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리

by 김미령

《천 개의 찬란한 태양》 낡고 두꺼운 책을 도서관에서 대출받았다. 오른쪽 겉표지 아래에 소개된 “뉴욕 타임즈 선정 24주 베스트셀러” 유명한 책이었구나. 도서엔 누군가의 낙서가 있고, 누렇게 변색 된 내지에, 헌책방 입구에서 나는 냄새도 풍겼지만, 500페이지가 넘는 이야기는 퇴근 후 잠을 줄여서 읽을 만큼 매력적이었다. 이야기의 구성이 촘촘해서 생동감이 넘치고, 가슴 아리고 설레는 남녀의 사랑도 감동적이다.

그러나 아직도 계속되는 아프가니스탄의 내전 속 고통받는 사람들과 오래된 종교적 차별에 내던져진 학대받는 여성들의 삶과 보호받지 못해 올바른 성장이 힘든 어리고 여린 생명의 아픔에 마음이 무겁다. 이번 독서록은 소설로 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도서명 : 천 개의 찬란한 태양

저자 : 할레드 호세이니

번역 : 황은철

출판 : 열림원

발행 : 2014.03.14.

줄거리 : 전쟁과 내전, 종교로 핍박받는 아프가니스탄의 두 여성의 삶이 중심 내용이다. 극한 상황 속에 고통받는 여성의 삶을 현실적으로 무게감 있게 표현해 놓았다. 힘든 현실 속에도 사랑은 존재하며, 극한 삶을 이어가는 힘이 된다. 과거에서 현대까지 이어진 아프가니스탄 국민의 고통은 지금도 비참하다. 전쟁은 너무나 많은 것을 파괴하고 사라지게 한다. 여전히 힘겨운 삶을 견디는 그들에게 평화가 오기를...


독서회는 2주간 같은 책으로 모임이 진행되며, 2주가 지나면 새로운 리더의 추천으로 선정도서도 달라진다.

이번 주 모임엔 새로운 회원인 영인 님이 참석하셨다. 영지의 소개로 참여하게 되었고. 일정한 참석인원 수가 모임의 동력에 중한 요인이 된다는 의견이 있어, 고정 멤버를 지향했던 처음 취지와는 다르게 신규 회원을 반갑게 맞이하게 되었다. 새로운 인연은 늘 나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좋은 인연으로 오랜 시간 함께하길 바라는 맘이 크다.


소설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은 아프가니스탄의 내전과 종교로 차별받아 힘든 여성의 삶이 중심 내용이어서, 회원들의 발문은 자연스럽게 여성차별에 관한 내용으로 이어졌다.

오늘은 민족의 대이동이 있는 설 명절을 2주 앞둔 평일이다. 명절엔 우리나라 대부분의 가정에서 조상을 기리는 제사를 지낸다. 유교 문화의 전통인 “제사”는 한국 여성들에게 성차별적 상황과 가족 간 갈등의 뚜렷한 원인이 되기도 한다.

리더의 글이 첫 번째로 낭독된다. 영지의 글 속엔 결혼해서 처음 맞이한 설 명절을 보낸 일화가 소개되었다. 6명의 시누네가 도착할 때마다 부지런히 상을 차리고 치우기를 반복하던 일이 정말 힘들고 짜증 났다고 하니, 효진 님이 음식 만들고 차릴 때 옆에서 끊임없이 잔소리하는 시어머니는 최악이라고 훈수를 놓는다. 집안 남자들이 먹고 사라진 식탁에 음식을 좀 더 챙겨와 그들이 먹고 남은 음식을 이용한 여자들의 식사는 정말 충격이었다는 효진 님의 발언. 효진 님의 친정은 집안에 식구가 적어 다같이 동시에 식사를 하다가 결혼 후 얼굴도 모르는 늙은 남자들이 남긴 음식을 먹는다는 것에 거부감이 들었다고 한다. 자신이 떠온 밥과 국으로만, 명절 내내 식사를 했다고 했다. 오늘이 첫 모임인 영인 님은 종갓집 종손, 장남의 며느리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이 구역 올~킬 이다. 시어머님이 독실한 교인이라 남편이 결혼 전 미리 얘기한, 한 해 11번의 제사는 크게 걱정하지 않고 용감히 종갓집 며느리로 입성했더니, 세상 웬걸 교회에 다니시는 시어머니는 절만 안 하실 뿐 종갓집 11번의 제사는 모두 시어머님의 손을 거쳐 이루어지는 집안 행사였다고 한다. 제사 음식을 부지런히 준비하시는 시어머니와 함께한 세월이 17년. 달력은 온통 시댁의 제사 일정 동그라미로 채워졌다고 했다. 시간이 흘러 시아버님께서 돌아가시고 권력의 이동은 자연스럽게 시어머니께로 옮겨졌고, 시어머니는 제사 없는 종손 집을 속전속결로 선언하셨다고 한다. 그 순간 얼굴 모르는 영인 님의 시어머니는 최고의 여성으로 빛났다. 전원 엄지 척!

