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숲에 떨어진 오징어 땅콩

몽리

by 김미령

문학의 숲에 떨어진 오징어 땅콩


“안 오나?”

“운전 중. 가고 있다.”

지각이다. 소란스럽게 울리는 알람을 끄고 살짝 자버렸더니 늦었다. 도로 위 신호등이 초록색으로 바뀐다. 자동차 가속 페달에 힘이 들어간다. ‘전방 50m 앞 50㎞ 속도위반 단속 카메라’가 있다는 내비게이션의 안내음성이 나온다. 에~잇!! 차도에 달리는 자동차도 없는데, 힘주어 밟고 있던 가속 페달에서 힘을 뺀다.


글쓰기 수업은 영지보다 내가 먼저 초읍 도서관에서 시작했었고, 뒤에 개강한 연산도서관 글쓰기 수업을 영지한테 수강해 보라고 권유했었다. 그 후 내가 듣고 있던 초읍 도서관 수업이 종강 되고, 연산도서관에서 시작하는 수업을 영지와 같이 시작하려고 계획 중이었다.

그런데 첫 수업을 며칠 앞두고 “이십 만원 문화상품권”이 걸려있는 범시민 독후감 공모전에 나의 맘을 뺏겼다. (돈을 준다고? 아싸!)

나이 46세. 성격은 타고난 변덕스러움과 예민함이 오묘하다. 그 둘을 섞은 짜증 분출이 특기인데, 그 둘을 화로 분출할 때마다 갱년기의 시작이라고 당당히 말하고 다니는 중년여성. 브런치 작가 준비도 하며, 결근 없이 주 5일 출근을 아주 성실히 실천하는 근로자다. 영지에게 나의 현 상황을 알리고, (절대 말할 수 없는 독백- 돈 안 나오는 도서관 수업은) 너~무 아쉽지만 바빠서 연산도서관 수업은 같이 들을 수 없겠다고 미안하다고 말했다.


몇 주가 지났다. 글쓰기 실력은 널브러진 녹슨 깡통이고, 의욕만 충만했던 나는 요란하게 준비한 브런치 작가 신청지원도 떨어지고, 상금이 걸린 범시민 독후감 공모전도 낙방했다. 너덜너덜하고 쭈글쭈글 한 기분으로 영지와 점심을 먹었다. 영지는 연산 시립도서관에 수강 중인 글쓰기 수업이 너무 재미있다며, 강의 내용도 알차다고 같이 듣자고 했다. 준비하던 거 다 떨어졌으니 도서관에 지금이라도 신청해서 같이 글쓰기 수업을 듣자고 했다. 무엇보다 강사님이 30대 젊은 훈남 총각이라고 강조했다.

잔에 가득 든 까만 커피를 무심히 바라보고 있던 나는 “30대? 총각? 훈남?”이라는 세 단어에 초집중. 시선을 영지 얼굴로 재빨리 옮기며 “훈남이라고? 총각이라고? 영지야, 우리 집에 미남 세 명이 있는 거, 알제? 우리 집은 수컷 고양이마저 잘생긴 집이다. 니 확실하제?”라며 눈을 크게 뜨고 영지에게 재차 물었다. 같이 커피를 마시던 은주 언니가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박장대소 웃음을 터뜨리고, 영지는 황당하고 어처구니가 없다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민망스럽게 눈도 깜박이지 않고 또박또박 영지는 나에게 말했다.

“야, 너희 집 아들이랑 고양이는 몰라도, 아저씨는 미남에서 빼야지? 배 나오고 탈모 진행 중인 50대 중년 남자가 뭐가 잘 생겼다고. 강사님은 배 안 나온 총각에 젊음의 30대다. 비교 불가 아이가?”라며 목청을 높였다. 솔직하게 반박할 말이 없다. 50과 30은 좀 그렇긴 하다.

“그래, 가자! 내 총각 강사 쌤 보러 간다. 내가 직접 그 쌤 훈남인지 아닌지 딱 확인하러 간다.”

이렇게 불순한 목적을 가지고 전체 수업의 절반이 지나간 <문학의 숲에서 글을 쓰다>라는 연산도서관 수업에 나는 용감히 수강했다.

첫 대면 수업에 참여해보니, 영지의 말대로 수업 분위기는 좋았고, 강사님은 30대에 배 안 나온 총각이 맞으나, 훈남의 기준은 개인의 취향인 걸로 결론 내렸다.

훈남이면 어찌할 거며, 아니면 또 어찌할 거냐고. 우리의 남자는 백 퍼센트 아니니까 누구 눈이 정답인지 목청을 높일 필요가 없다고 합의했다.

<문학의 숲에서 글을 쓰다>라는 도서관 대면 수업에 참석하기 전 나는 단체 채팅방에 먼저 초대되었다. “학력, 직업, 나이에 대한 공개적인 질문은 금지”라는 공지가 단체 채팅방에 개시되어 있었다. 학력, 직업, 나이는 사회적인 만남에서 여자인지 남자인지 확인 후 흔히 받게 되는 질문들이다. 상대를 알기 위해 묻는다지만, 그 사람이 가진 여러 색을 미처 알기도 전에 뚜렷한 한 가지 색으로 기억될 통속적인 질문이다. 그것을 미리 방지한 강사님의 공지사항은 수강생들이 서로에게 따뜻하고 조심스러운 태도로 다가가는 속도 방지 턱 역할을 하는 것 같았다. 상대를 알아가는 방법과 속도는 오직 수강생 각자가 준비한 글로만 가능했다. 자신의 속도로 보여주고 싶은 만큼 보이고, 알려주고 싶은 만큼 들려주는 관계가 유지되고 있었다. 조심스럽고, 천천히 깊이 있게 서로를 조금씩 알아가는 분위기가 읽혔다.


