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리

by 김미령

고전 문학으로 현대인의 교양서적인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도서관 글쓰기 강사님의 추천 도서였다. 어디 가나 교양서적으로 분류되어 있으니 우리도 읽어보자고 해서 다섯 번째 모임의 선정도서로 지정되었다. 유한한 일생 중 영원한 순간의 반복을 말하는 니체의 “영원회귀 사상”과 표면적인 모습과 본질적인 모습의 간극을 나타내는 “키치”는 작품 전반에 서술되어 소설 속 인물과 사건의 해석에 전제 조건으로 제시된다.

저자 : 밀란 쿤데라

출판 : 민음사

발행 : 2018. 6. 20.

줄거리 : 1984년에 발표된 소설이다. 사랑에 관한 철학적 담론을 담은 작품으로, 미국의 뉴스 주간지 《타임》에 의해 1980년대의 '소설 베스트 10'에 선정되었다. 삶의 무게와 획일성에서 벗어나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외과 의사 토마시와 진지한 삶의 자세로 운명적인 사랑을 믿는 여종업원 출신 테레사, 자신을 둘러싼 정치적·사회적 속박으로부터 철저히 자유롭기를 원하는 화가 사비나, 그리고 사비나의 애인인 대학교수 프란츠. 4명의 남녀를 통해 펼쳐지는 서로 다른 색깔의 사랑 이야기가 주된 줄거리이다.


정말 읽기 힘든 책이었다. 어려운 내용은 둘째치고 도덕적으로 소설 속 모든 인물의 사랑은 외도로 직결된다. <토마시>의 성에 대한 끊임없는 탐욕적인 욕구는 읽는 내내 미친놈 같았다. 자유 예술가(화가) <사비나>의 방향성 잃은 정치적 신념과 인간관계 속 신뢰를 가볍게 저버리는 행동은 괴팍한 예술가의 변덕으로 읽혔다. 책을 읽으며 독서회 회원들과 잘근잘근 씹어야지 했다.


그러나, 웬걸 다른 분들은 “뼈 때리는 명언이 많다. 진짜 안 읽어 봤으면 어떡할 뻔했나? 너무 감동적이다.”라며 칭찬 일색이었다. 아…. 큰일이다. 좋은 말은 준비 안 했는데 싶어 당황스러웠다. 다행히 작품을 읽다 보니 니체가 궁금해져서 추가 자료로 니체에 관한 책을 읽어 독서회 때 입은 벙긋거려 보았다. 이 책에 자주 언급된 "영원회귀와 키치"에 대한 각자의 관점에 열띤 논의가 재미있었다. 역시 대작인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책의 제목과 사건, 인물의 설정, 추가적인 니체의 사상은 형이상학적 논의를 풍부하게 하고 모두를 현학적인 즐거움으로 몰입하게 만드는 책이었다. 소설 속 인물의 키치적 삶과 현실 속 자신의 키치의 모습. 무거움과 가벼움을 벗어날 수 없는 현실적 자아에 대한 고민 등 풍부한 해석과 대화가 오갔다. 모두들 “어디 가서 이런 말을 해 보겠냐?”며 독서회에 대한 소중함을 확인하며 뿌듯해했다. 나 역시 다른 곳에선 얘기할 수 없는 인문학적 대화의 공간인 독서회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긴 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것 역시 키치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가벼움이 가득한 나의 모습에서 일주일에 한 번 문학 작품에 대해 윗눈썹에 약간 힘을 주며 교양적인 태도와 지적인 갖춤을 표현하는 나의 모습. 평소의 내가 아닌 숨겨진 나의 모습을 하나 꺼내는 것. 가벼움에 가려진 나의 무거움을 들어내는 것도 자아적 키치가 아닐까?

영원회귀와 키치에 중점을 두고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독서록을 쓴다.

