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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채환 Dec 07. 2023

[몰입의 즐거움] 2/3

함께 책 읽기 ⑧ -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Finding Flow

2. 경험의 내용 (계속)

 사람마다 각기 다른 특성도 개인의 행복 체감도에 적잖은 영향을 미친다. 건강하고 자신감이 넘치면서 안정된 결혼 생활을 하고 있고 신앙을 가진 외향적 인물은, 만성 질환을 앓고 있고 자신감이 부족하며 이혼을 한 내성적 무신론자보다 행복다하고 말할 가능성이 훨씬 높다. 


 하루하루 삶의 질을 끌어올리고 싶다고 마음먹은 사람에게 행복은 출발점으로서는 오히려 바람직하지 못하다. ... 아무리 공허하게 살아가는 사람도 자기가 불행하다는 사실을 여간해서는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게다가 행복을 얼마나 느끼느냐는 주어진 상황보다는 개인의 성향에 좌우된다. 


 대체로 외향적인 사람이 내성적인 사람보다 행복하다는 생각을 더 많이 하는 이유도 명랑성과 사교성이 이처럼 행복감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감정은 의식을 상태를 말한다. 슬픔/두려움/떨림/지루함 같은 바람직하지 못한 감정은 마음속에 '심리적 엔트로피'를 조성한다. 무질서도를 뜻하는 엔트로피 상태에 빠지면 우리는 바깥일에 집중하지 못한다.


 내적 동기 부여(이것을 하고 싶다)든 외적 동기 부여(이것을 해야 한다)든 목표를 가지고 있는 것이 집중을 해야 할 어떤 목표도 갖지 못하고 마지못해 일을 하는 싱태보다는 삶의 질을 끌어올려 준다. 


 한사람이 세우는 목표는 그의 자부심에도 영향을 미친다. 백여 년 전에 이미 윌리엄 제임스가 지적한 대로 자부심은 기대와 성공의 비율에 좌우된다. 어떤 사람이 자부심이 낮다면, 그것을 그가 목표를 너무 높게 두었거나 성공한 경험이 몇 번 안 되기 때문일 수 있다. 


 관성은 무시 못하는 것이어서 우리가 가진 목표의 대부분은 유전과 문화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자신의 목표를 다스리는 요령을 터득하는 것은 성숙한 삶으로 나아가는 중요한 첫걸음이다. ... 최선의 방안은 자기 욕망의 뿌리를 이해하고 그 안에 숨어있는 편견을 인식하면서, 사회적/물질적 여건을 지나치게 흩뜨리지 않는 한도 내에서 자신의 의식에 질서를 가져올 수 있는 목표를 겸허하게 선택하는 것이다.


 의식의 내용으로 감정, 목표에 버금가게 중요한 것은 사고의 인지적 과정이다.

 

 생각은 논리적 인과 관계에 따라서 가지런히 배열되는 것이 아니라 두서 없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얽혀 있다. 집중하는 요령을 터득하지 못하면, 다시 말해서 노력을 한곳으로 모으지 못하면 사고는 아무런 결론에 이르지 못하고 지리멸렬해진다. 


 아무리 타고난 재능이 있어도 집중하는 법을 배우지 못하면 성숙한 지능으로 발전하지 못한다.


일상 생활에서는 좀처럼 그런 경험을 맛보기가 어렵지만 그 순간에는 느끼는 것, 바라는 것, 생각하는 것이 하나로 어루러진다.

 예외적으로 나타나는 이 순간을 나는 '몰입 경험'이라고 부르고 싶다. 


 우리는 적절한 대응을 요구하는 일련의 명확한 목표가 앞에 있을 때 몰입할 가능성이 높다. ... 일상 생활과는 달리 몰입 활동은 명확하고 모순되지 않은 목표에 초점을 맞출 수 있게 해준다.


 몰입 활동의 또 하나의 특징은 되먹임, 곧 피드백의 효과가 빨리 나타난다는 것이다. ... 우리는 체스를 두면서 말 하나를 움직일 때마다 형세가 유리해졌는지 불리해졌는지를 안다. 


 몰입은 쉽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아주 버겁지도 않은 과제를 극복하는 데 한 사람이 자신의 실력을 온통 쏟아부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 힘겨운 과제가 수준 높은 실력과 결합하면 일상 생활에서는 맛보기 어려운 심도 있는 참여와 몰입이 이루어진다. 

{몰입의 즐거움], (주)해냄출판사, 47쪽

 삶을 훌륭하게 가꾸어주는 것은 행복감이 아니라 깊이 빠지는 몰입이다. 몰입해 있을 때 우리는 행복하지 않다. 행복을 느끼려면 내면의 상태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고, 그러다 보면 정작 눈앞의 일을 소홀히 다루기 때문이다. ... 달리 표현하자면 되돌아보면서 행복을 느낀다. ... 몰입에 뒤이어 오는 행복감은 스스로의 힘으로 만든 것이어서 우리의 의식을 그만큼 고양시키고 성숙시킨다.


