 사람들을 몰상식한 사람들로 몰면서, 어떻게 몰상식과 타협할 수 있겠어요? ...

 우리 모두에게는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 '저 사람이 저걸 믿는 데에는 나름 이유가 있지 않을까?'라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나와 다른 의견, 미적 취향에 너그러워야 합니다. 다양성을 존중해야 합니다. 


 세상에 나온 우리는 적극적으로 방황하는 기술을 배워서 자기 나름대로 머릿속에 지도를 그리는 일을 해야합니다. ... 그런데 우리 사회는 지도를 그리기 위한 '방황의 시간'을 젊은이들에게서 박탈하고 있습니다. ... 다들 남들이 뭘 하는지 보고, 남들이 가는 데로 우르르 몰려가는 거죠. 집단적 선택 안에 있을 때 나약한 개인은 안전함을 느낍니다. 


 젊은 시절에 자신만의 지도를 그리지 못하면 40대, 50대, 60대가 되어서도 남의 지도를 기웃거리게 됩니다. 남의 지도를 뜯어내 대충 맞춘 '누더기'를 들고, 그걸 자기 지도라고 믿게 됩니다.

  

▶두 번째 발자국 - 결정장애는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가

 대학에 입학해서 '인생에서 반드시 이룰 세 가지'를 정했습니다. 첫째, 당장 죽어도 후회하지 않을 사랑을 한 번 해보는 것, ... 둘째, 우리 학교 도서관에 있는 책들을 모두 읽겠다. ... 마지막으로, 죽기 전에 남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뭔가를 하나 기여하고 세상을 떠나야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획일화된 교육은 지난 50년간 계속 이어졌던 것이니 요즘 세대에만 국한된 문제여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왜 특히 요즘에 와서 결정장애가 더 사회적인 이슈가 됐을까요? 저는 그것이 '사회적 안전망의 부족'과 관련이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 요즘은 사회에서 요구하는 기준을 제때 딱딱 맞추지 못하면 낙오되기 때문에, 패자부활전이 점점 줄고 있어요. ...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만연해 있고 사회안전망이 부재한 상황이 사람들의 결정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실패를 통해 조금씩 나아지는 기쁨을 아는 사람은 성장하지만, 실패가 두려워 시도조차 하지 않는 사람은 성장 자체가 어렵습니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은 신중함이나 경솔함과는 사실 큰 관계가 없어요. 잘하는 것만 해왔던 아이들은 칭찬에 민감하고 인정 욕구가 강합니다. 그래서 칭찬받지 못할 것 같은 일은 아예 안 하는 거예요. 그런데 다른 사람이 나를 얼마나 인정해주느냐보다 내가 그 일을 얼마나 좋아하느냐, 혹은 내 맘에 드느냐가 더 중요한 판단 기준인 사람들은 실패할 것 같더라도 그것을 선택합니다.

 

 결핍이 욕망을 만듭니다. 뭔가 부족해야 그 결핍 때문에 뭘 하고 싶다는 욕망이 생겨요. 요즘 아이들은 ... 결핍이 되기 전에 욕망이 충족된 경험을 오랫동안 쌓아오면서 무언가를 절실히 욕망하지 않는 세대로 성장합니다. 


 결정장애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선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각각의 선택지가 가진 장단점을 파악한 뒤에, 어떤 것이 중요한지를 판단할 때 그 사람이 인생에서 경험한 선호나 우선순위가 적용됩니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에 대한 기준이 명확할수록 결정이 쉬워져요.


 우리는 이성에 비해 감정이 열등하다고 여기지만, 감정은 상황을 빠르게 파악하고 신속하게 행동할 수 있도록 결정을 내리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해요. 감정이 만들어 낸 선호와 우선순위는 의사결정을 할 때 매우 중요하지요.


 우유부단함은 반드시 결정을 내려야만 하는 상황에서 결정을 지나치게 미루는 행위를 말합니다.


 이 말(신중함) 자체가 우리 사회에서는 언제나 옳은 명제인 것처럼 받아들여집니다. 결정 자체를 못하게 해서 변화를 막는 좋은 핑곗거리가 되지요. 얼마나 신중해야 신중한 것인지 기준도 명확하지 않고, 반론을 제기하기도 힘듭니다. 