김미령

무겁게 물속으로 내려앉는다. 차갑고 어두운 물속에서 눈을 뜬다. 일렁이는 빛에 눈이 아린다. 실같이 가늘고 긴 먼지가 느슨하게 아래로 대롱거리는 전등. 멀건 녹두 물색의 벽지가 서서히 시야에 또렷이 들어온다. 둥글고 짧은 식탁 다리가 보이고 그 위로 먹다 남은 소주와 지난밤, 편의점에서 산 만두가 놓여있다. 만두는 전자레인지에 데운 후 개봉하지 않아 포장 비닐 속에 물 방물이 맺혀 있다. 몸을 반쯤 일으켜 세운다. 앉은뱅이 자세로 엉덩이를 뒤쪽으로 이리저리 움직여 벽에 등을 기대어 앉는다. 딱딱하고 차가운 시멘트벽의 온도. 담배를 찾아 불을 붙인다. 깊은 호흡으로 당겨진 담배 연기 덩어리가 목을 넘어가는 느낌. 넘긴 연기 덩어리를 길게 허공으로 내뱉는다. 다시 뿌예지는 허공.

탁! 탁! 탁! 계단 바닥에 떨어진 슬리퍼가 탄력적으로 발바닥에 찰싹찰싹 부딪히는 소리가 점점 가깝게 들린다. 담배를 서둘러 눌러 끄고 창문을 활짝 연다. 반쯤 남은 소주병을 들고 가게 출입문을 열어 하수구 구멍 틈으로 쏟아 버린다. 세수하지 않은 메마른 얼굴을 거친 손으로 세수하듯 비빈다.

“아빠, 오늘도 가게에서 잤나?” 노랑, 파랑, 분홍의 양이 가득 그려진 잠옷을 입은 내 아들. 승수의 볼록한 배를 보니 웃음이 난다. 어린 아들을 앉아 올려 눈을 맞춘다.

“그러네. 아들 엄마랑 잘 잤어? 밥 먹고 유치원 가야지?”

오늘도 물 차는 뒷바퀴 비닐 주머니에서 물이 줄줄 샌다. 물차가 가게 앞에 멈춘다. 예약한 생선들을 가게 어항으로 옮긴다. 물과 함께 어항으로 쏟아져 내려 이리저리 어항 속에서 균형을 잡으려는 생선들. 빠르게 헤엄쳐 다니는 눈꺼풀 없는 생선들의 눈동자. 어항 뚜껑을 닫는다. 물차 기사와 담배를 나눠 피며 새로 어항에 채워진 생선들을 멍하니 쳐다본다. 어젯밤 마신 소주의 숙취로 갈증이 올라온다. 편의점으로 흐느적흐느적 걸어 들어간다.

“형님, 안녕하십니까?”

“어이, 최 사장. 아이고 냄새. 어제도 마셨네. 니 맨날 그리 술을 마시고 우짤라고 그라노? 간이 견디나? 조심해라. 내처럼 니도 50줄에 앉아 봐라. 매일 자고 일어날 때마다 몸이 다르데이. 그리 몸 함부로 쓰면 어느 날 훅 간데이. 도대체 일주일에 술 안 먹는 날이 며칠이고?”

“형님, 일주일은 무슨. 한 달 동안 술 안 먹는 날이 며칠이냐고 물어 보이소?”

“내 참! 그래 며칠이고?”

“대충 3~4일?” 얼음 사이사이로 꽉 찬 청포도 에이드의 초록색이 햇빛에 청명하다.