우리나라 전통문화 속 제사는 아프가니스탄의 내전과 이슬람 종교 아래 행해지는 여성 인권 차별에 비하면 작고 가볍다. 그러나 자신에게 직접 행해지는 차별과 고통은 타인의 힘겨움보다 진실하고 무거운 것이니까.

독서회의 화제가 책 내용과 비교해 너무 인류애적이지 못하다는 의견이 있어 대화의 범위를 최대한 넓혀 창세기 전부터 이루어진 여성차별의 역사를 알아보는 대화로 모임은 끝맺음 되었다.


모두가 어떤 경우에서든 평등할 순 없지만, 최소한 어떤 이유로도 차별받진 않아야 한다. 그런 사회가 가능하다면 세상이 지금보다는 조용해지지 않을까? 머리에 띠 묶고 주먹 웅켜쥐고 큰 소리로 우리의 목소리를 들어 보라는, 누군가의 호소가 차별과 부조리가 아니라면, 그들은 목에 핏대 세워 확성기로 분노하지 않아도 된다.

이번 주 내가 준비한 독서록은 소설이었고, 분량 제한을 조금 넘겨 준비하여 낭독했다. 글을 다 들은 회원님들이 다음에 이야기를 좀 더 늘려 긴 소설로 써 보아도 좋을 것 같다는 의견을 주셨다. 내가 작가가 된다면 꼭 그리 해 보리라 작게 결심해 본다.



김미령

땀으로 흥건한 손바닥. 손가락에 힘을 주어 잡고 있지만, 조금씩 미끄러지는 손잡이. 허벅지가 터질 듯하고, 머리에서 시작된 땀은 이마를 지나 속도감 있게 귀 옆으로 주르륵 흐른다.

“아이고 영식아, 고마 뛰래이. 그거 죽었데이. 죽었어. 요래 더운 날, 그리 뛰다가 니가 먼저 죽겠다 ” 여기저기서 죽었다는 소리가 들린다. 달리는 속도를 늦추고 고개를 살짝 돌려 아래를 내려다본다. 그물 속 녀석이 축 늘어져 있다. 속도를 늦추고 자세히 보니 녀석은 진짜 힘없이 처져 있다. ‘죽었네. 내 심장과 허벅지 중 뭐가 먼저 터질까?’ 쿵쾅거리는 심장과 다리 경련에 정신이 없다. 고기잡이 뜰채 속 뱀은 흙먼지에 덮여 무늬가 희미하다. 땀으로 젖은 내 얼굴엔 승자의 미소가 퍼진다. 동네 어른이 다가와 300원에 팔아 라고 한다. 어림없지. “아재요, 600원 이라예.” 몇몇 동네 아재들이 순서대로 다녀갔고, 흥정에 성공한 나의 바지 주머니엔 돈이 두둑하게 채워져 있다. 전쟁에서 승리한 장군처럼 집으로 돌아왔다. 어머니는 늘 입던 하얀 한복을 오늘도 곱게 차려입고 대청마루에 앉아계신다. 땀과 흙에 젖어 지저분한 나를 보며 우물 쪽으로 시선을 옮겨 “아이고, 이 녀석. 어서 씻어라” 하셨다. 어머니는 늘 조용하고 아름다웠지만, 생기가 없었다. 이유 없이 눈물 가득 고인 슬픈 눈을 자주 내게 보이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머니가 나를 사랑하긴 하셨는지 모르겠다.


