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책 읽기 ⑧ -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Finding Flow
6. 인간 관계와 삶의 질
살아가면서 무엇이 나를 가장 기쁘게 만들고 가장 우울하게 만드는가를 생각할 때, 십중팔구 우리는 타인을 떠올릴 것이다. 연인이나 배우자는 나의 감정을 붕 띄워주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짜증과 울적함을 주기도 한다. 아이는 축복이지만 동시에 골칫거리다. ... 우리가 평상시에 하는 행동 중에서 가장 예측하기 어려운 것이 남들과의 교재다.
단 하루 동안에도 우리는 타인에 대한 평가와 교제의 양상이 수시로 바뀌어 그것이 감정에 여지없이 반영된다.
멍텅구리를 뜻하는 영어 단어 'idiot'는 혼자 사는 사람을 뜻하는 그리스어에서 나온 말이다. 공동체에서 떨어져 나와 혼자 사는 사람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발상이 스며들어 있다.
사람 관계에서 마음이 무질서에 빠지지 않고 바람직한 질서를 유지하려면 적어도 두 가지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하나는 우리의 목표와 다른 사람의 목표 사이에서 어떤 합치점을 찾아내는 일이다. ... 또 하나의 조건은 은 다른 사람의 목표에 관심을 기울일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어떤 사람을 친구로 선택한 것은 그와 나의 목표에 합치점이 있어서이며 서로 평등한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 친구는 일평생을 가도 끊임없이 자극을 줄 수 있는 무한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어 우리의 정서적/지적 기량을 갈고 닦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나이가 들수록 친구와의 사귐이 일시적이고 피상적으로 흘러가기 마련이다. 정서적 위기를 맞이한 성인들이 자주 토로하는 고백의 하나가 바로 참다운 친구가 없다는 것이다.
고정불변의 이상적 가족상이 존재하며 사회적 조건이 아무리 변하더라도 이런 환상을 고수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정직하지 못한 자세다. 그렇지만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부모만이 줄 수 있는 정서적 뒷받침과 보살핌 없이도 한 사회가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 또한 위험천만한 논리다.
가정에서 친구들과 어울리 때처럼 희열을 맛보는 경우는 드물지만 혼자 있을 때처럼 푹 가라앉는 경우도 드물다. 자신의 억눌린 감정을 이렇다 할 부담 없이 쏟아낼 수 있는 곳도 가정이다.
우리의 예상과 달리 우애가 돈독한 가정에서는 오히려 언쟁을 많이 벌인다. 정말로 문제가 있는 가정에서는 부모와 자식이 서로를 피하기에 급급하다.
식구 하나하나의 정서적 안정과 성장을 뒷받침하는 가정에는 두 개의 거의 상반된 특성이 공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원칙과 자발성, 규율과 자유, 높은 기대와 무조건적 사랑의 공존이다.
외로움이 인간의 발전을 부단히 위협해 왔다면 이방인들 역시 그에 못지않은 문젯거리였다. 보통 우리는 혈연이나 인종, 언어나 종교, 교육 수준이나 사회적 지위 등의 잣대를 가지고 우리와 다른 사람을 우리의 목표와는 상치된 목표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여 의심의 눈길을 거두지 않는다.
칼 융은 처음으로 인간의 정신을 내향형과 외향형이라는 개념으로 구분하였다.
7. 삶의 패턴을 바꾼다.
인간적 사회주의를 부르짖은 (안토니오) 그람시는 금세기 유럽 사회사상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고 레닌주의와 스탈린주의의 궁극적 소멸에도 커다란 공헌을 한 사상가다. ... 무솔리니에 의해 중세 감옥에 쓸쓸이 유폐된 상황에서도 그람시는 밝고 희망에 넘치는 편지와 에세이를 줄기차게 썼다. 외부 요인은 하나같이 그람시의 삶을 비틀지 못해 안달이었지만 그는 불굴의 노력으로 지성과 감성의 성숙한 조화를 이루어 후세인에게 값진 유산으로 물려주었다.
