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어붙은 배관 너머에서

공장의 온기를 회복한다.

by 이재원

어제와 오늘은, 이번 강추위가 남기고 간 흔적들을 하나씩 복구하는 시간이었다.

스팀 중단과 재공급 과정에서 영향을 받은 동파된 배관 보수로 시작해,

냉매 순환펌프의 샤프트 교체, 냉각수 펌프와 온수 순환펌프의 베어링과 씰 교체,
생산동 지하 공조기의 난방코일 공급 감압변, 난방용 자동밸브와 스팀트랩 보수,

스팀공급 배관 엘보 용접부위의 노후 부식에 따른 핀홀도 함께 손을 보았다.
하나하나만 보면 익숙한 작업이지만, 이 며칠은 유난히 목록이 길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난공사는 Purified Water System 전처리 구간의 판형열교환기였다.
개스킷 리크로 노후된 전열판과 개스킷을 교체해야 했는데, 문제는 설치 위치였다.
RO(Reverse Osmosis) 장치 뒤편, 벽과 거의 맞닿은 자리.
‘도대체 여길 어떻게 손보라는 걸까’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협력업체 사장님의 경험과 전용 공구, 그리고 현장 담당자들의 헌신이 모였다.
배관과 벽 사이, 두 사람은 바닥에 거의 엎드린 채 양쪽에서 힘을 쏟았고,
위에서는 RO 멤브레인 하우징 위에서 힘 보탰다. 나머지 한명은 보이지도 않는다.

CCTV로 본 작업 모습은 사고현장(?) 같았다.

오전 내내 이어진 작업,
전열판 34장을 교체하고, M30 너트를 조여 간극을 정밀하게 맞추어 리크까지 확인하고는 작업이 마무리되었다.

정말 어려운 환경에서 힘과 정밀함이 필요한 작업을 해낸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기에,
그저 “고맙습니다”라는 말로는 부족했다.

다시 한번 되돌아 보게하는 작업도 있었는데,

이번 강추위로 동파된 외부에 노출되어 PFW 장치 공급 냉각수 배관이다.
PFW 응축수 온도가 일정 수준 이상일 때 냉각수가 공급되는 구조인데,
연휴 기간처럼 사용량이 적어 대기 모드에서는 냉각수 공급이 멈추는 시간이 길다.
흐르지 않는 물은 결국 얼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 더해, 열선 전원 투입을 잊었다는 사실이 겹쳤다.

배관은 모두 보온이 되어 있었지만,
클램프로 연결된 배관의 페럴이 변형되며 이탈이 발생했다.

동파는 흔히 ‘얼음이 얼어 배관을 찢는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 메커니즘은 조금 다르다.
배관 내부에서 얼음이 형성되며 팽창할 때,
반대편 밸브에 의해 갇힌 비압축성 물의 압력이 상상 이상으로 상승한다.
그리고 그 압력은,
오히려 아직 얼지 않은, 보온이 잘된 약한 구간을 파열시킨다.


노후된 펌프, 흐르지 않는 배관, 열선 전원 누락, 그리고 노후된 열교환기 패킹.
하나하나 보면 모두 ‘알고 있던 위험’들이었다.
그래서 더 아쉬움이 남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황을 빠르게 파악하고,
협력업체와 즉시 조율하며,
하나씩 원상으로 되돌려 가는 과정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완벽해서가 아니라,
문제가 생겼을 때 서로의 역할을 알고 움직이는 이들 덕분에.

강추위는 지나가겠지만,
이번 스팀중단 이슈는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얼어붙은 배관과 장비들 너머에서,
우리는 또 한 번 공장의 온기를 회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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