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의 뜻은 “물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 널리 펴져 있는 범위. 어떤 물질이나 물체가 존재할 수 있거나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 자리가 된다.” <출처 네이버 검색> 우리는 늘 공간에 머문다. 우주, 지구, 집, 회사, 학교, 병원, 식당, 마트 카페 등등 하루에도 수많은 공간 속을 옮겨가며 스치고 머문다. 동물이든 식물이든, 생명이 없는 사물조차도 공간에 놓여있다. 망자도 무덤, 천국, 중간지대, 지옥 등등 알 수는 사후 공간에 머문다는 내용이 수많은 종교 서적에 기록되어 있다. 볼 수 없고, 느낄 수 없는 공기도 공간 머문다. 모든 존재들은 공간에 따라 그곳에 어울리는 최적의 모습으로 자신을 조절한다. 짐승이나 식물도 자신이 머문 공간 속에 맞추어 생존을 이어간다. 공간의 바뀜 속에 표현되는 존재의 색깔은 조금씩 상황변색을 일으킨다. 같은 공간을 함께하는 존재들의 표현이 자유롭고 다양해도 승인되고, 받아 들려짐이 가능하다면 그 공간은 쉼이 된다. 독서회 회원들은 각자의 여러 색깔 중 책과 가장 가까운 색을 꺼내어 서점에 머문다. 공간과 어울리는 빛 고운 색으로 빛나길 바라본다.
도서명 :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저자 : 황보름
출판 : 클레이하우스
발행 : 2022년 01월 17일
줄거리 : 도서《어서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는 공간에 대한 이야기다. 동네 작은 서점에 서점주인과 동네 주민들이 모이고, 그곳에서 일어나는 변화들로 이야기가 구성된다. 사춘기 10대 청소년과 20대 번아웃 청년들. 30대 이혼녀와 이혼할 여성, 40~50대 엄마와 직장인 남성, 뚜렷한 직업이 없는 성인 남자로 구성된 인물이 서점에서 서로를 알아가며, 각자의 인생을 리셋하는 과정을 따뜻하고 위로가 되는 문장으로 서술해 놓았다. 여러 인물 중 독자에게 가장 가깝다고 느끼는 인물의 변화 속에 위로가 되는 한 문장을 찾아가면서 읽어 가는 책.
공간에 관한 이야기로 독서록을 완성해 보았다.
그녀의 집
김미령
아침이면 그녀는 잠들어 있는 내 손을 늘 잡았다. 잠결에 귀찮아서 빼면, 더듬거리며 손을 다시 잡고 낮게 웃었다. 늘 내가 일어나기 전에 그녀는 먼저 일어나 있었다. 그녀는 아침식사로 갓 내린 커피와 따뜻한 카페 라떼를 좋아했다. 오븐에서 막 구워 나온 빵 냄새가 거실에 가득했고 뉴스를 매일 시청했다. 늦게 일어난 내가 식탁에 앉아 있는 그녀에게 눈을 맞추면 “아침 뉴스는 봐야지.” 말하면서 찡끗 웃었다. 내가 정신을 차리면 내 식사를 따로 챙겨주었다. 나는 커피와 빵을 그녀만큼 좋아하지 않는다.
요즘은 너무 습하고 덥다. 그녀의 집은 5층. 길 건너 막국수 가게 앞에 대기표를 뽑아 앉거나 서 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손님이 많아 옆 건물 동물병원 앞까지 사람들이 모여있다. 오늘은 일요일이라 병원은 휴진이다. 그녀는 차가운 아메리카노를 손에 들고 통 창 거실에 서서 늘 똑같은 말을 한다. “장사는 저렇게 해야 하는데…. 우리 가게도 막국수 집처럼 사람들이 줄을 많이 섰으면 좋겠어. 우리 가게에도 맛있는 거 많은데….” 나는 아무 말 없이 그녀 옆에 서서 길 건너 막국수 집을 구경한다. ‘그녀의 소원이 이루어져야 할 텐데….’
늘 잘 웃는 그녀가 “나도 저녁엔 시~원한 막국수 콜!!” 나는 해맑은 그녀를 쳐다본다.
커피를 마신 후 우리는 온천천으로 산책하러 나간다. 계획에 없던 자전거를 빌린다. 그녀가 더우니까 걷지 말고 자전거를 타고 달리자고 해서 그러자고 했다. 나의 예쁜 그녀는 자동차 운전보다 자전거가 더 어렵다고 했다. 자전거에 앉을 땐 늘 손목에 끼고 있는 고무줄을 꺼낸다. 웨이브가 있는 긴 갈색 머리카락을 동그랗게 말아 올린다. 작은 얼굴이 더 작아 보인다. 그녀는 아마 모르겠지. 뒷 머리카락 제비초리 아래에 앙증맞게 작은 점이 2개 있다는 걸….
그녀는 퇴근 후 주방에서 저녁 식사를 준비하며, 내게 일기라도 쓰듯 종일 있었던 일을 쫑알쫑알 많은 말들을 했다. 그런데 요즘은 말수가 확 줄고 잘 웃지도 않는다. 술을 거의 먹지 않는 그녀가 부쩍 집에서 맥주를 마신다. 나는 무슨 일이냐고 여러 번 물었지만, 그녀는 시원하게 대답하지 않고 그냥 침대에 누워 자버렸다.
