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 파비오 마르케세 라고나 <나의 인생>을 읽고...
올바로 사는 인생은 뭘까? 이 세상에 불현듯 내가 인간으로 던져진 이유는 뭘까? 누구에게나 한번은 갖고 있는 삶... 세상을 떠날 때가 되어 삶을 뒤돌아 보고 후회할 것인가?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어떤지 들여다도 보고, 그 사람의 생각을 따라가 보려고도 하는데... 정작 나는 나의 삶을 돌아보는 데에 참으로 인색하지 않았던가? 특히나, 청빈하게 살다가신 분들을 보게 되면, 그분들의 행동이 말에 들어있고, 그분들의 말이 행동으로 증명됨을 자주 보게 된다. 나를 독서생활로 안내해 준 책으로 만난 법정스님의 이와 같음에 감동받지 않았던가.
딱히, 나는 종교를 갖고 있지는 않다. 더 이상 종교인이라는 이들의 추악함으로 일반인들의 신에 대한 갈망을 가로막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뿐이다. 그렇게 지내던 중, 프란치스코 교황의 선종 소식과 짧게나마 그의 삶의 발자취를 매체를 통해 접해본다. 마침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읽고 난 후라, 누군가의 죽음에 대한 소식을 무심코 넘기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게 해서, <나의 인생>은 나의 ebook 서재에 저장되었고, 소소한 이야기를 통해 그가 걸어 왔던 길을 멀리서나마 보고 싶었다. 서문에서 그는 얘기한다. "삶은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소중한 책입니다. 이 책은 불행히도 많은 사람이 읽지 않거나, 너무 늦게, 곧 죽기 전에야 읽는 책이 되어버렸습니다." 라고... 비록 그의 인생에 비하면 너무나도 짧은 순간의 기록이겠지만, 그의 삶의 자취를 읽으면서, 나의 삶을 보려 한다.
2013년 교황으로 선출되며 그의 이름을 '프란치스코'로 명명하였다. 가난한 이들과 함께 있겠다는 다짐이었기도 했다. 얼마 전, 선종하실 때까지 12년간을 무보수로 교황직을 맡으셨고, 돌아가신 후의 가진 전 재산은 100불, 또한 주어지는 교황의 방이 아닌, 다른 사제들의 기숙사에서 머무셨다는 기사를 접한다. '사제는 양 냄새가 나는 목자여야 한다'며, 본인 스스로가 가난하고 약한 자들과 함께 있기를 택하신 그의 모습을 본다. 그래서 더욱 이 책에 마음이 꽃혔는지도 모른다. 책에서는, 그가 살아 온 시간 순으로의 사건들이 나오고, 그에 따른 프란치스코의 생각, 가치관, 또는 행동들을 엿볼 수 있다. 그렇지만 그 핵심은 우리가 이미 성인이 되기 전에 배웠던 것들이다. 단지 그것을 몸으로 실천하며 살아왔느냐, 무시하며 지내왔느냐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성인이 되어 가면서, 우리가 지녔던 어린아이 마음은 어디있는가? 혹여라도 그런 마음을 가지면 '어리석다'는 단어로 치부하여 순수한 채색을 지워버리지 않았는가? 다른 어른들과 마찬가지로, 프란치스코 교황도 언제 어디서든 어린이들과 같이 있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 어느덧 나이 든 나의 입장에서 보니, 할아버지가 어린 아이들과 해맑게 웃으며 놀 수 있는 때에는 내 안에 어떤 마음이 있어야 하는지를 조금은 알 것 같다. 뿐만 아니라, 이 책에서는 이미 머리로 알고 있음직한 '사랑', '용서', '화해', 혹은 '전쟁' 등의 이야기를 프란치스코 교황의 입을 통해 다시 전해지고 있다. 거무스름한 장막으로 덮혀져 가는 세상에서, 그의 이야기 속 환한 빛으로 조금이나마 오염되어감을 막는다고 해야할까? 현실의 세상에다가 그의 입을 통해 이런 이야기마저 하지 않는다면 얼마나 더 삭막해질까?