3. 일과 감정

 놀라운 것은 일을 하면서 자주 몰입 경험을 한다는 사실이다.


 하는 일이 몰입 활동에 가까울수록 우리는 그 일에 깊숙히 빠져들고 우리의 경험은 더욱 긍정적으로 변한다.


 습관과 사회적 관성의 압력이 워낙 크게 작용하므로 우리는 어떤 일이 나에게 즐거움을 주고 스트레스를 주는지, 어떤 일이 나를 우울하게 만드는지 잘 알아차리지 못한다.


 하루의 리듬은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고독으로 들어가기와 고독에서 빠져나오기다. ... 심각한 우울증이나 식욕장애가 있다는 진단을 받은 사람이 만일 남들과 같이 지내고 집중력을 요구하는 일을 한다면 건강인의 심리 상태와 구별하기 어렵다.

 

 아무리 낯선 사람이라도 남과 어울릴 때 우리의 주의력은 외부의 요구에 의해 구조화된다. 타인이 눈앞에 있다는 사실 자체가 목표를 제공하고 행동의 결과를 곧바로 알려주는 효과를 낳는다. ... 반면에 아무것도 하는일 없이 혼자 있을 때는 정신력을 집중할 필요가 없어서 마음이 서서히 무너지고 무언가 걱정거리를 찾게 된다.

 보통 친구들과 있을 때 가장 긍정적인 경험을 한다. 


 가족과 함께 지내는 경우 경험의 질은 중간 정도다.


 정신이 구체적 과업에 쏠려 있지 않을 때 몸은 자기 안에서 벌어지는 현상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 시합에 나선 선수들은 시합이 끝나기 전까지 통증과 피로를 까맣게 잊어버린다.


 그러므로 삶의 질을 끌어올리려면 먼저 우리가 매일 하는 것을 세심하게 관찰하여 어떤 활동, 어떤 장소, 어떤 시간, 어떤 사람 옆에서 우리가 어떤 감정을 느끼는 가를 포착해야 한다. 


4. 일의 역설

 일은 우리에게 퍽 묘한 경험을 안긴다. 가장 강렬하고 만족스러운 순간을 일에서 경험하고 자부심과 자기 정체성 또한 그것에서 얻는 경우가 많지만, 그런 일을 보통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든 피하려고 드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일을 하는 청소년들을 추적해보면 자부심이 아주 높게 나타났다. ... 그러나 일하는 시간은 수업 시간처럼 고통스럽지는 않을지라도 즐거움을 만끽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결국 일에 관하여 갖는 애매모호한 태도는 사회 생활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 이미 굳어져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청소년들이 가장 끔찍하게 여기는 건 ... 일 같지도 않고 놀이 같지도 않은 걸 할 때 가장 괴로워한다. 이를테면 평범한 유지활동, 수동적 여가 행위, 그렇고 그런 만남에서 느끼는 감정이다. ... 별로 중요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즐겁지도 않은 일로 소일하면서 자란 사람은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도 인생에서 이렇다할 의미를 발견하기 어려울 것이다.


 흔히 직업에서 얻을 수 있는 목표 의식과 도전 의식 없이는, 자기 절제가 아주 뛰어난 극소수의 사람을 제외하면 의미있는 삶을 누리기에 충분할 만큼 마음을 한군데로 모으기가 어렵다

 

 성인이 일상생활에서 몰입 경험을 언제 하는가를 유심히 살펴보았더니 여가 시간보다 근무 시간에 그런 일이 더 자주 일어난다 ...


 그런데도 기회만 있으면 우리는 일을 줄이려고 한다. 왜 그럴까? 두 가지 이유가 있는 듯하다. 첫째로 들 수 있는 이유는 일의 객관적인 조건이다. 아득한 옛날부터, 돈을 주고 사람을 고용한 이는 자기가 부리는 사람의 복리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 많은 근로자들이 삶의 본질적인 보상을 일에서 기대하지 않고 공장 문이나 사무실 문을 나서야 비로소 행복한 시간을 맛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무리가 아니다.

 둘째 이유는, ... 역사적으로 일을 천시해온 의식과 무관하지 않다. ... 산업혁명기에 ... 여가 시간이 너무 부족했기 때문에 노동자들은 자유 시간이 많아지면 저절로 행복해질 거라고 믿었다.


 문화적 편견에 좌우되지 않고 일을 개인적으로 의미있게 만들고 싶다는 단호한 의지를 갖고 이 문제에 접근한다면 아무리 범속한 일이라 하더라도 삶의 질을 끌어올리는데 도움이 된다. 


 일에서 얻는 본질적 보상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은 물론 전문 직종이다. 전문 직종은 개인이 자신의 목표를 자유롭게 정할 수 있고, 과제의 난이도도 조정할 수 있으며, 개성이 깃들일 여지가 아주 많기 때문이다.


