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퍼 리 <앵무새 죽이기>를 읽고...
미국 동부지역에서 정착하여 살게 된 지, 어언 20년이 된다. 주변을 둘러보면, 어렵지 않게 보게 되는 이민자들, 또는 다양한 외국식당, 그로서리 매장 등 다른 피부의 색, 다른 문화에서 자라온 사람들, 다른 나라의 언어가 그들의 First Language인 것이 그다지 어색하지 않다. 지역 County의 인구 분포를 살펴보니, 여전히 White 50%, Asian 20%, Black 10%, More than two races 10%, other races 10% 정도로 구성되어져 있다. 이번에 읽은 <앵무새 죽이기>를 접해서 인가? 굳이 '인종'이라는 단어를 꺼내어 표출하면서 살고 있지는 않지만, 나도 모르게 내재해 있는 '구별'이나 '선입견'이라는 주제를 마음속에서부터 조심스럽게 꺼내어 본다. 밀물처럼 쓸려오는 인종간의 갈등을 다루는 뉴스, 백인 우월주위, 타 인종에 대한 차별 등의 무분별한 시선들이 다음세대에 어떻게 전달되어 자리잡을 지를 걱정하면서 말이다. 이런 소용돌이 속에서 용기(?)있게 한국인이라는 Minority로 살아가야 하는 실정이기도 하니...
소설 <앵무새 죽이기>는 1930년대의 미국 남부지역, 즉 앨라바마의 어느 작은 시골마을 메이콤(이는 Fictional 지역으로 설정)을 배경으로 한다. 이미 미국의 남북전쟁(Civil War 1861-1865)후, 노예제가 해방되었다고는 하지만, 농업이 근간이었던 남부지역에서 백인 집안의 가사일이나, 농삿일, 집안의 각종 허드레꾼으로 흑인들을 고용하던 때이다. 마치 노예제를 대신한 형식상의 피고용인처럼, 그들에게 권리나 평등같은 인권의 개념조차 없던 때, 그리고 그런 것이 당연시하게 받아들여졌던 시기이다. 이런 사회적 배경 속에서, 흑인의 무죄를 변론하는 어리석은(?) 백인 변호사의 양심, 그 변론으로 조금이나마 세상이 바뀌어 지길 바라는 희망, 무죄가 뻔한 데 유죄로 결정나는 구역질나는 현실, 히틀러는 나쁘다고 가르치며 흑인에 대한 경멸 혹은 저주는 당연시하는 선생님 등이 어린 소녀(진 루이즈: 변호사의 딸)의 시각으로 묘사된 작품이다. 그래서 그런지... 시간 순으로 전개되는 이야기에 대해 부담없이, 그러나 흥미있게 긴장도 하고, 웃기도 하며 읽었던 시간이다.
책을 읽고 있자니, 한편으로는 변호사 '애티커스 핀치'가 아버지로서 아이들을 대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아이들의 호기심과 개구장이 놀이를 대하는 자상함과 나를 비교하기도 한다. 그의 느긋함을 배우기도 한다. 소설 속 진(7살)과 젬(11살) 나이 무렵의 아이들이 갖는 호기심이나 활동성은 부모의 자리를 거친 분이라면 모두가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그때 시절의 나를 돌아본다. 낯선 땅에서 발 붙혀 보겠다는 나를 본다. 불안과 조급함의 채찍을 스스로 휘두르며, 오로지 눈 앞의 당근으로 전력질주하던 경주마의 거친 숨결소리가 들린다. 아, 옛날이여! 이제 숨을 돌려 한가함의 여유를 찾아보려니, 아이들은 어느새 안아 보기에도 쑥쓰러운 덩치들이 되었구나!
마지막으로, 독서 중에 공감을 하거나, 생각의 시간을 갖게 한 몇몇 문장들을 남기고자 한다. 잠깐 이 소설의 평에 대해 research를 하다보니, 4천만부 이상의 판매 또는 성경만큼의 영향력이 있다는 등의 수식어구가 붙은 작품이기도 하다. 비록 흑백영화로 남아있지만, 내친 김에 영화도 한편 보겠노라며 <앵무새 죽이기>의 여운을 마음 속에 남긴다.
위스키 병을 손에 든 사람보다 성경책을 든 사람이 더 나쁘기도 하단다.
나를 위해 네가 해줄 일이 있다면 그건 머리를 높이 들고 주먹을 내려놓는 거야. 누가 무슨 말을 해도 상관하지 말고 그 애들이 널 놀리는 재미를 주지 말라는 거다. 머리로 싸우라는 얘기지.
아빠, 우리가 이길 건가요? / 아니. / 그러면 왜? / 수백 년을 이어 내려온 모든 것이 꼭 이기기 위한 것만은 아니었단다
앵무새는 노래를 불러 우리를 즐겁게 해줄 뿐, 곡식을 축내거나 옥수수 창고에 둥지를 만들지는 않아. 그저 온 힘을 다해 노래를 불러주지. 그래서 앵무새를 죽이면 죄라고 하셨을 거다.
지금 내가 너희들에게 자신있게 할 수 있는 말은 앞으로 너희들이 이 일에 대해 결코 부끄럽지 않은 마음으로 돌아볼 수 있게 되리라는 것이다.
사람은 다른 사람과 살 수 있기 전에 자기 자신과 잘해 나갈 수 있어야 하는 거란다. 다수의 원칙에 의해 지속되지 않는 것이 있다면 그건 바로 인간의 의식이란 거지.
First Purchase란 이름은 해방 노예들이 처음 번 돈으로 구입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었다. 일요일은 흑인들의 예배장소였고, 주중엔 백인들의 도박장소였다.
그것이 나를 구역질나게 하는 거야.
다른 사람에게 지옥을 준다는 것에 대한 울음. 그것도 아무 생각없이 백인이 흑인을 향해 던지는 지옥에 대한 울음이지. 흑인들 역시 인간이라는 생각을 조금도 하지 않는, 그런 행동에 대한 울음 말이다.
그들은 그렇게 했다. 전에도 그래 왔고, 오늘밤에도 그랬으며,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할 게다.
애티커스 핀치는 이기지 않았다고. 아니, 이길 수 없었다고. 하지만 그는 이 정도의 재판으로 배심원들을 그렇게 오랫동안 고민하게 만든 최초의 변호사였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내 자신에게 말했단다. 그래, 우리가 걸음을 내딛고 있는 거야. 지금은 아가의 걸음마 정도지만 그것도 걸음은 걸음이라고 말이다.
그건 흑인을 속이는 백인은 그가 부자거나, 또는 훌륭한 가문 출신이거나 하는 것에 관계없이 인간쓰레기에 불과하다는 것을 잊지 말라는 거다.
그때 선생님은 누군가가 그들에게 진실을 깨우쳐줘야 할 시기라고 하셨어. 그들은 분수도 모르는 채 제멋대로 행동하고 있다면서 이젠 우리와 결혼이라도 하자고 덤벼들 거라고 하셨거든. 오빠, 그처럼 끔찍하게 히틀러를 싫어하는 사람이 바로 자기 나라 사람에겐 어떻게 그토록 야비할 수 있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