벽에 걸린 미인도처럼 곱던 어머니는 어느 날 사진으로 내게 남았다. 내가 어머니의 장례식에 슬펐는지, 눈물은 흘렸는지 기억도 없다. 향내가 짙은 어머니의 장례식이 끝나고, 처음 보는 할머니가 내 손을 잡았다. 손과 얼굴, 목에 주름살이 가득한 할머니는 어머니와 내가 살던 집보다 몇 배나 큰 집으로 나를 데리고 들어가셨다. 마당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은 할머니께 허리 숙여 인사했다. 성인 남자와 여자들, 그들을 닮은 아이들이 가득한 방에서 할머니는 나를 품에 꼭 안고 말씀하셨다. “이 아는 내 손자가 맞다. 함부래 업신여기지 말그라. 내 막내아들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다. 내 손자다.” 내 인생에서 가장 따뜻했던 짧은 유년기는 할머니의 그늘 속에서 행복했다. 아버지가 예쁜 기생과 보낸 여러 날 중에 내가 생겼고, 지체 높은 동네 유지의 막내아들인 아버지는 혼외 자식인 나를 인정하지 않았고, 폐병으로 젊은 나이에 죽었다. 아버지가 인정하지 않은 나를 할머니는 손자로 품어 사랑해 주셨다. 할머니는 이미 주름살이 너무 많았고, 그 주름살이 몇 개 더 깊어진 어느 날 내게 사진으로 남았다.

할머니가 사진이 되던 날, 나는 태어나 처음 보는 이모라 하는 사람의 손을 잡고 고향 거제도를 떠나 부산으로 왔다. 부산이라는 낯선 도시, 낯선 사람들, 그 낯섦이 익숙 해지기도 전에, 고모라는 사람의 손에 이끌려 마산으로 왔다. 그곳에서 나를 향한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과 폭력이 시작되었다. 고모부라는 사람은 술을 먹으면 나를 미친 듯이 밟았고, 어린 나는 매일 식모처럼 밥을 하고 빨래를 하며 살았다. 어느 날 눈물을 흘리며 이모가 찾아와 “겨울인데 옷이 이리 얇으면 우리 새끼 추워서 우짜노”하며 시장에서 내복을 두 벌 사서 주고 가셨다. 새 옷이 좋아 아끼며 품에 안고 자던 그 옷은 고모네 자식들의 내복이 되었다. 이모가 내복을 사주며 떠나던 날, “영식아, 미안하다. 내가 형편이 이래가 너를 키울 수가 없다. 어린 니가 고생이 많데이. 시어머니만 죽으면 내 꼭 너를 데리러 올끼다. 그때까지 쪼매만 참고 기다리래이”하며 꼬깃꼬깃 접은 돈과 이모 집 주소, 전화번호가 적힌 종이를 손에 쥐여 주며 사라졌다. 추운 겨울날 갈비뼈 아래쪽이 아프고 몸에선 열이 끓었다. 그 몸으로 차가운 물에 씻어야 할 고모네 가족들의 빨래는 늘 태산 같았다. 몇 번의 계절을 반복적으로 보내고, 고드름처럼 날카롭고 차가운 그곳을 도망쳐 나왔다.

이번엔 내 손을 잡은 여자는 아무도 없었다. 나 홀로 부산행 버스를 탔다. 이모가 있는 부산으로 가고 싶었다. 아무 연락 없이 방문한 이모 집 대문 앞에선 그릇이 깨지고 있었고, 남자의 욕설과 여자의 울음소리, 누군가 맞는 소리가 들렸다. 발걸음을 반대 방향으로 돌렸다. 내 삶의 방향은 어느 쪽인지 알 수 없었다. 아무렇게나 잡아 탄 버스는 바다 위 다리를 건너 영도라는 곳을 달리고 있었다. 열린 창문으로 내 고향 거제도와 비슷한 냄새가 났다. 적당한 곳에 내려 방향 잃은 걸음으로 걸었다. 이발소 출입문 앞에 “숙식 제공. 보조 이발사 구함”이라는 글자가 보인다. 자고 먹는 것. 내게 가장 중요한 숙식 해결은 나를 이곳에 머물게 했다. 이발 기술을 배우면서 온종일 구질구질한 노동을 하며 터무니없이 적은 월급을 받았지만, 성인이 된 나를 이제 때리는 사람은 없었고, 다행히 타고난 손재주로 이발 기술을 빨리 익혀나갔다.


