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코스 카잔차키스 <영혼의 자서전 (상)>을 읽고...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의 책을 덮으며, 내 안에서는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에 대하여, 조금 더 가깝게 가보고자 하는 욕망과 그에 대한 궁금증이 서서히 꿈틀대기 시작한다. 그의 펜은 붓이었으며, 그의 단어는 각양각색의 물감이요, 그의 문장들은 감탄을 뿜어내는 세상의 그림이다. 짤막한 그의 이력을 읽으면서, <영혼의 자서전>은 1957년 74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기 1~2년전에 발간한 자서전적인 작품이었음을 알게 됨과 동시에, 마음 속 한 자리를 내 주기로 했다. 생의 종착역에서 그가 남기고 싶어했던 이야기는 무엇이었을까, 조르바의 모습에서 찾고자 했던 카잔차키스 자신의 삶의 마감은 어떠했을까, 울부짖으며 죽음을 맞이한 조르바의 초연함을 작가도 함께 남겨놓고 가려 했을까 등의 질문의 파동이 나를 흔든다. 조바심과 기대로 쌓인 마음과 함께 <영혼의 자서전 (상)>의 첫장을 열고, 나의 느낌을 남기기로 한다. 참고로, <그리스인 조르바>에 대한 나의 소감은 아래의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기도 하다. (https://brunch.co.kr/@2f7251b2d95f47b/2)
먼저,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자신의 어린시절을 통해, 자기의 피 속에서 흐르고 있는 조상의 내력을 보인다. 태어나고 살던 크레타 섬에서의 끊이지 않던 침략들, 그 투쟁의 역사 속에서 지켜내던 독립에 대한 열망, 그 고난을 겪고 일어나게 한 종교적 삶, 매질로 올바른 그리스인을 만들어 낸다는 교육방식 등의 내용은 대한민국에서 내가 자라며 겪었던 것들과 많이 다르지 않기도 하다.(물론, 한국의 정치적 이슈는 다르지만...) 어린시절의 카잔차키스, 친구들과 모여 무의미한 시간을 보내기 보다는 책 속에 파묻혀 고독을 즐기던 아이가 되었고, 이미 총과 칼 대신에 펜과 글로써 그리스의 오래도록 이어오는 전투에 참여할 것임을 다짐하며 성장한다. 그리스 정교를 이어 온 민족의 전통과는 달리, 카톨릭 학교에 다니면서도 우수한 성적을 유지해야 하는 이유가 그에게는 전투였고, 자기의 할아버지, 아버지로부터 이어내려 온 그리스 즉, 크레타의 독립 투쟁이었던 것이다. 책과 고독에 빠져있던 어린 아이가 사춘기가 되고, 그리고 청년의 시간을 지내면서 어떠했을까? 그의 문학적 또는 사상적 깊이는 물 속의 침전물처럼 서서히 탄탄한 토양을 만들어 갔을 것임에는 너무도 당연했을 것이리라.
책의 중반을 접어 들면서는 카잔차키스의 대학 청년 시절때부터의 여로의 기록을 담는다. 여기서'여행'이라기보다 '여로'라고 표현함은, 오감의 만족을 위한 방문의 시간이 아니라, 그 속에서 접한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탐구의 이야기 등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바로 삶과 고민의 기록이었다. 그는 그리스에서 나고 자란 지식인이다. 이는 인간의 무한한 상상력으로 지금까지도 이어지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모든 신들을 자유롭게 자신의 이야기에 등장시키고 퇴장시킬 수도 있었을 것이다. 더불어, 그는 자연을 보고 관찰하는 어린아이의 눈을 갖고 있었다. 이런 그의 묘사로 탄생한 문장들에서, 펜으로 색깔을 입히고 생명을 불어넣는 신의 창조물들을 경험해 볼 수 있으리라. 이 책 (상)편에서 젊은 청년이었던 그가 그리스 순례를 하고, 이탈리아도 가고, 또 친구 앙겔로스와 아토스 산의 많은 수도원들을 방문하며 수사들과의 대화나 물음, 고민들을 담아낸다. 모든 그의 여행이 곧 순례의 길이었던 것이다. 이어서, 고난주간(Holy Week: 책에서는 성주간으로 표현)을 맞추어 예루살렘으로 자신의 발걸음을 향한다. 예루살렘에 방문한 모든 종교, 종파인들을 보며 느끼는 카잔차키스의 내면에서는, 사뭇 내가 동의하고 있는 부분도 발견하는 재미가 있다. 새로운 십계명이 필요하다는 그의 생각은 종교의 전체주의적 횡포와 같은 정치화된 모습의 이 시대에 들려주고 싶은 문구이기도 하다.
작가 카잔차키스는 그의 발걸음을 시나이로 돌릴 계획을 하며 (상)편은 마치고 있다. 시나이산은 그리스도교든 이슬람교든, 그 곳에서 십계명을 받은 곳으로 알려지고 있다. 카잔치키스의 계속되는 여로를 따라가고자 (하)편을 손에 쥐고, 나의 눈은 다시 책 속으로 들어간다. 끝으로, (상)편에서의 남기고 싶은 문장들을 아래에 기록하며, (하)편을 읽고 난 소감은 계속 이어 질 예정이다.
이제 날이 저물기 시작했으니, 나는 이 위대한 영혼들을 하나씩 거치는 피의 여로를 이 여행기에 남기려고 노력할 터이다. 내 영혼 전체는 외침이요, 내 모든 작품은 그 외침에 대한 설명이다.
빛은 항복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구원이 없음을 안다. 빛은 항복하지 않겠지만, 숨을 거두어야 하리라.
죽음이 가져갈 것이라고는 몇 개의 뼈 이외에 아무것도 남겨 놓지 않으려는 것이 내 가장 큰 야망이었다.
그 후로 떠나가 버린 수많은 사랑하는 사람들은 무덤이 아니라 내 기억 속에 묻혔으니, 내가 죽지 않는 한 그들도 계속해서 살아가리라는 사실을 나는 안다.
그것은 아직도 내 속에 살아 있는 아이의 덕분이다. 나는 티 없는 눈으로 세계를 항상 새롭게 보기 위해서 또다시 아이가 된다.
집에서 기르는 소처럼 1년을 살기보다는 하루 동안이나마 들소가 되리라
무대의 주인공은 이제 신이나 이상화한 젊음이 아니라, 쾌락과 정욕을 탐하고 회의적이며 방탕한 돈 많은 물질주의자 시민이다.
아름다움은 무자비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아름다움을 쳐다보는 것이 아니라, 아름다움이 인간을 쳐다보며 용서하지 않는다.
난 언젠가 꿀에 빠져 죽은 벌을 보고는 교훈을 얻었어요
어느 수사가 평생 동안 신을 추구했는데, 마지막 숨을 거둘 때에야 그는 줄곧 신이 그를 찾아다녔음을 깨달았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