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주 전, 스팀공급업체로부터 공문 한 장을 받았다.
연말, 연초 연휴와 맞물린 토요일, 열병합 발전소에서 각 사용처로 공급되는 메인 공급배관의 누설부위를 보수하기 위해 스팀 공급을 전면 중단한다는 내용이었다.
이 겨울에 말이다.
그날부터 마음속으로 같은 문장을 반복한다.
제발, 날씨가 따뜻하기를.
그리고 그 ‘내일’을 앞둔 오늘.
아침 기온은 -15℃, 낮 최고 기온도 -4℃.
이런, 최근 들어 가장 춥다. 다행히 내일 오후부터는 영상으로 풀린다고는 하지만, 이 한파 속에서의 스팀 셧다운은 그 자체로 긴장이다. 내일 아침, 스팀이 순조롭게 중단되더라도 확인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안다. 무엇보다 동파와 사고 없이, 그리고 월요일 생산에 지장 없이 재공급이 이루어져야 한다.
우리 공장은 스팀을 외부에서 공급받아 사용한다.
과거에는 LNG보일러를 가동했지만, 연료 가격 변동, 보일러 유지보수 비용, 상수·폐수 비용, 응축수 회수 시스템 운영 부담, 그리고 24시간 교대근무 인건비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한 끝에 외부 스팀 공급을 선택했다. 그렇게 십수 년. 여름과 겨울의 사용량 차이가 두 배 이상 나지만 공급 이슈는 거의 없었다. 특히 겨울에는.
그래서 더 낯설었다.
한여름 스팀을 다시 열었던 날이 있었다.
하계 공사기간 스팀 공급을 멈췄다가, 모든 준비를 마치고 다시 투입하던 순간이었다.
배관 안의 응축수는 최대한 비워냈고, 밸브는 거의 보이지 않을 만큼만 열었고,
그 정도면 충분히 조심스럽다고 생각되었다.
하지만 스팀은 생각보다 훨씬 거칠었고,
미세하게 열어둔 밸브 너머에서 공장 전체를 울리는 둔중한 소리가 밀려왔다.
여름이었는데도 바닥이 흔들렸고, 순간적으로 숨이 멎는 듯했다.
그런데 이 겨울에, 스팀공급 중단이라니.
이 지역에서 우리 회사 스팀 사용량은 많은 편이라 공문이 도착하자마자 담당자에게 스팀공급업체로부터 연락이 왔다. 사정은 이해됐다. 사용량이 가장 적은 연휴 중 토요일에 공사를 진행해 수용처들의 불편을 최소화하고, 이번에 메인 배관의 누설을 반드시 잡아야 한다는 설명이었다.
즉시, 공문을 내부 관련 팀과 임원에게 공유하고, 간략한 계획안과 이슈 목록을 정리해 미팅을 소집했다.
핵심 질문은 하나였다. 그날, 정말로 공사가 진행되는가?
공급업체 담당자와의 통화로 답은 분명해졌다. 수십 개 수용처 대부분이 동의했고, 그날 공사는 반드시 진행하고 완료해야 한다는 것.
내부 결론은 명확했다. 스팀 셧다운을 전제로 준비한다.
문제는 날씨였다.
한 여름의 스팀 셧다운과 겨울의 영하 온도에서의 스팀 셧다운은 완전히 다르다. 건물 내부는 둘째 치고, 외부에 노출된 모든 것들이 걱정이다. 메인 배관의 스팀트랩, 스팀을 사용하는 탱크와 온장고, 옥외 라디에이터, LN₂ 온수식 기화기, 그리고 공조설비. 하물며 드레인 밸브가 원활히 작동할 지부터 걱정이다.
한걸음 나아가 셧다운 자체는 절차대로 진행하면 된다. 압력이 낮아지는 방향이니까.
진짜 관건은 압력을 높이는 재공급이다.
스팀 공급처 공사는 셧다운 즉시 시작되지 않는다.
공급업체의 입장은 큰 사이즈의 메인공급배관이라 스팀 배출과 냉각에만 수시간소요, 실제 리크부위보수, 이후 구간별 스팀 공급과 워밍업을 거쳐 우리 회사 경계의 메인 밸브까지 ‘공급 준비 완료’ 상태가 되는데, 절차대로 되어도 스팀공급 중단 후부터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되었다.
우리 공장의 각동 공급시작은 몇 시부터나 가능할까?
회사 경계 메인밸브 → 공장 내부 메인 헤더 → 각 동 메인헤더 → 각 층 헤더 → 사용 장비까지 하루 종일 멈춰 있던 배관을 응축수를 최대한 제거하더라도 워터해머를 최소화하며 워밍업 하고 안정화하는 데 얼마의 시간이 필요할까?
이 작업이 온도가 급강하하는 겨울철에 진행하는데 가능할까? 낮아진 배관을 워밍업 하는데만 엄청난 열량과 응축수가 발생할 텐데...
작업자 배치와 업무 분담을 정하고, 단계별 공급 순서를 합의했다. 급개방은 없다. 미소량씩 개방 → 배출 확인 → 온도 상승 확인 → 점진 확대의 원칙을 지킨다. 외부 노출 구간은 트랩 배출 상태와 저점 응축수 드레인을 반복 실시하여 최대한 동파와 워터해머를 방지하고 필요시 보온을 실시한다. 스팀투입은 설비별 우선순위를 나눠 순차 투입한다.
우리는 이미 관련 팀에 정보를 공유했고, 혹시 우리가 놓친 설비가 없는지 재차 확인 요청을 해 두었다.
회사 내부의 문제는 대부분 계획과 협의로 관리할 수 있다. 하지만 한 겨울 공급자로부터의 스팀 공급 중단은 천재지변 같은 사건이다.
이번 일을 계기로 해야 할 일이 명확해졌다. 결정의 근거와 과정을 기록하고, 이에 따른 대응 시나리오를 남기는 것.
지금도, 바깥공기는 차다.
날씨가 조금만 더 도와준다면 좋겠다. 오늘의 긴장이 내일을 위한 기도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