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 농장] 1/2
함께 책 읽기 ⑨ - 조지 오웰, 동물 농장
■ 읽게 된 계기
십여 년 전쯤, 집 책꽂이에 있던 아동용 문학전집을 살펴보다가 흥미로워 보여서 뽑아서 읽어 보았다. 매우 잘 짜여진 이야기인 데다 비유와 상징성마저 아주 뛰어나다는 느낌이 들어서, 도서관에서 원작을 빌려서 본격적으로 다시 읽고 탄복했던 기억이 있다. 이번에도 책꽂이를 둘러보고 있는데 다른 [동물농장]이 한 권 더 있길래 딸아이에게 물어보니 논술수업에서 읽은 책이라고 한다. 다시 읽어보니 다른 연관된 책들이 줄줄이 떠올라 소개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 감상 및 추천
▶ 동물동장 (이번 책)
러시아 볼셰비키 혁명 이후부터 스탈린 시대까지를 대상으로 하여 작품을 집필했다고 되어 있으나, 현대 사회에 대입해 보아도 큰 차이 없이 잘 들어맞는 작품이라고 생각된다. 비둘기와 스퀼러는 언론에, 까마귀는 종교 지도자에, 돼지들은 지배층에, 개들은 거기에 기생하는 친위부대 및 기득권층에, 일반 동물들은 일반 대중에 비할 수 있겠다.
'풍차'도 매우 상징적이다. 풍차만 생기면 농장 동물들의 생활이 일거에 편리해지고 윤택해질 것처럼 제시되어서, 그 목표를 향해 동물들은 고단한 노동과 적은 음식량에도 굴하지 않고 공동체와 미래세대를 위해 열심히 일한다. 천신만고 끝에 그 목표를 이루게 되지만 기대했던 삶은 펼쳐지지 않고, 장밋빛 미래를 약속했던 돼지들은 뻔뻔하게 말을 바꾼다.
안타깝지만 복서를 비롯한 대부분의 동물들은 상황이 나빠짐에도 지도층을 믿으며 '더 열심히' 일하는 선택을 할 뿐이다. 원래도 글을 읽고 해득하는 능력이 떨어질 뿐 아니라, 반복되는 말바꾸기나 정책/제도의 부당성도 쉽게 알아채지 못해서 반대는커녕 제대로 된 질문조차 하지 못한다.
영화 [내부자들]에서 미래자동차 회장은 "그래서 인간들은 덜도 말고 딱 굶어 뒤지지 않을 만큼만 살게 해 줘야 딴생각을 안하는기다." 라고 말한다. 한겨레신문 칼럼 [권력의 과시적 소비]에서는 "... 모든 힘을 매일의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투쟁하는 데 써야 하는 절대 빈곤자들은 내일을 생각할 여유조차 없기에 보수적으로 될 수밖에 없다. ..."는 내용이 있다.
조지 오웰이 작품에서 의도했던 '무지와 무기력이 권력의 타락을 방조한다'는 경계를 마음에 잘 새겨야겠다. 바쁘고 빠듯한 일상에 쉽지 않은 일이지만 말이다.
▶ '디스토피아 소설'들에 그려진 미래 사회 (아래에서 소개할 책들)
공통적으로 전제하고 있는 가정과 우려들이 있어 보인다.
*우리가 불행해지는 이유는 : 가난, 질병, 분쟁(정치적/이념적 견해차, 범죄, 전쟁) 등이다.
*이걸 없애려면 : 감정, 욕망(욕심)을 없애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 가정, 국가를 없애고(단일 국가로), 사상을 한 가지로 통일하고, 자유를 제한하여 일탈을 방지해야 한다(출생과정에 개입, 교육, 향정신성약물 사용 등).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불공정을 만들어내는 가장 본질적인 근원은 '가정'제도에 있다고 보았다.
[우리들]에서 "명백하게도, 인간을 범죄에서 구원하는 유일한 수단은 그를 자유에서 구제해 주는 길밖에
없다."는 문장이 있다.)
*그 과정에서 개인은 불가피하게 : 무의식화, 몰개성화, 탈인격화, 무비판성, 탈정치화되어 간다.
