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미령 Jun 26. 2023

레 인

몽리

   평소보다 30분 일찍 일어난 오늘, 이번 주 독서회 모임의 리더는 나다. 선정도서는 김혜진 작가의 딸에 대하여다. 글 속 인물의 시선이 명확하고 담담한 문체 속 깊은 심리묘사가 인상적이며, 현실적인 여러 사회문제도 서술되어 있어 회원들에게 추천하고 싶던 책이다.      


저자 : 김혜진

출판 : 민음사

발행 : 2017. 9. 15.

줄거리 : 민음사의 오늘의 젊은 작가시리즈로 출간되었다. 딸에 대하여는 동성연애자, 침매 노인, 비정규직 근로자에 대한 차별적인 사회혐오와 소수자에 대한 폭력에 노출되어 있는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다. 삶이 불안으로 가득한 모녀의 삶을 바깥 타인의 시선이 아닌 내부 엄마의 독백으로 전개된다. 지금도 여전히 사회 속에서 자행되고 있는 차별의 시선이 현실적으로 그려져 있어 결론이 명확하지 않다. 마지막 책장을 덮은 독자에게 깊은 사색의 계기(繼起)를 제공한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정신없이 키우고,  훌쩍 자란 아이가 나의 머리 정수리를 내려 볼 때쯤, 나는 중년의 시간 속에 와 있다. 숨을  고르고, 고개를 돌려 나의 부모님들의 나이를 챙겨본다. 두 자리 숫자중  앞자리 수가 칠이나 팔이다. 어허, 벌써? 깜짝이야! 자녀 양육의 끝이 보이면, 새롭게 부모님의 부양이 걱정스러운 시간이 다가온다.

 

    현재 치매를 앓고 계신 부모님이 고민인 회원님도 계셨다. 육십 대 친정엄마께 닥친 치매 판정이 주변을 빠르게 조여 오고 있다는 종은 님의 사연을 듣고 모두가 안타까워했다. 친정엄마의 치매가 진행되면서,  나타난 아버지에 대한 의부증은 사이좋던 부부 관계를 악화시키고 있다고 하신다.  엄마의 집착으로 아버지가 괴로워하시고, 자신과 남동생도 엄마의 불규칙적 단기 기억상실과 변덕에 지쳐가고 있다고 한다. 엄마를 원망하고 미워하는 마음과 애정이 뒤섞여 엄마를 마주하기가 고민스럽다고 하셨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가족의 일이다.     

    

    부모와 자식으로 구성된 유기체 “가족”. 변하지 않는 사랑과 따뜻함이 늘 가능할 거라는 믿음의 가족 도식화. 50세를 코앞에 둔 나는 가족이란 참 어려운 관계라는 생각이 든다. 나도 성인인 큰아들과 고3인 작은 아들, 80세를 넘기신 시어머니, 70을 넘기신 친정 부모님이 계신다. 양가 부모님과 아이들에게 예기치 않은 불행이 생긴다면, 남편과 내가 얼만큼 가족들을 위해 희생하고 책임질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형태 없는 불행에 대한 근거 없는 불안감은 어리석은 감정이지만, 가끔 느껴지는 ‘만약에’라는 막막함은 어쩔 수가 없다.   나에게 준비된 불운이 나를 흔드는 날, 적당한 휘어짐과 견딤으로 나를 지켜 낼 수 있기를 바란다. 내 가족들도 각자의 운명 앞에 담대함으로 이겨내기를 소원한다.      

  

   선정도서 딸에 대하여 독서록은 소설 속 등장인물 레인과 그린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창작하여 작성해 보았다. 레인 쪽에 집중하여 글을 완성했다. 김혜진 작가님이 내 글을 읽게 된다면 뭐라고 하실까? 나도 책을 내는 작가가 될 수 있을까? 천재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끝까지 하는 자”라고 한다. 가보자 끝까지.

나 비상하리라, 내가 바라는 대로 앗싸!”

<거북이 빙고 발췌>           

   

                        레  인

                                                          김미령     

   

    학원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 길엔 늘 엄마가 집에 있길 바란다. 아빠가 무서웠다. 방문은 늘 잠근다. 혹시나 새아빠가 내 방에 들어올까 봐 두렵다. 낯선 남자와 엄마는 재혼했다. 벌써 2년이 흘렀고, 그날 이후 집은 내게 편안함을 주지 않는다. 나는 소라 껍데기 속 게처럼 내 방에 조용히 숨는다.


   나와 종이접기를 하고 색칠공부를 해주던 손이 희고 예쁜 아빠가 있었다. 모서리를 정확히 맞춰가며 접는 아빠의 색종이에 집중하며, 나도 종이를 접었다. 하트모양 계란 프라이가 올려진 아빠가 해주던 볶음밥은 예뻐서 늘 아껴 먹었다. 나에게 분홍색 치마를 입혀주고 반짝이는 샌들을 신겨주며 “인형같이 예쁘구나!”하고 말해주던, 얼굴 잊은 아빠가 그립다. 어느 날부터 어린 내가 잠들면 엄마와 아빠는 싸웠다. 부모님의 싸움이 나 때문인 것 같았다. ‘내가 유치원에서 친구를 밀어 아프게 하는 나쁜 아이라서 그런가? 내가 뭔가를 잘못해서? 내가 공부를 못해서 엄마와 아빠가 싸우는 걸까?’ 하는 생각이 마음속에 가득했다. 엄마와 아빠의 싸우는 목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이불은 머리끝까지 덮고 수를 세어가며 잠드는 날이 많아졌다. 그런 날들이 쌓여가던 날, 아빠는 집에서 깨끗하게 사라졌다. 엄마는 분노로 가득한 말들을 쏟아내며 아빠의 모든 것을 지우고 버렸다.     