시간이 지나 나는 작은 가게를 장만하고, 단골도 제법 생겨 행복했다. 희망과 미래를 마음에 품어 봤다. 잠깐의 좋은 시절이 지나고 남자들에게 장발이 유행하고 나의 수입은 점점 떨어지기 시작했다. 월세와 직원들의 월급이 무서워 가게를 접고 아르바이트 식으로 일용직 이발사 생활을 한동안 했다. 얼마 후 미용실이라는 간판이 보이기 시작했다. 남자가 여자들이 가는 미용실에 들어가고 남자 이발사가 여자 머리를 손질 해주는 것은 내겐 너무 낯설었다. 나는 여자들의 파마와 긴 머리 손질을 못 했다. 다시 보조 미용사로 일을 배우기 시작하며 새로운 기술을 익혔다. 조금씩 삶에 안정감이 느껴지고 다시 내 가게를 할 수 있었다. 행복을 꿈꾸는 날들이 많아졌고, 미래를 위해 너무 열심히 살던 나는 버스 첫차로 자주 출근을 했다. 평소와 같았던 그 날, 건널목을 건너는 내게 교통사고가 났다. 버스와 부딪힌 나는 섬세한 가위질이 불가능한 손을 가지게 되었다. 내 삶은 빛이 보이는가 싶으면 어둠으로 갇힌다.

그쯤 이모께 연락이 왔다. 몸이 많이 아프다고 하셨다. 보고 싶다고 중요한 말이 있으니 꼭 찾아오라고 했다. 이모께 연락을 받아도 사는 게 힘들다는 핑계로 찾아뵙지 않았다. 이미 이모부는 흙이 되셨고, 이모 얼굴이나 한 번 보고 오려고 병원에서 퇴원하던 날, 이모를 찾아갔다. 늘 깔아 놓은 듯한 이불에서 무겁게 일어나 앉은 이모는 주름살이 었다. 어머니가 살아 계셨다면 이런 얼굴이었을까? 하고 생각해 본다. 까슬하고 앙상한 이모의 거친 손이 소중한 빛을 잃어버린 나의 손을 잡는다. 이모는 더 늦지 않아 고맙다며 내게 봉투를 내민다. “언니가 남기고 가신 거야. 내가 이걸 꺼내 놓으면 시댁 식구들이 뺏을까 봐 무서웠다. 힘들고 어린 너에게 주면 지키지 못할 것 같아서 오랜 시간 동안 내가 손에 꼭 쥐고만 있었다”라고 했다.

오랜만에 찾은 고향 거제도. 내가 자란 어머니의 집. 늘 슬픈 눈으로 나를 내려다보던 어머니의 대청마루. 잡풀이 가득한 땅. 어머니가 남기신 땅이다.

시간이 흘러 주변이 많이 변했다. 앞뒤로 도로가 나고 바다가 가까워진 이곳은 사람들의 왕래가 잦았다. 사계절 가족과 연인들이 와서 내 집에 머문다. 대청마루 펜션은 늘 낯선 사람들의 행복이 가득하다.

내가 뱀을 잡아 정신없이 뛰어다니던 그 날의 뱀값처럼 방값을 흥정하려는 사람에겐 정찰제라는 글을 보여준다. 그래도 “사장님, 현금 계산해 드릴게요. 처음으로 온 가족 여행인데, 성수기 방값 이용료가 너무 비싸서….” 라며 내게 부끄러운 웃음을 보이면, 대청마루에 앉은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가격을 흥정해 낮춰준다.

“기분 좋게 가족과 쉬었다 가세요. 여긴 바다가 좋습니다.”


슬프게 곱던 어머니는 나를 많이 사랑 하셨다.

-끝-


※ 모든 글은 재구성하여 쓴 글이며 실재 인물과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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