*그 결과 : 독선적인 전체주의 체제가 만들어진다. 즉, 그 체제를 운영하는 가치 및 운영방식이 옳은지, 도덕적인지, 최선인지를 검증받고 수정/개선해 나갈 여지가 없는 사회가 되고, 전체의 안녕과 행복을 위해 각 개인의 존재와 가치는 소멸되는 사회가 된다.
*사실 숨은 의도는 : 불행을 예방/제거한다는 명목하에 대중을 고도로 통제하는 독재/경찰국가를 만들어, 소수의 지배층을 위한 '자유로운 유토피아'이자 전체 대중에게는 통제 속에 세뇌된 '환각적 유토피아'를 만들려고 당초부터 의도했던 것이 아닌가 의심된다.
많은 작가와 학자들의 우려와 경계 덕분에 이런 사회로 바로 가게 되지는 않을 듯하다. 더 교묘하고 간파하기 힘든 방식이 사용되겠지만, 결국 '유토피아'로 가고 있다고 시민들이 착각하게 만들어 그들의 '자발적 합의'를 이끌어내서 소수의 야심가 세력이 원하는 세상을 만드려고 할 것 같다.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동물농장 해설에 다음과 같은 문장이 있다. "조지오웰의 비관적 태도는 비관만으로 끝나지 않고 권력의 타락을 막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에 대한 통찰도 동반한다. [동물농장]이 함축하는 메세지 가운데 하나는 동물들의 무지와 무기력함이 권력의 타락을 방조한다는 것이다. 독재와 파시즘은 지배 집단 혼자만의 산물이 아니다. 권력에 맹종하고 아부하는 순간 모든 사회는 이미 파시즘과 전체주의로 돌입한다."
영화 [서울의 봄]이 700만을 돌파했다고 한다. 역사적 문제에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반역사적 행위에 분개하는 모습에 공감하고 다행스럽게 생각하는 시선이 많다고 한다. 한편 갈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똑같은 행동, 똑같은 소비를 하는 사회가 되어가는 것은 두렵다. [몰입의 즐거움]에서 지적했던 현대인의 '획일화된 소비와 획일화된 여가'가 우리의 행복지수에도 영향을 주겠지만, 우리 사고의 획일화에는 영향이 없을까? 깨어있는 시민의식을 유지하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 함께 읽으면 좋은 책/영화
▶ [우리들] - 예브게니 자먀찐. 1920.
: 책 안내글에 "20세기 디스토피아 소설의 효시에 해당되는 작품으로 [1984], [멋진 신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쓰여 있다. [동물 농장] 부록으로 삽입된 1946년에 쓴 <자유와 행복>이라는 글에서 이 책과 [멋진 신세계]에 그려진 암울한 미래사회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이 글을 읽고 뒤늦게 알게 되어 효시적 작품이지만 관련 책 중에 오히려 제일 마지막으로 읽게 된 셈이다.
혼란과 범죄와 예외가 일절 없는 정돈(?)된 고도의 통제사회를 표현하기 위해서인지, 주인공이 보고 들은 것, 느낌, 의식 상황 등을 수학적인 개념과 기호 등으로 표현한 것이 많은데 매우 독특하다. 현실과 비현실의 상황을 넘나들며 그것을 의식의 흐름에 따라 기술하는데, 주인공의 혼란스러운 감정을 잘 표현하면서 초현실적인 방황과 모험을 하는 느낌이 들게 한다. 통제된 사회, 그 속에 무기력하게 안주하는 몰인격화된 시민, 반체제세력(체제에 대한 금지된 의문을 갖는 사람) 등의 설정이 아래 작품들을 떠오르게 한다.
세계는 하나의 국가가 되었으며 가족제도가 없고, 모든 집들이 유리로 만들어져 속이 들여다 보이게 되어 있고, 획일화된 인간은 이름대신 번호로 불리고, '시간 율법서'라는 시간표에 따라 모두가 생활하며, 모든 이가 찬양하는 '은혜로운 분'이 영도하는 사회다.
▶ [멋진 신세계] - 올더스 헉슬리. 1932.