  

    얼마 전 외할머니 생신날 엄마와 함께 할머니 댁으로 인사하러 갔다. 할머니는 내가 커 갈수록 친아빠를 닮아 간다며 혀를 차며 말씀하셨다. 엄마가 미워하는 아빠를 많이 닮은 나. 엄마에게 버려질까 봐 두려웠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아빠의 얼굴이 내게 남아 있다는 것이 엄마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이유가 될까?’라는 생각이 가득했다. 늘 삶은 내게 갑작스러웠다. 엄마는 낯선 남자와 재혼을 했고, 그는 내게 언제나 두려움이었다. 그가 내 곁을 웃으며 다가와도 그는 내게 아빠가 될 수 없는 사람이었다.      

  

    집을 떠나 기숙사 생활이 가능한 대학으로 지원하고, 졸업 후 대학로 주변 카페의 파티시에로 생활한다. 단맛이라고는 없는 내 삶에도 내가 올린 초콜릿 크림의 달콤함 같은 사랑이 오기를 상상했다.

   

    오늘도 케이크 한 조각과 커피를 주문하고 노트북을 켜는 그가 카페 구석진 그만의 지정석에 앉는다. 방문 시간도 비슷하고 머무는 시간도 일정한 그는 옷차림도 늘 편안했다. 셔츠에 바지. 얼굴을 잊은 아빠. 내 작은 눈높이가 닿는 곳에 아빠의 옷은 바지 위에 내려진 셔츠 끝자락이었다. 아빠를 상기시킨 그의 옷은 그를 관심 있게 바라보게 된 이유가 되었다. 여자인지 남자인지 구별되지 않는 외모와 분위기를 가진 그에게 단골손님 서비스라고 커피를 한 잔 서비스했다. 탁자 위 커피를 바라보며 그가 아무 말 않고 웃으며 감사의 목례를 했다. 커피를 내려놓고 돌아서며 바라본 노트북 위의 희고 긴 손가락. 아빠의 손을 닮은 사람. 그날, 녹색 셔츠를 입은 그는 나의 사랑이 되었고, 나의 그린이 되었다.

   

    매일 그를 기다렸다. 나의 생활에 달콤함이 뿌려진다. 조금씩 나의 입술 컬러가 다양해지기 시작하고 단조로운 내 삶은 리듬이 생긴다. 그린이 내가 입은 치마가 예쁘다고 하던 날 나는 그에게 저녁을 같이 먹자고 했다. 저녁을 함께 먹은 나의 그린은 여자였다. 나는 여자를 사랑하게 되었다. ‘누구나 하나쯤 비밀이 있지’라고 생각하고 그린은 나의 비밀이 되었고,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도 비밀과 함께 시작되었다고 일축했다. 그린은 사회의 차별과 맞서는 사람이었고, 나도 그린의 생각이 옳다고 생각했다. 줄리엣의 사랑처럼 나의 사랑도 힘들었다.     그린의 어머님은 나를 미워하셨다. 그러나 그녀와 나 사이엔 그린의 안전과 사랑이 공유되고 있어서 서로의 마음에 조금씩 틈을 내어 주고 있다.      

  

    도로 시위 후 다친 그린의 몸이 회복되고 젠의 장례식도 마무리되었다. 계절은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고 있다. 그린의 어머니 집으로 들어가기 전 짐을 줄여야 해서 엄마 집에 맡겨 놓은 두꺼운 겨울옷들을 가지러 왔다. 엄마와 통화 후 집에 사람이 없는 빈 시간대를 확인하고 방문한다. 어린 시절 나의 두려움이 가득했던 공간으로 들어선다. 옷장 문을 열고 옷을 하나씩 꺼낸다. 겨울 코트 단추가 떨어져 옷장 밑으로 굴러 들어가는 걸 가만히 지켜본다. 휴대폰 전등을 켜고 머리를 바닥과 가깝게 숙여 단추를 찾는다. 단추 옆으로 사진 한 장이 보인다. 얇은 옷걸이를 일자로 구겨 어둡고 먼지 쌓인 옷장 밑으로 밀어 넣는다. 단추와 사진이 먼지와 함께 끌려 나온다. 화사한 셔츠를 입은 단발머리의 여자가 꽃과 함께 햇살처럼 환하게 웃고 있다. 나와 닮은 그녀. 이젠 아빠의 얼굴을 안다. 사진을 다시 어두운 옷장 밑으로 깊이 넣었다. 누구나 비밀 하나쯤은 가지고 있겠지. 아빠의 사진을 액자에 넣어 탁자에 올려지는 날이 오면 비밀이 아닌 보고 싶은 사람이 되겠지. 따스한 오후 햇살이 내 등에 닿는다.  -끝-



* 글 속 인물들의 이야기는 사실을 바탕으로 재구성 되어 독서회 회원들과 관련이 없음을 공지드립니다.  

작가의 이전글 선 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