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에서 울다

몽리

by 김미령

《H 마트에서 울다》는 세 번째 모임부터 구성원으로 활동하게 된 영인 님의 추천 도서다. 고전에서 현대로 넘어와 준 선택에 감사하다. 고전 문학이라는 타이틀이 붙은 책은 뭐가 있는진 모르지만, 뭔가 분명히 있다고 생각하며 작품분석에 노력해야 한다. 삶의 본질을 다룬 형이상학적인 해석을 하고, 눈썹 사이에 자리한 주름의 거리를 좁혀가며 읽어내야 한다. 반면 현대문학은 내가 경험한 시간과 현대의 사건 사고가 작품 속 배경이 되는 경우가 있어, 글의 이해와 작가의 의도 파악이 고전 문학보다 편하다.


도서명 : H 마트에서 울다.

저자 : 미셸 자우너 저

출판 : 문학동네

출간 : 2022년 02월 28일

줄거리 : 『H 마트에서 울다』는 인디 팝 밴드 재패니즈 브렉퍼스트의 보컬이자 한국계 미국인인 미셸 자우너. 한국인 어머니와 백인 미국인 아버지 사이에 태어난 혼혈아의 혼란스러운 사춘기 성장 과정과 암 투명으로 여생을 마감한 엄마를 간호하며 보낸 시간을 기록한 에세이다. 미국 독자를 생각하며 적은 평범한 한식(삼계탕, 곰탕, 짜장면) 메뉴의 예찬은 한국인이 읽으면 기분 좋은 낯섦이다. 작가는 고인이 된 엄마의 추억을 한식 조리 과정에서 회상하며 이별의 아픔을 치유해 간다. 버락 오바마 추천 도서로 출간 즉시 미국 서점가 베스트셀러에 오른다. 2021년 뉴욕 타임스, NPR 같은 유수의 언론매체와 아마존 등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었다.


도서 내용 이해와 공감을 위해 나의 기억창고를 헤매며, 아주 사소한 경험 중 하나라도 작품과 연결되길 바라며 책을 읽었다. 나의 번잡스러운 경험 찾기 흐름과 달리 친정아버지의 죽음을 경험한 영인 님의 발언은 가슴속 그리움이 느껴진다.

대장암 4기라는 진단을 받은 아버지를 위해 딸이 준비한 첫 번째 음식이 마지막 상차림이 될지 몰랐다는 영인 님의 아버님은 벚꽃이 눈처럼 날리는 날에 돌아가셨다고 했다. 벚꽃이 떨어지면 늘 아버지 생각이 난다고 하신다. 사랑하는 존재가 이 세상에서 흔적 없이 사라져 버린 경험. 나는 아직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경험한 적이 없다. 사별의 아픔은 얼마큼의 성숙과 변화를 일으킬까? 『H 마트에서 울다』에 그려진 어머니의 임종 후 달라진 작가의 모습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 본 독자들과 공감했을 것이다. 타인에게 보이지 않는 심장 위에 새겨진 자신의 ‘통제 불가능한 슬픔 덩어리’가 불쑥불쑥 크게 두근거리는 날도 있겠지. 영인 님의 독서록 뒤에 읽은 나의 독서록은 조금 부끄러웠다. 노래방에서 누군가 부른 비틀스의 “YESTERDAY”에 어색하게 이어져 나온 신나는 댄스곡 같은 느낌이다. 책 보다 더 현실적인 영인 님의 슬픈 경험은 모임을 마치고 출근하는 나의 4월 봄 풍경을 살짝 비틀어 놓았다. 오늘은 벚꽃의 화려함이 쓸쓸해지네.

편의점에서 울다.