다음날 초인종이 울려서 잠이 깨려고 했을 때 그녀가 먼저 일어나 방문을 닫았다. 현관문이 열리는 듯했고 여러 사람이 제법 큰 소리로 말하는 듯했다. 내가 나가려고 했지만, 문은 잠겨져 있고, 그러다 시끄럽게 흥분한 사람들도 집을 나간 듯 갑자기 조용해졌다. 그녀가 들어와 내 몸에 얼굴을 묻고 울었다. 좀 기다렸다가 그녀가 진정되면 물어보기로 했다. 일어나 보니 벌써 초저녁이다. 밖에서 낯선 소리가 들리더니 조용해졌다. 방문을 열고 나가보니 집안 가득 빨간 종이가 열어놓은 창으로 들어오는 바람에 흔들린다. 그녀는 소파에 멍하니 앉아 있다가 밖으로 나가 버렸다.
한참을 기다렸더니 그녀가 돌아왔다. 외출준비를 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별로 준비할 것이 없어 그녀를 기다렸다. 그녀가 나를 캐리어에 넣었다. 거리를 걸으면서도 그녀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그녀가 멈춘 곳은 길 건너 나와 그녀가 다니던 동물병원이다. 동물병원은 아직 문을 열지 않았고 동물병원 계단에 앉은 그녀는 나를 꺼내 자신의 품으로 나를 깊게 안았다. 그리곤 계속 울었다. 내가 아무리 손을 핥아도 도저히 멈추지 않았다. 그녀의 얼굴에 부비부비하고 다리에 꾹꾹이를 해도 계속 울었다. 그녀의 집에선 내가 조금만 부비부비하거나 꾹꾹이를 해도 까르르 웃고 너무 행복해하던 그녀였는데…. 한참을 나를 안고 울던 그녀는 캐리어에 다시 나를 넣고 편지도 같이 넣었다. 캐리어 문을 닫고도 그녀는 계속 울었다.
“션, 미안해, 션, 미안해 꼭 찾으러 올게” 멀어지는 그녀를 보며 나는 계속 그녀 불렀다.
“야~옹 야~옹 야~~~옹”
캐리어 밖 세상이 환해 온다. 간호사들이 출근해서 나를 병원으로 데리고 들어간다. 나는 꼬리까지 몸을 최대한 동그랗게 말고 그녀를 잊지 않기 위해 눈을 감았다. 그녀의 얼굴과 내가 어릴 때 가지고 놀던 그녀의 긴 머리카락과 부드러운 손가락을 계속 생각했다. 그녀와 함께했던 따뜻하고 행복했던 그녀의 집도….
“어머, 션이네. 무슨 일이래? 션 보자. 보자. 안아줄게. ” 김간호사가 캐리어를 열어 션을 꺼낸다.
“쌤, 여기 편지 있어요. 혜영 님이 일주일만 돌봐 달래요. 꼭 찾으러 온다고 적혀 있어요.”
“션을 버린 거야? 사람 그렇게 안 봤는데. 안 될 사람이네. 거참.”
딸랑딸랑 문에 매달아 놓은 종이 흔들린다.
“어머, 진우 씨가 이렇게 일찍 무슨 일이에요? 요즘 더워서 막국수 집 손님 많죠?”
“네, 아주 바빠요. 한 번 드시러 오세요. 서비스로 만두 드릴게요. 우리 ‘미나’ 사료 좀 주세요. 사야지, 하고 생각만 하다 계속 미뤘더니 오늘 미나 사료가 떨어져서 병원 진료 시간만 기다리고 있었어요. 어찌나 울면서 보채는지. 미안해서 진짜. 근데 이 녀석은 어디 아파요?”
“아뇨. 우리 병원에 다니던 고양이인데, 주인이 일주일만 돌봐달라는 편지랑 고양이를 두고 갔어요. 버린 거죠. 참 나. 그 아가씨, 그럴 사람 같아 보이진 않았는데.”
진우는 김 간호사 품에 얌전히 안겨 있는 나에게 다가와 손가락을 조심스레 내민다.
“이 녀석, 제가 입양할게요. 아픈 아이는 아니죠? 우리 미나가 혼자 있어서 맘이 쓰여서, 한 마리 입양하려고 계속 생각 중이었는데, 마침 인연인가 싶기도 하고요. 사랑 많이 받고 큰 아인가 봐요. 털에 윤기가 장난 아니네요. 순하기도 하고요. 제가 한 번 안아볼까요?”
내 머리를 조심스레 쓰다듬는 진우를 바라본다. “야~옹”
“혹시 전 주인이 진짜, 데리러 오면 저희 막국수 집 안내해 주세요. 우리 미나 배고파서 이만 갈게요. 요 녀석 물건도 챙겨주세요”
나는 진우가 싫지 않다. 진우의 옷에 그녀의 옷에서 나는 냄새가 난다. 익숙한 냄새가 나는 그가 편하다. 진우와 있으면 울음을 멈춘 그녀가 올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