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와바타 야스나리 <설국>을 읽고...
일본작가의 문학작품은 읽어본 적이 드물다. 아마도 무의식 속에 잡혀있는 역사적 사건에 대한 적개심때문인지... 쉽게 손이 가질 않는다. 작은 감정이 내 행위를 지배한 하나의 사례였음을 인지하고 글을 이어간다. 흔히, 문학전집이라고 발간했다는 리스트를 훑다보니, 자꾸만 <설국>으로 기울어지는 마음을 본다. 게다가, 작가가 노벨문학상? 문화나 환경의 이질감으로 헤매는 서양작품보다는, 쉽게 공유할 수 있겠다는 편안함을 기대한다. 이런 작은 설레임으로 <설국>을 만났고, 나의 ebook reader에는 어느새 다운로드를 대기하고 있게 된다.
그러나... '이거 뭐지? 잘 이해가 안가는데? 스토리가 흐르는 도중에, 지금 내가 어느 때를 읽고 있는거지?' 다시 돌아가 보기도 한다. 다른 책들 같았으면, '목차'라도 있고, 그에 따라 chapter도 있어서 나누어 읽기도 수월한데 말이다. 소제목으로 분류한 것도 없고, 이야기는 현재에서 과거의 어느때로 갔다가 다시 현재로 오고, 게다가 일본식 단어(샤미센, 오비, 다다미, 등)들도 뒤섞여 있다보니, 중간중간 검색하며 읽어야 하는 번거로움도 있었다. 그러나, 곳곳에 자연이나 사물에 대해 표현한 작가의 언어에는 소리가 나고 있었고, 아름다운 다채색으로 칠해져 있었으며, 물고기의 팔딱거리는 생명이 있었다. 언젠가 나는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글로 그림을 그린다'라고 글을 적은 바가 있는데, 동양의 카잔차키스를 만난 듯했다. 작가가 기술한 그 모든 것들을 빨리 영화를 통해서 눈으로 보고 싶어지는 충동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익숙하지 않은 스포츠를 하다보면, 몸에 잔뜩 힘이 들어간 부자연스러움을 느낄 것이다. 그런 느낌으로 독서를 마친다. '뭔가가 숨어 있을텐데...' '다시 바로 읽으면 보일까?' '영화라도 찾아보자.' 바로 컴퓨터 자리로 간다. AI에게도 물어보고, 구글링도 해 본다. 결국, NHK에서 상영해 준 2부작의 <설국>영화를 만나게 된다. 글로 읽어 애매했던 일본식 의류, 악기, 노래, 춤, 풍경 등을 보여준다. 결국 이 영화는 작가가 작품에서 보여주고자 했던 바를 짐작해 볼 수 있는 커다란 힌트를 건네 주었다.
https://youtu.be/nNKKfe86wA4?si=NwgxPoKWp2xUVhyC&t=4
https://youtu.be/EbBLFoL6nVQ?si=YPgxO38XBw3jfq0C&t=2
작품 속, 주요등장인물을 본다면, 아래처럼 간략히 요약할 수 있겠다.
선생 - 고마코가 게이샤가 되기 양성 교육(음악, 노래, 춤 등)을 시켜 줌.
유키오 - 선생의 아들, 병 들어 죽게 되나, 선생으로부터 아들에 대한 보호를 받음
유코 - 선생이 아들 유키오 곁에서 보살피도록 유코를 보낸 것임.
고마코 - 게이샤의 삶을 살게 됨. 고마코의 시선으로 볼 때, 작품에서 얘기하는 바가 보일 것임
시마무라 - 고마코를 만나는 세번의 여행자. 고마코가 자기의 속내를 들려주는 대상자
소설을 한 번 읽고, 영화를 보았다. 그러나, 다시 책을 읽어야 겠다는 울림을 느낀다. 그 이유는 고마코의 얘기로부터 시마무라가 정의한 '헛수고(wasted effort)'라는 단어를 더 실감하고 싶어서일까? 작가가 인생을 어떻게 떠나 보냈는 지를 검색해 본다면, 이 관념이 그를 크게 차지하고 있었을 것 같다. 어느 정도 인생을 살아 온 시마무라에게는 그 단어가 어렵지 않게 뱉어져 나올 수 있었다. 사랑을 하고 싶어도 이미 사랑할 수 없도록 거부된 삶, 그래도 사랑을 할라 치면 곧바로 이별을 해야하는 삶, 선생 아들의 양육을 위한 뒷바라지 도구로 사용되는 게이샤 고마코의 삶의 애잔함을 이제는 책에서 제대로 느끼고 싶어진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는 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실제로 방문하여 원고를 작성하던 여관(Inn)을 보여준다. 현재는 renovation된 건물이지만, 그 당시 작가가 머물렀던 방은 전시실처럼 보존해 놓았고, 작가가 만났던 게이샤에 대한 소개도 간략하게 나온다. 결국, '작가는 자신의 삶을 허물어 새로운 세계를 창조해 낸다'라고 했던 밀란 쿤데라의 말을 증명하듯이, 가와바타가 게이샤와 나누었던 대화내용들을 상상해 보기도 한다. 끝으로, 책을 읽으며 형광색으로 칠한 몇 문장들을 남기며 글을 마친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신호소에 기차가 멈춰 섰다.
거울 속 새하얗게 반짝이는 것은 눈(雪)이다. 그 눈 속에 여자의 새빨간 뺨이 떠올라 있다. 뭐라 형용하기 힘든 청결한 아름다움이었다.
길은 얼어 있었다. 마을은 추위의 밑바닥으로 고요히 가라앉았다.
국경의 산을 북쪽으로 올라 긴 터널을 통과하자, 겨울 오후의 엷은 빛은 땅밑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간 듯했다. 낡은 기차는 환한 껍질을 터널에 벗어던지고 나온 양....(생략)
들판 끝, 단 하나의 볼거리인 그 산의 온전한 모습을 엷게 노을진 하늘이 짙은 남빛으로 선명하게 그려 냈다.
화물열차가 지나가 버리자, 눈가리개를 벗은 듯이 선로 저편의 메밀꽃이 선명하게 보였다.
창틀 안으로 보이는 잿빛 하늘에서 커다란 함박눈이 흐릿하게 이쪽으로 떠내려 온다.
연기가 은하수로 흐르는 것과 반대로, 은하수가 쏴아하고 흘러 내려왔다.
생명이 사라진 자유로움으로 삶도 죽음도 정지한 듯한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