5. 여가는 기회이며 동시에 함정

 일은 필요악으로 여겨진 반면 쉴 수 있는 것, 아무일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행복에 이르는 지름길로 받아들여졌다. 여가를 즐기는 데는 특별한 재주가 필요 없고 아무나 즐길 수 있다는 믿음이 널리 퍼졌다.


 목표가 없고 교감을 나눌 수 있는 타인이 없을 때 사람들은 차츰 의욕과 집중력을 잃기 시작한다. 마음은 자꾸만 흔들리고, 불안감만 조성하는 해결 불능의 문제에 집착하기 시작한다. 마음이 붕괴되는 이런 최악의 무질서 상태를 피하기 위하여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불안의 샘을 의식에서 지워주는 자극에 의존하게 된다. 그것은 드라마 ... 소설 ... 도박이나 섹스 ... 마약 ... 이것들은 의식에서 벌어지는 혼돈을 짧은 시간 안에 줄여주지만, 그 순간이 지나고 나면 남는 것은 허무감과 불쾌감이다. 


 성인들에게 여가 시간이 많이 주어지는 여유로운 사회에서는 마음을 분주히 만들기 위해 정교한 문화적 관습이 발전하였다. 바로 의식이나 춤, 그리고 때로는 몇 날 몇 주 동안 이어지기도 하는 경쟁적 시합같은 것이다.


 몰입할 수 있는 활동은 하나같이 처음에 어느 정도 집중력을 쏟아 부어야 그 다음부터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복잡한 활동을 즐기려면 그런 '시동 에너지'를 어느 정도 확보하고 있어야 한다. 너무 피곤하거나 너무 불안하거나 혹은 처음의 그런 상벽을 극복할 수 있는 인내심이 부족한 사람은, 재미는 덜하더라도 더 편하게 택할 수 있는 대상으로 만족할 것이다. 


 수동적 여가 활동은 불안을 거의 낳지 않는다. 그것은 대체로 사람을 이완시키고 무감각하게 만드는 활동이다. 여가 시간을 수동적 활동으로 채우면 아주 즐겁지는 않아도 어쨌든 골치 아픈 상황은 피해 갈 수 있다. 사람들은 수동적 여가 활동의 바로 이런 점에 끌리는 듯하다. 


 수동적 여가가 문제로 부각되는 것은 그것이 자유 시간을 보내는 유일한 방편으로 쓰이는 순간부터다. ... 몰입 경험을 가장 많이 하는 사람은 책을 많이 읽고 TV를 적게 보는 사람이며, 몰입 경험을 가장 적게 하는 사람은 책은 거의 안 읽고 TV로 소일하는 사람이었다.


 과거의 예를 보면, 한 사회가 사회 성원에게 믜미 있고 생산적인 작업을 제공할 능력이 없어지면 그때부터 여가에 과도하게 의존하기 시작한다. '빵과 원형경기장'은 사회의 붕괴를 오직 잠정적으로만 지연시키는 마지막 버팀목이었다.


 여가는 생산 활동이 너무 구태의연해지고 무의미해진 시대에 득세한다. 앞으로 사람들은 점점 더 많은 시간을 여가에 쏟을 것이고 더 정교하고 인위적인 자극에 의존할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긋지긋한 업무와 판에 박힌 오락 사이를 다람쥐처럼 오가는 생활에 적응하며 산다.


 노인들은 아직도 전통적인 생산활동에서 의미를 찾는 반면 아들과 손자 세대는 시대에 뒤지고 성가시기만한 일에서 점점 손을 놓고 오락에 몰두하여 심란한 마음을 달래려 한다.


 여가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려면 일을 할 때처럼 창조력을 발휘하고 정력을 쏟아야 한다. 사람을 성숙시키는 능동적 여가는 저절로 굴러오는게 아니다. 옛날 사람들은 자신의 실력을 실험하고 발전시키는 데서 여가의 의미를 찾았다. ... 멘델은 그 유명한 유전교배 작업을 취미 삼아서 했고, 벤저민 프랭클린은 직업 의식이 아닌 단순한 호기심에서 렌즈를 깎고 피뢰침 실험을 했다. 에밀리 디킨슨은 자신의 삶에 질서를 만들기 위해 유려한 시를 썼다.


 우리 쪽에서 기량/지식/감정 등 내부 에너지를 투자해야 하는 활동이, 외부 에너지와 많은 장비를 소모해야 하는 활동보다 결코 만족감을 적게 주는 건 아니다. 


 한 사회집단의 생활 방식이 생명력을 잃고, 일이 지겨운 타성으로 변질되고, 공동체의 책임감이 그 의미를 잃어갈수록 여가의 비중은 점점 늘어날 것이다.


 자유롭지 못하므로 의미가 없는 일과 목적이 없으므로 의미가 없는 여가로 삶이 양극화되는 위험성으로부터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직장에서 도저히 흥미를 못 느끼겠다면 여가 시간만이라도 몰입 경험을 할 수 있는 참다운 기회를 찾아나서는 데서 출구를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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