김미령

“딸랑딸랑” 출입문 위에 매달린 종소리와 함께 다람쥐 같은 아이가 쏙 하고 들어온다. 노란 유치원 가방이 조금 크다는 느낌이 드는 마른 체격이다. 머리를 갈래로 묶고 피부가 까무잡잡한 아이는 편의점 매장 안 공기를 시원스레 가르며 계산대 쪽으로 직진한다. 절도 있게 스탑! 반듯하게 선 아이의 눈앞에 포켓몬 팔찌 상자가 진열되어 있다. 뒤통수만 보아도 팔찌를 향한 아이의 집중력이 느껴진다. “딸랑딸랑” 짧은 커트 머리에 1년은 유지될 듯한 짱짱한 파마머리. 무게감이 느껴지는 검은색 비닐봉지를 두 손에 든 할머니는 아이의 뒤에 선다. 널찍한 팔뚝과 또렷이 둥글게 나온 아랫배가 티셔츠의 디자인을 변형시켜 놓았다. 탄성 좋은 고무줄 허리의 몸빼 바지를 입은 할머니는 아이의 어깨를 밀며 “나가자. 나가자. 여기는 비싸다. 할머니 간다.” 아이는 할머니의 묵직한 손에 어깨만 앞으로 밀릴 뿐, 다리는 바닥에 단단히 붙었다.

“니 말 안 듣제, 두고 간다.” 검은 비닐봉지를 든 할머니는 앞쪽 출입문 쪽으로 나가버린다. 아이는 할머니의 말과 행동에 관심도 없다. 포켓몬 팔찌 하나를 골라 손에 쥔다. 다시 할머니 등장. 아이를 째려본다. 아이도 할머니를 쳐다본다. 3초 멈춤. 두 시선이 움직인다. 나에게로 찌릿.

질문 1. “이거 얼만교?”

“8천 원입니다.”

질문 2. “아이고 무시래이, 뭐가 이래 비싸노?”

결심 1. “안 된다. 가자. 가자” 할머니는 아이의 어깨를 또 밀어보지만, 아이의 발은 발바닥에 여전히 붙어있다. 문 앞에서 “내 간다. 여기서 살아라.” 할머니는 또 나가신다. 아이는 포켓몬 팔찌 상자를 들고 울음을 터트린다. “앙아앙, 아아앙” 우는 아이의 손을 잡아 할머니가 아이를 데리고 나간다.

“딸랑딸랑” 꽃무늬 원피스를 입은 엄마와 회색 원피스를 입고 반짝이는 분홍색 운동화를 신은 토끼 같은 꼬마 아이가 문을 열며 들어온다. 엄마는 통화 중이다.

“응, 진짜? 몇 층? 아, 그 반 선생님이 좀 그렇긴 하지.” 엄마는 딸의 어깨를 두드린다.

“맘에 드는 거로 2개만 골라. 학원 차 올 시간이다. 빨리 골라” 엄마의 시선은 딸의 동선을 따라 움직인다. 아이의 걸음에 맞춰 운동화는 반짝이고, 아이는 계산대 쪽으로 다가와 멈춘다. 포켓몬 팔찌 상자를 골라 엄마를 향해 들어 보인다. 엄마는 휴대폰을 한쪽 귀에 대고 눈에 힘을 주며 아이가 있는 곳으로 걸어온다. “안돼! 먹는 걸 사라고. 배고프다고 해서 편의점에 왔더니 쓸데없는 걸 고르고 있어?” 아이는 과자 쪽으로 가더니 한 바퀴 돌고 다시 제자리. 포켓몬 팔찌가 든 상자를 집어 든다. “어머, 민지는 벌써 교재 5단계 들어간다고? 원어인 화상 영어 수업도 한다고?” 엄마가 딸을 째려본다.

“자기야, 잠깐만 기다려. 이거 얼마에요?”

“8천 원입니다.”

“안 되겠네. 좀 이따 내가 다시 전화할게.” 엄마는 휴대전화를 가방에 넣는다. 아이를 내려다본다.

“너 배고프다며? 먹을 거 산다고 했잖아. 삼각김밥이나 빵 안 사면 엄마 그냥 갈 거야.” 엄마와 아이 사이엔 3초의 정적이 흐르고 엄마는 꽃무늬 원피스를 흔들며 나가버린다. 아이는 울면서 엄마를 따라 나간다.

“아아앙 앙아앙 아아앙” 악을 써가며 다시 매장 안으로 들어온 아이의 얼굴이 벌겋다. 화가 나서 아이보다 더 벌겋게 변한 얼굴의 할머니가 터질듯한 얼굴로 편의점으로 입장한다. 이번엔 할머니가 포켓몬 팔찌 상자를 집어 계산대에 올려놓는다.

