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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 Sep 21. 2024

달과 6펜스

윌리엄 서머싯 몸 <<달과 6펜스>>

처음 이 책을 접하게 된 계기로는 누군가 미술작품 전시회를 홍보하는 문구를 보았다. 전시회 명칭이 '달과 6펜스'란다. 어느새 번뜩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 '아! 이 책을 한 번 읽고 싶구나.' 책을 읽기 전에 잠깐 검색해 보니, 화가 '고갱'의 삶을 모티브로 하였고, 작가는 '고갱'의 삶에 대한 자료를 조사하기 위해 실제로 타히티 섬에도 가기도 했단다. 화가 '고갱'이라면, 누구나 들어봄 직한 유명한 이름... 첫 장의 페이지를 넘기면서, '그래, 예술가의 삶은 어떤걸까? 그들의 고뇌는 어떠할까?' 내가 모르는 그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기대를 안고 읽어 나갔다. 소설 속의 주인공, '스트릭랜드'를 보면서, '아! 고갱의 삶이 이렇게 처참하기도 했고, 이렇게 자기의 이상을 쫓기 위해서 강렬했던가? 그 시대는 알아보지 못했던 천재 화가의 삶, 오로지 그리기 위해 그림을 그리지, 먹고 살기위해 그리는 게 아니구나!' 등등의 내적 감탄을 연발하였다. 사실을 근간으로 했다고 했으니, '스트릭랜드'의 삶이 곧 '고갱'의 삶이었다고 여기며, '고갱'의 삶에 대한 경외감을 갖기도 했다. '아, 고갱이 정말 이렇게 살았을까?' 책을 모두 읽고 난 후, 유투브를 찾아보고, 웹검색도 하다보니, '소설 속의 '스트릭랜드'와 실제에서의 '고갱'의 삶은 너무 많이 다른데?...'하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그래, 어디까지나 소설이다..그러면 소설에 충실하여 그 이야기로 들어가 보자.    


먼저, 스트릭랜드(주인공)는 증권중개인으로서의 삶을 살아간다. 연봉도 꽤 괜찮을 터이고, 아내와 아이들도 함께 행복한 가정을 꾸리며 살아가고 있는 평범한 가장의 삶이다. 큰 불평없이, 큰 혼란없이 가정을 꾸려 살아가고 있다. 그러던 어느날, 스트릭랜드는 홀연히 아내와 아이들을 버리고 '파리'로 간다. 오로지,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모든 것을 버린다. 파리에서의 그의 삶은 더럽고 형편없는 비좁은 방 한 칸의 호텔방, 삐뚫어져 있던 그의 대화방식, 혼자만의 작업, 남에게 자신의 그림을 보여주지도 않으며, 먹고 살기위해 그것들을 팔지도 않는다. 궁핍한 생활을 해 가면서도, 그가 살아가는 이유는 오직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였다. 다른 이들은 모두 무시했지만, 오직 '스트로브'만이 그의 천재성을 알아보았고, 자신의 부족함에 대한 동경이랄까... 그러하기에 '스트릭랜드'에게 끌림을 갖는다. 그렇지만, '스트로브'가 베푼 친절은 평생을 잊을 수 없는 절망으로 되돌아 왔고, 그런 아픔을 준 '스트릭랜드'는 죄책감도 없이 오직 자신의 그림 그리는 것을 최우선의 가치로 여기며 산다. 이런 '스트릭랜드'이니, 어디가서 밥이라도 제대로 먹었을까? 일자리라도 있었을까? homeless와 같은 삶을 이어가다가, 정말 운이 좋게도 '타히티 섬'으로 가게 되는 배에 올라탈 수 있었고... 타이티 섬에 도착하면서부터 그는 온전히 그의 작품활동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 아마도 그가 갖고 있던 '이상'에 대한 처절한 몸부림이 영국이나 파리의 도시생활에서 보이지 않는 족쇄에 묶여있다가, 타히팀 섬의 원시생활과 같은 자연안에서 치유되었던 것은 아닐까? 그 섬의 토인들에게서는 '인간, 그 자체로의 존재'가 서로 통한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하다. 그러나, 화가로서의 최고의 삶도 저물어져 가고... 어느덧 스트릭랜드는 문둥병에 걸리게 된다. 그러나, 아픔을 참아가면서, 죽어가는 순간까지, 자신의 눈이 멀어서까지도, 자기 방 안에 감동의 명작품(벽화)을 남기고, 그 안에서 완전한 죽음을 맞는다. 그리고, 그의 유언에 따라 그 집은 남김없이 불에 태워진다. 그의 마지막 혼연의 작품이 그려졌고, 그의 삶은 그 안에서 최고의 기쁨을 얻었으며, 이제 그가 없어지면, 작품도 남겨짐이 없듯이...그렇게 사라졌다.  


아마도, 나는 앞으로 화가 '고갱'의 삶에 대하여 그리고 그의 작품에 대하여도 관심을 갖게 될 것 같다. 몇 편의 영화로도 이미 고갱의 삶은 소개되어진 것으로 안다. 그런 영화들도 애정을 갖고 볼 수 있을 듯하다. 그럼, 제목은 왜 '달과 6펜스'일까? 이런 의구심이 떠오르게 되었고, 책 속의 내용에서는 제목의 의미를 발견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 또한 곧바로 '구글검색 !'... '달과 6펜스'는 이미 작가의 다른 작품에 대한 논평에서 나온 말로, 작가는 이 비유를 그 다음 작품의 제목으로 마음 속에 두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이상'을 대변하는 '달'과 '바로 앞 현실'을 대변하는 '6펜스'는 이 소설 속의 스트릭랜드 뿐만 아니라, 여러분이나 나에게나 모두 갖고 있는 제목이라 하겠다. 우리가 보고 있는 '달'과 우리가 접하는 '6펜스'... '달'만을 보려다가 '6펜스'를 무시해 버리지는 않는지... '6펜스'만을 보려다가 '달'은 보지 못하고 지나가고 있지는 않는지... '죽음'이 우리에게 다가오는 그 때, 편한 미소가 생겨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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