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는 이에 따라 바뀔 수 있다니.

엔지니어의 기본

by 이재원

제약에서 ‘반응기(reactor)’는 활성 의약품(API, Active Pharmaceutical Ingredient)이나 중간체를 합성하기 위한 핵심 장비로 온도, 압력등을 정밀하게 관리하여 의약품 원료를 안정적으로 생산할 수 있게 하는 장비로 교반을 통해 제품을 섞고 반응을 균일하게 만들어 주는 역할의 아지테이터(Agitator)가 있다. 그리고 이 회전체의 압력을 견교히 잡아주는 더블 메카니컬 씰(Double Mechanical Seal)이 적용된다.


씰의 접촉면은 보통 SIC 대 SIC, 혹은 SIC 대 Carbon 같은 강성 재질로 구성되고 이 두 면 사이에 액체를 흘려 회전하면서도 밀봉과 온도가 유지되도록 하며 이 구조는 고온과 고압에서도 안정적으로 작동한다.

하지만 바이오 제품을 생산하는 공정에서는 이것 또한 부족하다.
바이오 제품은 아주 작은 이물에도 민감하고 미세한 리크에도 제품 전체가 불량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중요 공정 반응기에 기존의 메카니컬 씰을 드라이 씰(Dry Seal) 방식으로 교체 적용하기로 하였다.


드라이 씰은 SIC와 SIC 면 사이로 질소를 주입해 그 압력으로 두 면사이가 채워져 밀봉되며, 회전하면서도 안정적으로 압력을 유지하는 방식이다. 액체 대신 질소를 사용하는 만큼 이물 발생 가능성을 줄일 수 있고, 정밀한 청정 환경이 필요한 반응기에 적합하다.


오늘 작업은 이 드라이 씰을 설치하는 작업이다. 기존 설치된 씰 도면을 기준으로 제작된 드라이 씰이 현장에 도착했고, 먼저 반응기 모터를 분리했다. 이어 기존 씰을 해체하고 아지테이터를 고정했다. 모든 준비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씰 장착 전 설치 위치 확인을 위해 제작사 엔지니어가 계속 치수를 확인하고 있었다.
몇 번을 재보고, 다시 확인했다.

뭔가 이상한 눈치다.

GL반응기 장비 특성상 아지테이터의 최상부 씰이 부착되는 위치까지 Glass Lining(GL)이 된다. 그리고 드라이 씰의 하부 오링과 상부 오링이 이 GL위치에 자리 잡아야 내부 압력이 완벽하게 밀봉된다.

그런데 그 위치가 신규 씰을 설치할 경우 위쪽으로 10cm나 올라가게 되는 구조로 그대로 장착한다면 반응기 내부 압력이 그대로 외부로 새게 되는 구조였다.


기존 설치된 씰 도면을 기준으로 아지테이터 치수에 따라 씰의 내경을 제작하였는데, 이 부분이 보는 이에 따라 충분히 오해를 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기본이 되는 도면이 보는 이에 따라 바뀔 수 있다니.


씰을 장착하기 전 이 문제를 발견한 것은 정말 다행이었다.
장착 후 테스트 단계에서 발견했다면 시간도, 장비도 더 큰 손실을 입었을 것이다.

오늘 안에 마무리하기로 예정되어 있던 씰 교체, 압력 테스트, 구동 테스트의 전체 일정은 모두 중단되었다.
생산팀과 상황 공유 시 다행히 일자의 여유가 있었다.

씰은 다시 제작사로 돌아갔다. 이번에는 현장 실측 치수를 반영해 다시 제작할 예정이다.


도면은 모든 설계의 기본이지만, 현장은 언제나 그보다 더 정확한 확인이 필요하다.

오늘 작업은 작업 구역임을 표시하고 접근을 제한했다.

때로는 작업을 멈추는 결정이 가장 빠르고 안전한 선택이다.

이번 씰 교체를 통한 최종 도면은 오해가 없는 확실한 도면으로 각인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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