쾌활함은 한 사람의 성격에서 상당히 안정되게 나타나는 특성이기는 하다. 그렇지만 만일 우리가 몰입 경험에서 맛볼 수 있는, 밖으로 두드러지지 않는 내면의 즐거움을 진정한 행복이라고 말한다면 사정은 달라진다.
전보다 몰입 경험을 하는 빈도가 크게 늘어난 청소년들은 공부를 더 많이 하고 수동적인 여가에 시간을 조금 투자했으며, 몰입 경험의 빈도가 줄어든 청소년들보다 집중력/자부심/희열/적극성 면에서 더 높은 점수를 얻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직장일을 고역으로 받아들이는 데는 크게 세 가지 이유가 작용한다. 첫째는 하나마나한 일을 한다는 불만이다. ... 둘째는 지겨운 일을 밥 먹듯이 되풀이해야 한다는 데서 느끼는 불만이다. ... 셋째는 직장일이 엄청난 스트레스를 준다는 점이다. 특히 상사가 너무 과도한 요구를 하거나 자신이 하는 일을 제대로 알아주지 않으면 그 스트레스는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올라간다.
전문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대부분의 작업은 반복적이고 일차원적인 활동으로 바뀌었다. ... 활동이 이루어지는 전체 맥락을 늘 염두에 두고 자신의 행동이 전체에 미칠 영향을 생각한다면, 아무리 사소한 작업이라도 세상을 전보다 살만한 곳으로 탈바꿈시키는 인상적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
변화도 없고 긴장되지도 않는 일을 호기심과 성취 욕구를 충족시켜 줄 수 있는 일로 바꾸기 위해서도 마찬가지의 노력이 필요하다. ... 노력하지 않으면 지겨운 일은 계속 지겨운 일로 남기 마련이다.
조금만 태도를 바꾸면 지긋지긋하고 넌더리나던 일이 빨리 하고 싶어서 안달이 날 정도로 기다려지는 환상적 활동으로 변모한다. 그 비결은 무엇일까. 첫째,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고 그 원인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이해하는 데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둘째, 지금의 방식이 업무에 임하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수동적 자세에서 탈피해야 한다. 셋째, 대안을 모색하면서 더 좋은 방법이 나타날 때까지 실험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머리에 떠오르는 이런저런 요구들 속에다 질서를 세우는 일은 스트레스를 방지하기 위한 긴 여정의 출발점에 지나지 않는다. 그 다음은 처리해야 할 일의 성격과 자기 실력을 면밀히 비교하는 단계로 들어간다. ... 일처리 순서를 정하고 일을 끝내는 데 필요한 내용을 분석하며 해결 전략을 수립하는 데 좀더 관심을 쏟아야 한다. 통제력을 잃지 않아야 스트레스를 피할 수 있다. 부담을 극복하는 데 필요한 정신력은 누구나 갖고 있지만 그것을 효과적으로 써먹을 줄 아는 사람은 극소수다.
사람들은 입만 열었다 하면 자기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가족이라고 말하지만 그런 마음을 실천에 옮기는 사람은 많지 않으며 남자는 더더욱 그렇다. ... 어느 집단에서든 사람들을 결속시키는 힘은 대체로 두가지다. 하나는 음식, 따뜻함, 신체적 보살핌, 돈이 제공하는 물질적 에너지며, 다른 하나는 상대방의 목표에 관심을 기울여주는 정신적 에너지다.
흔히 우리는 사회 생활에서 성공을 거두려면 엄청난 정력을 지속적으로 쏟아부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반면에 가족관계는 '자연스러운' 것이어서 정신적 노력이 거의 필요하지 않다고 여긴다. 배우자가 계속 뒷바라지해 줄 것이고 부모에 대한 아이들의 애정도 식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가정을 화복하게 꾸려갈 의무가 가족 구성원 모두에게 에누리없이 요구되는 요즘 사회에서는 가족 한 사람 한 사람이 정성을 기울이지 않으면 가정이라는 틀을 유지하기 어렵다.
8. 자기목적성을 가진 사람
외부의 다른 목적을 달성하려는 의도보다는 일 자체가 좋아서 하는 사람이 자기목적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무슨 일을 하더라도 그 일이 하등의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기가 하는 일은 대부분 중요하고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고 굳게 믿는 사람이 있다.