두서없이 써 내려오다 보니,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어른 김장하" 방송이 다시금 떠오른다. 이곳 미국에서 영화로 접할 기회는 없지만, Youtube를 통해 짤막하게나마 보며 감동받는 그 어른의 모습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의 모습도 보이지 않는가? "닮고 싶은데 도저히 내가 닮을 수 없다"는 어느 분의 인터뷰는 곧 나의 대답이지 않은가? "사회는 평범한 사람이 지탱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하는 어른 김장하님을 보면서, 나의 인생의 마지막이 어땠으면 좋을 지를 사색해 보게 한다. 법정스님, 프란치스코 교황, 어른 김장하 등 세상의 따뜻한 어른들의 이야기가 나와 함께 오래도록 있으면 좋겠다. 손을 쥐면 그 손안의 것만 내 것이고, 손을 펴면 곧 온 세상이 내 것이라 하지 않았는가... 손을 펴서 쥐고 있던 것들이 세상에 뿌려지면 좋겠다. 그런 행동이 나의 말을 증명해 주었으면 좋겠다. 작은 것부터 찾아보기로 하자. 내 안의 나에게 속삭인다.
끝으로, 책을 읽으면서 잊고 싶지 않은 문장들을 아래에 남기면서 글을 마친다. 훗날 다시 이 글을 볼 때, 어떤 모습으로 나의 삶이 변해 있을 지 작은 의문의 여운을 남기면서 말이다.
삶은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소중한 책입니다. 이 책은 불행히도 많은 사람이 읽지 않거나, 너무 늦게, 곧 죽기 전에야 읽는 책이 되어버렸습니다.
왜 그들은 이 모든 고통을 겪었는데, 저는 아무런 것도 겪지 않았을까요? 저와 제 형제자매들이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내는 동안, 왜 저와 같은 아이들은 부모와 헤어져야 했을까요? 답답한 마음으로 질문을 던지지만, 저(교황 자신)는 여전히 답을 찾을 수 없습니다.
저(교황)는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여는 법, 나보다 가난한 사람에게 내 것을 나누어 주는 법을 배웠습니다. 수의에는 주머니가 없는 법이잖아요.
그래서 묻습니다. 다른 사람의 생명을 빼앗기로 결정하는 건 도대체 누구입니까? 제겐 그들이 하느님의 자리를 차지하려는 이들로 보입니다.
죽음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죽음이란 갑자기 올 수 있는 거잖아요. 아무도 죽음을 피할 수 없으니까요.
위대한 종교들은 두려움이나 분열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화합과 일치와 관용을 가르칩니다.
사제는 양 냄새를 풍기는 목자가 되어야 합니다.
기업이나 시장의 자유에 대해 몇몇 사람이 가진 권리가 온 민족의 권리와 가난한 사람들의 존엄성보다 우선할 수 없습니다.
제가 자원봉사자들에게 부탁한 것은 단 하나, 사람을 우선시하고,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먼저 귀를 기울이는 것이었습니다.
상대방의 말을 듣는다는 것은 잠시 멈추어 상대방의 삶과 마음속에 머문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무관심하게 지나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들은 돈으로 돈을 벌면서 가장 약한 이들을 뼈까지 갉아먹으려고 했습니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잊지 마세요"....(교황이 되고난 후) 여기 있는 흰색 수단만 입고, 제가 사용하던 가슴 십자가와 제 신발을 그대로 신겠습니다.
사람들이 자기 자신에게만 집중하면서 '우리'는 뒷전으로 밀려나게 되었습니다.
그 방에서 가톨릭 세계의 지도자인 교황의 힘과 위대함은 소박한 인간미에 자리를 내주었다.
우선 저는 사제이고 사목자입니다. 사목자는 사람들 가운데 있어야 하고, 사람들과 대화해야 합니다. 거리감을 느끼게 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살아온 인생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추억을 만들어줄 뿐만 아니라, 듣는 이들에게 자연히 소중한 것을 전하게 됩니다.
그러나 잊지 마세요, 사는 법을 배우려면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교훈은 사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