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셰익스피어 <맥베스>를 읽고...
인간이라는 존재가 갖고 있는 욕망! 그것이 '야심'이 되어 '양심'을 먹어버릴 때, 이미 선한 인간으로서의 모습을 거부하게 된다. 자기 야욕을 위해 한 번의 살인을 저지를 때 주춤했던 맥베스가, 주변인들에 대한 거침없는 처형의 광기로 번져가는 모습을 셰익스피어는 보여준다. 이미, 400여년 전의 인간이라도, 태초 시절의 '아담'과 '이브'라 하더라도,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을 욕망의 횃불을 끄집어 보여준다. 굳이, 작가에 대하여나 세계 4대 비극 중의 하나이다 등등의 설명이 필요없는 작품이기도 하다. 단지, 이 책을 선택한 이유라 한다면, 이처럼 유명한 책을 읽어보지 않았던 나였기도 했고, 맥베스와 그의 부인 모습이 대한민국 현실에서도 선명히 보여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책이 그다지 두껍지도 않고, 그리고 희곡 작품이라 읽는 데에 큰 부담이 없다. 누구나 여유있는 시간을 낸다면 커피숍 한 자리에서 시작과 끝을 같이 볼 수 있을 정도이다. 단지, 희곡의 특성상, 구성된 대사가 운문적인 요소로 쓰여졌기에, 영어를 한글로 번역하면서 시적인 표현에 있어서 다소 부자유스러운 부분도 있지 않을까 한다. 마치, '소년이 온다'를 영문으로 번역하는 것과 같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의 내용이 현실의 대한민국 정계에 반영되고 있는 모습이기에 생생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이미 많은 영화나 연극이 발표되었고, 작품에서 보여주고자 하는 바를 크게 왜곡됨없이 보여주고 있는 것으로도 누구나 쉽게 만나볼 수 있겠다.
흔히, 우리가 비유하는 표현으로, '산 개구리를 삶고자 할 때, 뜨거운 물이 아닌 미지근한 물에 넣는다'는 것을 대부분은 알고 있으리라. '뭐든지 한 번이 어렵지, 그 다음부터는 일사천리야'하는 말도 자주 들어왔으리라. 나쁜 일이든 좋은 일이든, 우리는 그 한 번의 순간에 망설이는 경우를 무수히 겪어왔다. 우리의 양심에 있어서도 그렇게 무심코 지나쳐 왔다. 뿐만 아니라, 권력가진 자들의 거짓말도 그렇게 지나쳐 왔다. 눈 앞의 선거표 하나에 눈 멀어, 거짓이 거짓을 감싸는 정치가들의 선전선동을 보아왔다. 매스컴에서 들리는 잔인한 뉴스도 언제부턴가는 일반화된 양 지나치기 일쑤다. 욕망을 목표로 착각하며 살도록 부추기는 광고나 온갖 매체도 그렇지 않은가? 끝없는 욕망은 그들에게 끝없는 이야깃꺼리가 될 것이기도 하다. 이런 세상의 혼란속에서 우리는 살아간다. 지금 '나'를 붙들고 지키고 있는 것은 무얼까? 그런 '나'를 바꿔가고 있는 것은 무얼까? 잠깐이라도 돌아보면 좋으련만... '지관(stop and look, 멈추어 보다)'보다는 '앞'만 보는 데에 너무 익숙해 있다. 여러분도 <맥베스>를 읽어가면서, 야망으로 표현된 권력욕의 처절한 결말만을 보는 것도 좋겠지만, 변화되어지는 과정을 찾아 느껴보는 시간도 함께 가져보길 바란다.
끝으로, 욕망에 사로잡혀 가는 인간 그리고 세상의 부조리에 대하여 멈추어 보는 차원으로, 책 속에 있던 아래의 문장들을 남기며 글을 맺는다.
별들이여, 숨어라! 검고 깊은 내 욕망을 비추지 말거라.
자 너희 악령들아, 흉계 따라 나를 탈성(자기의 흉계를 저지할 것이 분명한 여성성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는 뜻을 전달하기 위하여 만들어낸 말)시킨 다음에 최악의 잔인성을 머리에서 발끝까지 가득히 채워다오! 내 피를 탁하게 만들어 동정심의 접근과 통로를 막아다오, 양심의 가책으로 잔인한 내 목표가 흔들리게 되거나 이루어지기 전에 마음 편치 못하도록!
욕망만큼 행동력과 용맹심을 같이 가진 사람이 되는 게 두려워요?
가장 고운 모습으로 세상 사람 속여요. 마음속의 가식은 가면으로 가려야 한다오.
무절제한 야심이여, 자기 삶의 자산을 다 먹어 치우려 하다니!
우리의 명예를 아첨의 냇물에 담그고 얼굴을 가면 삼아 우리의 본심을 감춰야 할 것이오.
난 속세에 살고 있고 거기선 악행이 자주 칭찬받으며 선행이 때로는 위험한 우행으로 여겨진다.
왜냐하면 달아날 기회만 있으면 위아래 모두가 반기 들고 달아났고, 마음 없이 강요당한 것들 외엔 누구도 그를 돕지 않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