: 사회적 필요와 역할에 따라 국가가 관리하는 공장에서 각각 다른 소양과 신체를 가지고 태어나, 통제된 사회에 필요한 의식들이 교육과 세뇌를 통해 주입되어 살아가는 미래 사회다. 분쟁을 없애고 안정된 행복을 위해 가족제도가 없고 일정한 부부, 연인 관계가 없이 자유롭게 만나고 성적 교류도 한다. 역시 이런 사회에 회의와 의문을 느끼는 주인공이 나오고 '야만인'이라 불리는 출산을 통해 태어난 과거문명인과 만나면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국가를 통해 '소마'라는 향정신성의약품을 지급받는데, 슬프고 고통스러운 감정이 들 때마다 복용하면 기분이 전환된다. [우리들]에서와 비슷한 개인용 항공 교통수단이 나온다.
▶ [1984] - 조지 오웰. 1949. (동물농장은 1945년 출간작)
: <나무위키>에서는 [우리들], [멋진 신세계], [1984]를 디스토피아 소설 3대 고전으로 소개하고 있다. [우리들]에 '은혜로운 분'이 있다면 이 책에서는 '빅 브라더'가 있다. 역시 고도의 통제사회이고 국민들을 감시하는 사회이다. 언론이 통제되는 수준을 넘어 시민들의 의식을 조종하기 위해 과거의 보도와 간행물들의 내용을 조작하는 설정이 기억에 남는다. 쥐를 이용해 주인공을 고문해서 자백을 받아내는 장면은 정말 소름끼쳤다.
▶ [칼레파 타 칼라] - 이문열 단편, 1985.
: “아름다운 것은 이루어지기 어렵다.”는 뜻의 그리스 속담이다. 고대 그리스를 무대로 시민을 위한 진정한 민주주의가 실현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주는 글이다. 독재자를 몰아내기 위한 시민들의 혁명이 성공하고 혁명에 앞장섰던 사람들이 새로운 집권세력으로 들어서지만, 머지않아 부패하고 이전보다 더한 독재를 하게 된다. 시민과 나라를 위해 앞장서서 싸웠던 사람들은, 이제 새 정권의 친위대가 되어 권력을 지키는데 혈안이 되어 더욱 사납게 시민을 탄압한다. 긴 세월 민중과 고락을 함께하며 싸우던 투사가 정권을 잡은 후 독재자가 된 사례가 비일비재하니 꼭 소설 속 얘기라고만 할 수는 없겠다.
▶ [기억 전달자] - 로이스 로리. 1993.
: 가족제도는 있으나 아이는 국가에서 낳고 지정된 가정에서 일정 기간 양육하도록 한다. 통제된 사회이고 구성원들은 일정한 나이가 되면 사회에서 수행할 역할을 부여받는다. 유일하게 '기억전달자' 한 사람만 통제에서 벗어나 비교적 자유로운 생활과 사고를 할 수 있고 공동체에서 유일하게 과거에 대한 기억을 전임자로부터 전수받는다. 역시 차기 '기억전달자'로 선발된 주인공이 이 체제에 의심과 회의를 갖는다.
야생 자연 및 과거에 대한 기록, 경험 등이 일절 없는 상태에서 자라 온 주인공이 , 전임자로부터 과거의 경험을 전달받는 장면이 정말 생동감 있고 감각적으로 묘사되어,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의 감각 세계가 늘 곁에 있기 때문에 그토록 감동과 환희에 찬 세상인 줄을 우리가 모르고 살아가는 것인가 되돌아보게 된다.
미숙한 상태로 태어나거나, 공동체의 규칙을 심각하게 위반하거나, 정년퇴임 하게 되는 사람은 '임무 해제'라는 처분을 받게 된다.
▶ [이퀼리브리엄] - 커트 워머 감독 영화. 2002.
: 역시 고도의 통제, 감시 사회이고 개인에게 감정이나 욕망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일체의 문학, 예술 작품, 술 등이 금지되어 있고, 이것을 소유하거나 감상하는 행위는 불법이다. 주인공은 이런 규정을 위반하거나 체제에 저항하는 세력을 색출해서 처단 혹은 체포하는 보안요원 중 최고 정예요원이다.
감정을 배제하기 위해 시민들은 매일 [멋진 신세계]의 '소마'와 같은 알약을 복용해야 한다. 약을 복용하지 않거나 규정에 위반되는 행동을 하는 경우 부모도 고발하는 비정한 사회이다. 주인공도 뭔가 이상함을 느끼고 약 복용을 중단하게 되면서 사회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고 오히려 저항세력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