자기목적성을 가진 사람은 원하는 일을 하는 것 자체가 이미 보상이 되기에 물질적 수혜라든가 재미/쾌감/권력/명예 같은 별도의 보상이 필요하지 않다.
자기목적성이 없는 집단은 TV를 보는 시간이 15.2%로 자기목적성이 있는 집단의 8.5%보다 두 배나 많았다. ... 자기목적성을 특징짓는 가장 중요한 변수가 바로 시간을 보내는 방법이다.
ESM 방식으로 수십 년 동안 연구해 오면서 나는 본인의 입으로 털어놓는 행복감은 그 사람의 삶의 질을 썩 잘 반영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 자기목적성을 가진 사람이 반드시 더 행복한 것은 아니지만 아무튼 복잡한 활동을 하고 있으므로 자신에 대한 만족감은 그만큼 클 수밖에 없다. 행복을 느낀다고 해서 반드시 훌륭한 삶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실력을 높이고 우리의 가능성을 채워 우리를 성장시키면서 행복을 맛보는 일이다. 자라나는 세대에게는 이 점이 특히 중요하다. 무위도식하면서 행복하다고 말하는 어른이 되어서도 진정으로 행복한 삶을 누리리라고는 기대하기 어렵다.
또 하나 흥미로운 사실은 자기목적성을 가진 집단이 그렇지 않은 집단보다 가족과 지내는 시간이 유달리 많다는 점이다.
자기 목적성을 가진 사람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반견되는 특징이 있다. 지칠 줄 모르는 정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자기목적성을 중시하는 사람은 나라는 울타리를 가볍게 뛰어넘어 삶 자체를 향유할 수 있는 정신적 여유를 가지고 있다.
창조적인 사람은 대체로 자기목적성을 중요시한다. 획기적인 업적이 그들의 머리에서 나오는 이유는 대수롭지 않아 보이는 일에도 정력을 쏟을 수 있는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난 문제를 푸는 게 너무 좋다. 고장난 식기세척기건 말을 안 듣는 자동차건 신경 구조건 간에 말이다. ... 나는 문제의 유형을 따지지 않는다. 문제를 푼다는 것 자체가 즐겁다. ... 인생에서 이처럼 흥미진진한 일이 또 있을까?
중요한 것은 이런 관심을 사심없이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본인의 이해 관계에서 벗어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어떤 사람이 기울이는 관심의 내용이 당사자의 목표나 야심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 있을 때만 현실을 있는 그래도 포착할 기회를 잡게 된다.
어렸을 때부터 호기심과 관심을 키우는 연습을 해오지 않은 사람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삶의 질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이 점에 신경을 써야 한다.
먼저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건성으로 할 게 아니라 정신을 집중하여 처리하는 습관부터 몸에 익히도록 하자.
시간이 부족해 보이는 것은 사실은 자기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해서인 경우가 많다. 우리가 하는 일중에서 우리에게 정말 꼭 필요한 일이 얼마나 될까?
바깥에서 오는 자극이나 도전이 나의 관심을 앗아갈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스스로 먼저 관심을 기울이는 훈련을 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흥미도 자연스럽게 늘어나서 둘 사이에는 피드백 관계가 형성된다.
우리가 어떤 대상에 흥미를 느끼는 건 그만큼 거기에 공을 들였기 때문이지 저절로 그렇게 되는 건 아니다.
고통을 정면으로 응시하여 그 현실성을 인정한 다음, 우리가 선택한 다른 대상으로 하루빨리 관심을 돌릴 때만 우리는 고통의 사슬에서 벗어날 수 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성자가 되기 위해 기도를 하고 훌륭한 이두박근을 얻기 위해 운동을 한다면 활동의 의미는 반감된다. 활동 그 자체를 즐길 수 있어야 한다. 결과는 대수롭지 않으며 나의 관심을 다스리는 데서 희열을 맛보면 그만이라는 자세로 임해야 한다.
9. 운명애
우리가 자신에게 너무 빠져 있다는 걸 알리는 신호가 도처에서 울리고 있다. 가령 우리는 남들과 어울려 사는 데 극도로 무능해졌다. 그 결과 선진국 도시 인구의 절반은 혼자서 살고 있고 치솟은 이혼율은 좀처럼 수그러들 줄 모른다.