점심 장사 시간이 다가온다. 뜰채를 어항에 조용히 밀어 넣자 물고기들이 이리저리 움직인다. 녀석들도 안다. 잡히면 죽는다는 걸. 뜰채에 담겨 잡아 올린 생선이 물을 튀겨가며 퍼뜩 거 린다. 살고자 하는 몸부림. 도마에 녀석을 올려놓으니, 붉은 아가미가 확 열린다. 몸에 붙은 모든 지느러미를 쭉 펴고 움직이며 온 힘으로 죽음에 저항한다. 눈꺼풀 없는 녀석의 눈동자가 죽는 순간 나를 각인하지 않도록 면장갑을 낀 손으로 생선의 눈을 눌러 가린다. 칼로 아가미 밑 대가리 끝부분에 칼을 깊이 쑤셔 넣는다. 우지직하고 뼈가 칼에 짓눌려 잘려나가는 감각이 뚜렷하다. 대가리가 떨어져 나간 붉은 피가 도마 위로 진하게 흘러나온다. 필사적이던 모든 움직임이 사라진 생명. 배를 가르고 피가 섞인 내장들을 칼로 긁어낸다. 아나고(붕장어)를 잡아 올린다. 못에 녀석의 대가리를 쑤셔 박아 끼운다. 우지직 눈동자 바로 아래쪽 뼈에 못이 단단하게 걸리며 관통하는 소리와 감각이 느껴진다. 못에 꽂힌 녀석은 아파서 온몸을 이리저리 높게 비틀어댄다. 아가미 밑으로 칼집을 살짝 넣어 긴 몸통의 중간 부분을 장갑 낀 손으로 눌러 잡고, 비늘 없는 녀석의 껍질을 한 번에 주욱 벗겨 낸다. 높게 올려진 내 손에 녀석의 껍데기가 축 늘어진다. 붉은 살덩이와 미끈거리던 껍질이 속살과 분리되며 흐르는 피가 녀석의 긴 몸에 묻어 있다. 내 머리가 잘려나가지 않고 정신이 온전한 상태에서 머리가 못에 꽂혀 피부 껍데기가 벗겨진다면…. 단번에 머리가 잘려나간 녀석들보다 고통스러울 것이다. 생선들의 피를 말끔히 씻어 정리한 후 얇게 포를 뜬다. 인간의 상여처럼 수북하게 올려진 하얀 무 위에 색이 선명하게 예쁜 꽃을 놓아 장식하고 생선들의 사체가 올려진다. 내가 뽑아낸 피만큼 손님들은 붉은 초장을 생선의 살에 묻혀 자신의 혀와 입으로 넣고 삼킨다. 점심시간이 끝나 갈 무렵, 생선들의 피가 고인 머리들이 파란 플라스틱 통에 가득하다. 살았을 때나 죽었을 때나 똑같이 둥근 그들의 눈꺼풀 없는 눈동자. 나를 쳐다보고 있다는 망상 속 소름. 손잡이를 잡아 음식물 쓰레기통으로 우르르 쏟아버리는 생선들의 내장, 머리, 뼈와 살. 빈 플라스틱 통에 묻은 찌꺼기를 물로 헹구고, 냉장고에서 소주를 한 병 꺼낸다. 잔에 소주를 가득 부어 내 몸으로 옮겨 붓는다. 수많은 죽음 위에 서 있는 나의 삶. 내가 매일같이 죽여 모은, 날 것들의 고통 위에 선 내 생명의 시간들. 매일매일 반복되는 죽임의 순서와 정리.

내 몸 구석구석 배인 비릿한 사체의 냄새. 하루도 무엇인가를 죽여보지 않은 날이 없던 나. 내게 아이가 생기지 않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생명을 탄생시킬 수 없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러나 신의 장난처럼 결혼 10년 만에 아내는 임신을 했다. 밝은 조명 아래 태어난 아이는 생명력을 가득 담고 힘차게 울었다. 칼을 든 내 손이 아이를 더럽힐까 무서웠다. 내 저주받은 죽음의 손길이 아무 죄 없는 아기에게 닿아도 되는지 의심스러웠다. 승수가 자라면서 또렷이 뜨여지지 않고 늘 반쯤 감긴 졸린 듯한 눈이 이상했다. 대학병원 소아과 전문의가 승수는 눈꺼풀의 근육이 선천적으로 소실되어 태어났다고 한다. 아이가 좀 더 크면 엉덩이나 허벅지 근육을 주기적으로 조금씩 떼어 눈꺼풀에 이식해야 한다고 했다. 죽을 때까지!

늘 술을 먹으니 적당량의 알코올은 내 피에 섞여 소멸한 적이 없다. 술이 든 육체와 저녁 장사를 준비한다. 또다시 죽임이 반복된다. 하루치 죽음의 무게가 끝나면 소주를 꺼내 내 몸속에 말라가는 알코올을 다시 채워 넣고 잠이 든다. 매일같이 반복되는 꿈. 깊은 바닷물 속으로 잠기는 꿈은 늘 어둡고 차다. 영원회귀 같은 살생의 내 삶. 내 삶 위에 세워진 내 아들의 삶. 오늘도 건배를! 무겁게 가라앉는다. 깊이를 알 수 없는 물속으로 끝도 없이 내려앉는다. -끝-


독서회에서 낭독된 나의 글이 다른 회원들께 좋은 반응을 일으켜 기분이 좋았다. 타인의 평가로 나의 기준이 흔들리지 않기를 바라지만, 늘 주변의 평가에 산호의 촉수처럼 반응하는 나의 이 가벼움을 어찌하면 좋을까?


* 글 속 인물들의 이야기는 사실을 바탕으로 재구성되어 독서회 회원들과 관련이 없음을 공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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