“아이고 가쓰나, 성질도 성질도. 니 인자 여 다시는 오자고 하면 안 된다. 알았나. 이거 주이소. 얼마라고요?” 나는 바코드를 스캔한다. 삐.

“8천 원입니다.”

“와이고, 비싸래이. 무시라. 무시라. 아! 잠깐 여기 소주는 어디 있어요?”

“냉장고 2번째 줄에 있습니다.” 할머니는 대선 소주 두 병을 포켓몬 팔찌 상자 옆에 놓는다. 할머니의 색 바랜 손가방 지퍼가 열리고, 반으로 접어놓은 지폐 2장이 나오려고 할 때, 막대사탕 1개가 소주병 옆에 급하게 놓인다. 계산대 위에 올려지는 사탕과 동시에 할머니와 손녀 사이에 사나운 눈 마주침 1초.

“이것도 같이 주이소.” 바코드 스캔이 끝나자마자 아이는 포켓몬 팔찌 상자와 사탕을 가져갔다. 아이는 먼저 편의점을 나가고 할머니는 거스름돈을 기다리며 혼잣말인지 나에게 하는 말인지 구분할 수 없는 말씀을 하신다.

“저 노무 가시나는 도대체 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어. 맨날 저리 지 맘대로 안되면 쳐 울기만 울고 베트남 말만 째발째발 하고. 내가 답답해서 못 살겠네. 어서 한국말을 해야 내가 말을 알아 들을낀데…. 어린이집에서도 내내 쳐 울기만 울고. 아이고 내가 속이 터져서.”

나는 거스름돈을 내밀며 주름이 깊은 할머니의 얼굴에 집중하며 “안녕히 가세요.”라고 웃으며 인사한다.

눈에 익숙한 분홍색 운동화. 울고 나가던 아이가 다시 들어와 포켓몬 팔찌 상자를 계산대에 올려놓는다. 아이의 울어서 빨개진 눈엔 아직 눈물방울이 있고, 뒤따라 온 엄마가 성모 마리아의 시선과는 온도 차이가 분명한 눈으로 딸을 내려 다 본다.

“너 영어학원 계속 다니는 거다. 약속했다. 잠깐만요. 맥주가…” 엄마는 캔맥주 4개를 고르고 비닐봉지에 넣어 달라고 한다.

“이 사탕도 같이 하실 거예요?” 엄마가 맥주를 고를 때 아이도 사탕을 골랐다.

“2만 2천 원입니다. 사탕이 3천 원입니다.” 엄마는 다시 딸을 쳐다본다.

“네, 주세요.”

“너 사탕도 샀으니까 학습지도 3장 더하는 거다.” 엄마의 휴대전화가 울린다.

“어, 자기야, 미안. 편의점에서 계산한다고. 내가 진짜 열받아서 맥주도 샀다니까. 다 지 잘되라고 그 비싼 돈 내면서 영어유치원이랑 학원도 보내주는데, 세상에 딸이 뭐라고 하는지 알아? 유치원이랑 학원에서 외국인 선생님이 영어로만 말해서 못 알아듣겠다는 거야. 가기 싫다고, 어렵다고 매일 난리야. 내가 진짜 우리 애랑은 말이 안 통해. 영어가 안되니까 유치원이나 학원에서 선생님이랑 제대로 수업도 못 해. 수업하다가도 자기 맘대로 안되면 울기만 울고. 내가 진짜 속 터져 못 살겠어.” 꽃무의 치마가 출입문 쪽으로 흔들린다. 나는 사라져 가는 엄마의 뒷모습을 보며 “안녕히 가세요.”라고 인사한다.


나는 피부가 까무잡잡한 아이의 베트남어도, 반짝이는 분홍색 운동화를 신은 아이의 한국어도 들을 수 없었다. 나에겐 아이들의 울음소리만 남는다.

* 글 속 내용은 사실을 바탕으로 재구성되어 실재 인물들과 관련이 없음을 알려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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