 평소 결정을 내릴 때 주저하는 편이라면, 의사결정에 시간제한을 두는 것이 중요합니다. 제게는 이 전략이 굉장히 유용했습니다. 마음먹은 그날이 될 때까지 열심히 의사결정을 잘하려고 애쓰고, 정한 시간이 되면 그때까지 얻은 내 생각과 정보를 토대로 결정을 합니다. 


▶세 번째 발자국 - 결핍 없이 욕망할 수 있는가

 독서는 습관이 되기 힘듭니다. 독서가 쾌락이 되어야 평생 책을 읽는 어른으로 성장합니다. 쾌락이 되기 위해서는 어린 시절 책을 읽으라고 강요해선 안 됩니다. 


 아이들의 게임중독을 고치는 제일 좋은 방법은 게임을 정규 과목으로 만드는 겁니다. 아이들에게 게임에 관한 책을 읽게 하고, 게임을 직접 만들게 하고, 게임에 관해 시험을 보고, 정해진 기준만큼 스코어를 못 받으면 낙제를 시키는 거죠. 


 아이가 게임에 빠져 있다는 것은 게임 외에는 다른 즐거움이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학교란 뭘 하는 곳일까요? 공부라는 게 너무 즐거워서 학교를 졸업하고도 평생 공부하고 싶어 하는 학생들을 배출하는 것이 학교의 가장 중요한 의무인데, 지금 우리나라의 학교는 '졸업하면 이런 공부 절대 다시 안 할 거야!'를 외치는 졸업생들을 세상에 내보내죠.


 잘하는 걸 꾸준히 하다 보면 즐길 가능성이 높습니다. 더욱 안타까운 건 좋아하는 것도 생각보다 별로 없다는 사실입니다. 


 제가 몸답고 있는 '대학교'라는 곳은 뭘 해야 하는 공간일까요?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뭔지를 알아내는 곳'이어야 합니다. 


▶네 번째 발자국 - 인간에게 놀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노느냐가 그 사람을 규정합니다. 그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시간도 바로 노는 시간이지요.


 위대한 질문의 매력은 '답하긴 어렵지만 그 질문 자체가 가진 울림이 크다'는 거겠죠.


 저라면 놀이를 '생산적인 결과물이 아닌 즐거움을 추구하는 행위'로 간단히 정의해 보겠습니다. 옥스퍼드 사전을 살펴보니, '특별한 생산적인 목적 없이 우리가 시간을 즐기기 위해 하는 행동'이라고 정의돼 있더군요. 


 아이들을 더욱 창의적으로 만드는 건 장난감 없이 자기네들끼리 놀면서 스스로 장난감을 만들 때입니다. 바로 그 순간 아이들의 뇌가 훨씬 더 발달합니다.


 저는 학교를 얼마나 즐겁게 다니느냐는 자기 스스로 결정하고 선택할 수 있는 것들이 얼마나 되느냐에 달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모두가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로 항상 가득 차 있는 시스템, 그들을 언제든지 내칠 수 있는 사회가 바로 신자유주의 사회입니다. 진정한 자유가 없는 곳에는 놀이도, 창의도, 혁신도 없습니다. 


▶다섯 번째 발자국 - 우리 뇌도 '새로고침'할 수 있을까

 (인생의) 새로고침을 신경과학적으로 해석해 보면 나쁜 습관, 뻔한 일상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시도입니다. 나와 다른 분야에 있는, 다른 관심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려고 의도적으로 노력하지 않으면 그런 사람을 만날 가능성은 점점 적어집니다. 불편함을 견디면서 새로운 사람과 이야기하는 걸 즐기면서 살지 않으면, 내 삶에 새로운 생각이 점점 줄어들 것이라는 문제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여러분은 과거의 경험과 학습 내용을 가지고 그때그때 삶을 꾸려나가야겠지만, 그중 10~20% 정도는 새로운 탐색을 하는 삶을 살아보시길 권합니다. 그래야만 예전에는 못했던 일을 시도해 볼 수 있고, 새로운 삶이 주는 기쁨을 만끽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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