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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데르센 동화전집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안데르센 동화전집>을 읽고...

by 하늘

읽을 책을 누군가로부터 추천받았다. 최규석 작가의 <지금은 없는 이야기>! 외국에서 살다보니 놓쳤던 조그만 것에도 그리움이 나온다. 종이 책장을 넘기는 소리, 여백엔 긁적긁적 휘갈겨쓴 메모, 때론 기이한 기호도 그려가며 책을 읽는 모습이 그리워진다. 빨리 그냥 편하게 내용을 보고 싶어서인가? 어김없이 ebook을 판매하는 서점의 website를 기웃거리며 '장바구니'에 담아 놓는다. '만화'로 분류되어 있는 서적... 그리곤, 단숨에 책으로 들어간다. '앗, 잊고 살았던 거....!' 단단하게 굳어진 매마른 마음으로 물줄기를 흩뿌려서 조금이나마 촉촉하게 하고 싶다. 그렇게 작가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이 다가온다. 마침 나의 ebook 서재를 훑어보니, 160여편 이상으로 구성된 여러 책의 전집 중, 일부 한 권이 자리를 지켜주고 있다. 첫번째 이야기 <인어공주>가 내게 문을 열고 환영인사를 건넨다. 나는 그렇게 안데르센의 집 안으로 한 발 성큼 들어간다.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 네 바퀴로 가는 자전거~~
물 속으로 나는 비행기~ 하늘을 나는 돛단배~~

김광석의 노래가 머릿 속을 맴돈다. 제법 살아왔다는 우리에게 '상상'이라는 것은 더 이상 쓸모없는 허식일까? 우리가 갖고 있는 어린이와 같은 연한 마음은 어리석음 내지는 약자의 패배주의일까? 세상이 이렇게 만들었어...라며 변명하며 슬쩍 넘어가는 데에 익숙한 소위, 합리적인 우리는 아니었나? 그나마 "동화" 몇 편을 읽었다고 해서, 맞다/틀리다로 나누고, 좋다/나쁘다고 평가하고, 복불복의 정신으로 무장한 어른 갑옷을 허물수는 있겠냐마는, 내면 어딘가에는 있을 법한 '영혼의 순수'에 물 몇방울 떨어뜨려 보는 건 어떨까? 삶이 다할 때까지, 그것이 책, 음악, 혹은 미술이던, 어떤 형태로든 간에, 살고 있는 우리 삶의 한 부분에 있기를 바랄 뿐이다. 소위, 전문가랍시고 분석하고 따지려 들지 않는 조건으로 말이다.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Hans Christian Anderson)의 삶을 간략하게나마 들여다 보자. 자기가 만든 이야기로 한쪽 귀퉁이에서 연극놀이를 하고 있는 어린 아이를 본다. 옷감을 구해 인형의 옷을 기우며 기뻐하는 아이, 상상의 꽃잎을 글씨로 떨어뜨려 낭독하던 그의 시, 14살의 나이에 코펜하겐으로 꿈을 위해 무작정 떠난 아이, 그러나 현실의 벽에서 겪는 실패와 거절의 반복, 불행처럼 보이는 곳에서 보다 나은 상태로의 계단이 놓여 있었음을 경험하는 청년, 덴마크의 어느 자연 속에서 만들어진 그의 동화이야기, 아이들에게 얘기하듯이 종이에 옮겨 적어 탄생된 이야기들이 200여년이 넘는 지금도 우리 모두에게 기억되고 있는 이야기들인 것이다. 결국, '내 인생은 아름다운 한 편의 동화다. 그토록 풍요롭고도 행복한.'하며 고백하는 안데르센을 그려 본다. 우리의 마지막은 어떨까? 나는 과연 뭐라고 나의 인생을 정의할 수 있을까?




인어공주, 성낭팔이 소녀, 눈의 여왕, 벌거숭이 임금님, 미운오리새끼 등등... 이 작품들을 떠올리면서 바로 우리에게 찾아오는 이미지는 무엇인가? 그 감정이 우리의 다음세대, 그리고 그 다음다음세대도 마찬가지일까? 아이폰 시대의 지금 Youtube, SNS, Shorts가 없이는 이미 퇴화한 구석기인이 되었다. 급기야, 연예인 흉내내는 꼬마아이의 Dance 따라하기에는 연신 환호성이 가득하다. 이런 영상을 볼 때, 불쾌한 감정이 드는 건 나만 그러는 건가? 햄버거의 이름대신 맥도널드가, 책 대신 애니메이션이, 안데르센 대신 디즈니가 차지하고 있지는 않은가? 200년이 지나도 그의 동화가 읽히는 것처럼, 또 앞으로 같은 해가 지나도 여전히 뭔가를 읽고 생각하는 책의 형태는 우리 삶과 같이 남아있길 바랄 뿐이다.




책 속에 담긴 그의 동화 15편의 제목과 어느새 형광색으로 칠해 놓았던 문장들을 골라 간략하게 남기면서 글을 마친다.


동화 15편 : 인어공주, 꼬마 이다의 꽃밭, 올레 루쾨이에, 황새들, 이삿날, 벌거벗은 임금님, 완두콩 공주, 전나무, 장다리 클라우스와 꺼꾸리 클라우스, 민요의 새, 행복의 덧신, 사랑하는 연인들, 소시지 꼬챙이로 만든 수프, 메밀, 돼지치기 소년


하지만, 이제는 마음대로 바다 위에 갈 수 있었기 때문에 새로운 것에 대해 곧 무관심해졌습니다.

그래, 큰 이삿날의 버스 여행은 참 진지한 여행이지. 그런데 이런 이삿날이 언제 올까? 사람들이 매일 매시간 매초마다 이 버스를 기다릴 수 있다는 것 또한 진지한 일이야. 그 때가 오면 죽음은 은행에서 우리들의 어떤 행위를 꺼내 우리에게 보여 주게 될까?

네가 젊은 것을 기뻐하라. 네 몸 속에 들어 있는 젊은 생명을 기뻐하라.

자연 속에서 네 싱싱한 젊음을 기뻐하렴

다 지나갔구나, 지나갔어. 그 때가 좋았었는데, 이젠 지나갔구나. 다 지나갔어.

시인은 생각과 감정을 명확한 글로 옮겨 놓을 때까지 그것을 꼭 붙잡고 있다는 점이 보통 사람들과 다를 뿐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금방 잊어버린답니다.

버드나무는 메밀의 오만함에 대해서 이야기했답니다. 그리고 언제나 따라 다니는 천벌에 대한 이야기도 해 주었지요.


내 인생은 아름다운 한 편의 동화다. 그토록 풍요롭고도 행복한.

가장 큰 기쁨은, 인형의 옷을 깁는다든지 아니면 어머니의 앞치마를 벽과 마당에 심어진 구즈베로 딸기 숲 앞의 두 개의 막대기 사이에 걸어 놓고 햇빛에 비치는 이파리를 들여다 보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내게 학문에 전념하라고 충고했다. 그러나 아무도 날 위해 한걸음을 내디뎌 주지 않았다. 목숨을 연명하는 것도 힘들어진 상황이었다.

나는 작은 다락방을 빌려 살았다. 그 방은 '바이올린'에 묘사되어 있다. 또한 '그림없는 그림책'을 읽으며 사람들은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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