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너무 더운 여름이다. 자녀를 둔 회원님들은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진 자녀를 위해 식사 준비가 많아지는 방학 시즌이 돌아왔고, 직장인들은 하계휴가로 들뜬 7월과 8월의 여름이다. 독서 모임 활동에 잠시 휴식이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소설 『작별인사』는 우연히 시기가 맞게 선정된 도서다. ‘제목이 작별인사라니!’ 나는 직장도 다니고 브런치 작가로 합격하여 별개의 글 작업도 실천 중이어서 읽고 싶은 책들도 계속 쌓이고 있다.
주 5일 출근과 집안일, 블로거 활동과 브런치 작가 글쓰기 작업, 건강을 위한 운동, 독서회 활동 등 부실한 중년이 너무 바쁘고 뭔가 제대로 처리하고 있는 일들은 없어서 가지치기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요즘하고 있었다. 특히 독서회 활동의 유지를 놓고 깊게 고민하고 있었는데, 때마침 ‘독서회 활동 잠시 휴식’이라는 반가운 안건으로 무거웠던 고민을 잠시 미뤄본다. 더운 여름엔 고민도 쉬자.
도서명 : 작별인사
저자 : 김영하
출판 : 복복서가
발행 : 2022.05.02.
줄거리 : 인공지능의 기술이 최고에 이르렀을 때, 인류가 겪게 될 상황을 소설화한 작품이다.
편리성의 끝에 서다.
김미령
미래학자들이 예견한 미래 지구에 대한 주제들은 이미 영화나 소설로 다양하게 발표되어 새롭고 신비롭게 독자에게 다가가기 쉽지 않다. 소설 『작별인사』는 내가 보아온 영화들의 컬렉션이다. 『아일랜드(신체 장기 적출을 위한 복제인간), 트랜센더스(정보), 채피(의식전환), 아이로봇(선구적인 인공 지능로봇). 에이. 아이(로봇의 필요와 버려짐),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곰의 습격)』의 내용을 떠올리며 책을 읽게 된다.
우아한 카페 브런치 메뉴엔 보편적으로 쓰이는 음식 재료가 있다. 프렌치토스트와 달걀 프라이, 고소한 베이컨, 짭조름한 소시지. 싱싱한 샐러드들이다. 평범하고 익숙한 재료들이 카페마다 다르게 느껴지는 건 각기 다른 요리사들의 감각적이고 직관적인 그들만의 손맛에 있다. 소설 『작별인사』의 소재 역시 평준화되어 새삼스럽지 않으나, 김영하 작가의 마지막 설정은 여러 작품과 결이 다른 맺음이 보인다. 지구환경이 소실되거나 황폐해지지 않고 태초의 자연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인과관계의 완결(플롯)은 신선했다. 지구가 태초의 모습으로 되돌아간다는 것이 인류 문화 역사의 후퇴인지 진전인지 짧은 나의 지식으론 알 수 없다. 어느 방향이 옳음의 진보적 지향점인지 기준조차 정할 수 없다는 것이 미래 인공지능에 대한 나의 관념이다. 신뢰성이 약한 나의 지적기준에서 미래는 불안감 덩어리다. 이해할 수 없어서 알지 못하는 것들의 두려움은 거부감을 일으킨다.
내가 매일 사용하는 휴대전화와 운전하며 타고 다니는 자동차의 인공지능 기능조차 모두 익힐 수 없는 게 지금 내 모습이다. 내가 이해하며 익히지 못하는 기능들은 물건의 가격을 몹시 상향조절해 놓았다. 굳이 없어도 될 것 같은 기술발전의 속도와 유용함의 일부는 편리함보다 심리적, 경제적 불편함이 앞선다. 어색하고 생소한 인공지능의 기능을 몇 번의 반복 학습으로 익혀 사용하게 되면 그것들의 편리성에 매혹되어 필요로 하지 않던 기능들은 내 생활에 필수가 되어버린다. 신기술의 편리성이 안락함이 되어 내게 고정 안착한다. 텔레비전 광고나 휴대전화 서비스는 미래형 인공지능은 사람에게 무한의 편리성과 행복을 준다고 광고한다. 인류를 위한 미래 “AI 맞춤형 편리성”을 가지면 반드시 행복해진다고 내게 설명한다.
일부 과학자들과 저명인사들은 인공지능의 변화를 대비하지 않고 책임의 한계를 명확히 하지 않은 미래 기술발전은 인류의 불행을 앞당길 거라고 경고한다. 인공지능이 인류를 불행하게 지배하게 될 거라는 내용의 책과 영화도 많다. 로봇에게 사람의 자리 내어주어 인간의 자리를 잃어버리게 된다는 미래. 인간이 기계화되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혼란으로 괴로워한다는 내용의 설정은 이미 대중화되고 보편적 지식이 된 상황이다.
사람은 식물과 동물의 영역을 오랜 시간 빼앗아 왔고, 여전히 인간의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인간이 변화와 발전을 추구한 긴 시간 동안 자연과 얼마나 조화로웠을까? 인공지능은 신과 가장 닮았다는 인간이 신과 같은 창조의 능력을 갖추어, 신의 능력을 흉내 낸 새로운 종의 탄생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인간의 취약한 면을 보완하기 위해 지속적인 발전의 결과가 기계화된 인간의 모습일 수도 있겠지만, 작가가 생각한 이 부분이 아직도 전진인지 후퇴인지 나의 관념에선 명확하지 않다. 인간 스스로가 환경에 대한 적응과 변화라는 진화론적 학술의 의미에선 어떤 해석이 가능한 걸까? 오래전부터 효율과 편리함을 추구해 온 인간 문명의 발전 문화는 인공지능의 개발을 멈추기 힘들 것이다. 편리함의 극대화가 현실화되었을 때, 주변환경(자연생태계)과 얼마 큼의 조화로움이 가능할지 알 순 없지만, 인간의 욕심으로 스스로가 멸한다면 그 끝은 모든 생명과 아름다운 작별인사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