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소배관에서 물이 터져 나왔다.

안다고 자만한 순간

by 이재원

주말을 맞아 연구동 질소 공급 라인을 보완하기로 했다.
연구동은 생산동과 질소를 함께 사용하고 있는데, 생산동에서 건조 작업이 몰리는 날이면 질소 압력이 5 bar 이하로 떨어질 때가 있다. 그러면 연구소의 중요 실험 장비가 셧다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액화질소 고압 라인에서 질소를 끌어와 감압 후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별도의 라인을 만들어 두기로 했다.

이미 감압밸브와 질소 유량계는 기안으로 구매해 준비되어 있었다.
작업 자체는 크게 어렵지 않았다. 연구동 앞 파이프랙 위의 메인 질소 밸브에서 약 1미터 구간을 절단해 T를 형성하고, 단관과 밸브를 연결한 뒤 유량계를 설치하면 되는 구조였다. 고소 작업이긴 했지만 작업 자체는 단순했다.


연구소 각 층의 팀장님들께 질소 공급 중단을 주초부터 미리 알리고 작업을 예정했다.
작업 허가에 따라 안전 조치와 위험성을 확인하고, 작업자들은 렌탈 장비를 타고 파이프랙 위로 올라갔다. 안전띠를 배관에 걸고 메인 질소 밸브를 차단하고 건물 내부에서 퍼지를 진행 했다. 그리고 보온재를 제거하고 적당한 위치를 잡아 직소로 배관 절단을 시작했다. 아래에서는 이미 단관을 제작하고 있었다.

배관을 절단하면 후렌지를 용접하고 준비된 유량계와 단관을 설치한 뒤 밸브 마감을 하면 오늘 작업은 끝이었다. 추후 일정을 잡아 밸브와 밸브사이의 약 20m 구간을 배관으로 연결하면 되는 작업이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다급한 연락이 왔다.

“배관 자르는 중인데… 배관에서 물이 솟구쳐요.”

순간 머릿속이 멈췄다.
질소 배관에서 물이라니. 그것도 솟구친다고?

순도 99.999% 질소 라인이다.
순간 여러 생각이 동시에 떠올랐다.

‘배관을 잘못 자른 건가?’
‘아니야, 아까 명판도 확인했고 질소 밸브도 차단했고 또 배관 퍼지도 했잖아.’

현장으로 뛰어갔다.
정말로 절단면 사이에서 물이 솟구치고 있었다. 냄새를 맡아보니 그냥 물이었다.

도대체 이 물은 뭐지?

6층 건물을 배관을 따라 올라갔다. 질소 인입구부터 천장 속, 각 사용처까지 하나하나 확인했다. 분명 질소 배관이었다.


손으로 배관을 만져보니 미지근했다.
상수는 아니었다. 요즘 상수 온도는 10℃ 정도다. 그런데 이 물은 대략 25℃는 되어 보였다.

순간 머릿속에 한 가지가 떠올랐다.

Purified Water.

곧바로 물장치실로 뛰어 올라갔다.
Final Tank에는 전도도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0.2μm 필터가 설치되어 있고, 필터 건조를 위해 필터 자켓에 스팀이 공급된다. 그리고 탱크 내부로 산소가 들어가지 않도록 질소가 공급되고 있다.

이곳에 공급되는 질소 라인을 만져보니 온도가 같았다.

배관을 분리했다. 물이 솟구쳤다. 탱크에서 벤트 필터로 물이 역류해 질소 배관으로 물이 넘치고 있는 것 같았다. 찾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물이 줄어들지 않았다.

탱크도 수위를 유지하고 있었다. 넘치는 게 아니었다. 이건 다른 문제였다.

다시 배관을 따라 이곳저곳을 찾아 뛰어다니다 결국 다시 물장치실로 돌아왔다.
그때 눈에 들어온 것이 하나 있었다. 질소 배관이 EDI 장치 뒤쪽으로 더 연결되어 있었다.


DIGAS(탈기기) 장치였다.


초순수의 용존 산소를 제거하기 위해 설치된 탈기 장치인데 이 장치 역시 질소를 사용한다.

질소 압력이 해소되자 오히려 물이 역류하여 질소 배관 전체를 채워버린 것이었다.

더 놀라운 사실은… 체크 밸브 하나 없었다는 점이었다.


그래도 원인을 찾았다. 이제 다시 작업을 마치는 것과 복구가 문제였다.

배관 작업을 얼른 마치고, 근처 오일프리 에어를 끌어와 건물 5층 물장치실의 질소 배관에 연결했다. Purified Water이기 때문에 충분히 건조만 잘 시킨다면 질소 배관의 오염은 최소화될 것이라 판단했다.

토요일부터 월요일까지 계속 오일프리 에어로 퍼지를 진행 했고, 결과는 다행히 좋았다.

질소 배관은 잘 건조되었고, 순도도 정상, 미생물도 검출되지 않았다.


문제가 해결되고 나서야 한숨이 나왔다.

현장을 잘 안다고 생각했던 것이 오히려 독이 되었던 것 같다.
배관 연결 구조를 모두 알고 있다고 믿었기에, 더 확인하지 않았고 차단도 충분하지 못했다.

잘 준비한다고 하지만
현장에는 늘 예상하지 못한 위험이 숨어 있다.

이번에는 물이었다.

하지만 만약 이것이 위험물이었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그래서 현장은 늘 겸손해야 한다.
아는 만큼 보이지만,
모른다고 생각할 때 더 많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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