듣기 거북한 소리 안 들으려고 머리를 모래더미에 푹 파묻고 자기만의 세계로 운둔하려는 경향이 갈수록 강해지고 있다.
불가에서는 그 비결을 이렇게 설명한다. "우주의 미래가 내 한 손에 달려 있다는 생각을 한시도 접지 말되, 내가 하는 일이 대단한 일이라는 생각이 고개를 들 때마다 그걸 비웃어라."
자아 감각이 없는 동물은 생물학적 욕구가 어느 정도 충족되면 그 선에서 몀춘다. ... 그러나 권력이나 재산에 뿌리를 둔 자아상을 발전시킨 인간은 끝없이 이익을 탐한다. 그 과정에서 본인의 건강이 상하고 다른 사람이 피해를 입게 되더라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아가 설정한 목표를 무자비하게 추구한다.
자기를 깨닫는 작업의 중요성은 금세기에 들어와 특히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에서 강조되었다. ... 어린 시절의 외상(外傷)만 쫓아내 버리면 그 다음에는 순탄한 삶이 전개되리라는 턱없이 단순한 기대를 사람들에게 불어넣는 결과를 낳았다.
심리 치료에서는 환자의 회상과, 숙련된 분석가가 그것을 듣고 환자의 과거 경험을 공유하는 작업을 중요시한다. ... 문제는 이런 유형의 치료가 널리 퍼지면서 사람들이 자신의 과거를 되돌아보고 반추하면 갈등은 저절로 해소되리라는 그릇된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ESM 조사를 보면 자신의 과거를 회상할 때 사람들은 대체로 침울해진다.
현재의 불안이 과거를 채색하고 다시 그 고통스러운 기억이 현재를 더욱 암울하게 만드는 악순환의 고리가 형성된다. 이 고리를 깨부수는 한 가지 묘책은 좋은 일이 생겼을 때, 자기 기분이 상승세에 있을 때 삶을 반추하는 것이 습관을 들이는 것이다.
우리가 하는 일은 대부분 어쩔 수 없이 의무감 때문에 하는 일, 혹은 달리 하고 싶은 일이 없어서 하는 일이다. ... 해결책은 간단하다. 자진해서 원하는 일을 늘려야 한다.
자신의 선택을 받이들이는 태도는 니체 철학의 중심 개념이라할 '운명애'에서 잘 드러난다. ... "운명애를 가진 사람은 위대하다는 게 나의 신조다. ... 불가피한 것을 견디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것을 사랑할 줄 아는 태도다." ... " 나는 피치 못할 일을 아름답게 받아들이는 법을 자꾸자꾸 배우고 싶다. 그럼 나도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사람이 될 수 있을 테니까."
심리학자 칼 로저스도 비슷한 생각이다. ... "심신이 건강한 사람은 확고하게 결정된 것을 자유 의지로, 자발적으로, 능동적으로 선택하고 추구할 때 가장 확실한 자유를 경험할 뿐 아니라 그것을 선용한다." 그러므로 니체와 매슬로의 말대로 운명애는 자의에 의한 것이든 타의에 의한 것이든 자기 행동의 주인 의식을 가지려는 자세에 다름아니다.
인간 세상에 나타나는 무질서의 성격을 규정하는 것은 예로부터 종교의 몫이었다. 기독교에서는 이것을 '죄'로 보았다. ... 모든 사람이 이익만 좇아서 행동한다면 공동체는 와해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모든 종교는 이기심에 눈이 먼 사람의 말로를 보여주는 시나리오를 준비해야 했다.
우리가 갖고 있는 개인 의식이 죽고 난 뒤 어딘가에 보존되든 아니든 깡그리 사라지든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 하나 있다. 그것을 나라는 존재가 전체 현실을 구성하는 씨줄과 날줄의 일부분으로서 영원히 남으리란 것이다.
어떻게 하면 남들에 대한 책임감을 잃지 않으면서도 삶을 즐겁게 만드는 목표를 찾아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