수업의 형식은

첫째, 매주 강사님이 선정하신 도서를 읽는다.

둘째, 편지, 에세이, 소설 등 각자 자유로운 형식으로 독서록을 작성해서 수업 전 강사님께 메일로 먼저 발송한다.

셋째, 강사님은 전송받은 수강들의 글을 수정 없이 취합하여 수업참여 인원수에 맞게 프린트해 오셔서 수업시간에 배부하신다.

넷째, 각자 완성된 자신의 글쓰기 과제를 차례대로 한 명씩 낭독한다. 모두가 발표를 마친 회원의 글에 대한 단점이나 아쉬운 점을 공개적으로 얘기하지 않는다. 글에 대한 공감을 표하고 서로가 힘이 되는 의견만 주고받는다. 오직 강사님만 비판적 기준을 제시하고 피드백하신다. 수업 중 내가 관찰한 강사님도 수강생들이 글쓰기에 대한 상처가 생기면 어쩌나 하는 마음에서 아주 조심스럽게 지도하신다.

일주일에 한 번 자신이 준비한 글이 여덟 명의 독자 앞에서 낭독되고, 공감과 긍정의 응원이 돌아오는 경험은 따뜻한 행복이다. 수업은 조용히 흐르는 강물 위로 바람이 불고, 여린 나무에 붙은 나뭇잎이 살랑거리는 봄날의 평온함 같은 시간이었다. 매주 화요일의 글쓰기 수업을 기다리는 내가 되었다.

그리고 오늘 그 불순한 목적으로 시작해서 합류하게 된 수업에 몇 번 참석하지도 않았는데, 종강이다. 지각생인 나는 강의실에 허리를 직각으로 숙여 조심스럽게 걸어 입실한다. 심하게 늦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얌전히 자리에 앉는다. 강사님은 종강의 아쉬움과 수업시간마다 열정적인 참여와 따뜻한 공감이 가득했던 분위기에 대한 소감과 마지막 감사의 인사 말씀을 하고 계셨다.

최영지님 박종은님 박미옥 님 완출 입니다. 와, 대단하십니다. 김미령 님도 중간부터 오셔서 수업 시작일부터는 완출 입니다. 하하. 이런 경우는 무척 드물죠. 중간에 오신 분들은 대부분 다시 안 오시더라고요.” 나에게 모든 시선이 잠깐 집중되는 듯해서 가벼운 미소를 지어 본다. 이 수업에 영지가 없었더라면 중간에 수업에 참여하지도 끝까지 출석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마지막 수업이라 이번 주 과제는 그동안 함께한 시간에 대한 소감과 전체적인 평가가 글쓰기 과제였다. 소감문은 A4 반장 정도의 분량으로 오늘 수업참여 전 미리 강사님께 메일로 보내게 되어 있었다. 수강생들은 자신의 글과 다른 회원들의 글도 함께 출력된 여덟 장의 프린트를 나눠 받는다. 회원님들의 글 속엔 지난 수업에 대한 좋은 추억과 아쉬움이 가득했다. 매주 화요일마다 자신을 연산도서관에 변함없이 데려다준 버스 기사님께 감사하다는 미옥 님, 작가가 어릴 적 꿈이었고, 국문학을 전공했으며, 딸도 글을 쓴다는 종은 님, 코로나 사태로 요즘 힘들고 새로 산 집의 가격이 내려가서 사는 게 아직 어두운 터널 같다는 가희님, 여전히 글쓰기가 너무 싫고 어렵지만, 수업은 너무 좋았다는 효진 님, 좋은 사람들과 다양한 책을 같이 읽으며 자신의 사고영역을 넓일 수 있는 기회가 되어서 좋았다는 영지, 피아노를 가르치는데 오랜만에 글쓰기 수업을 듣는 학생 입장이 되어 본 경험이 좋았다는 희영님, 마지막으로 수업을 통해 글쓰기에 재주가 없다는 걸 객관적으로 알게 되었지만, 여전히 글을 쓰고 싶은 생각이 든다는 나.

차례대로 수강생들의 글이 발표되고 희곡처럼 쓰인 나의 글이 마지막으로 낭독된다. 남편과 실제로 있었던 대화를 참고하여 완성한 과제다. 글을 읽다 보니 몇 주 전 글보다 회원들의 반응이 좋다는 느낌이 든다. 수업에 참여하면서 글을 잘 쓰지 못하는 내 실력을 인정했고, 현실을 마음으로 받아들인 후 쓴 마지막 글쓰기 과제는 지난 과제들에 비해 편하고 쉽게 완성되었다. ‘멋지게 적으려고 욕심을 내어 쓰다 보니 글 속에 과도한 부사 사용이 많다’라는 강사님의 피드백이 있었다. 그 때문에 깔끔한 글로 완성되지 않는다는 지적을 나는 뼈에 담았다. 그 후 적절한 부사 사용에 신경을 써서 글을 썼다. 예전의 글보다 읽기 편한 글이 되었다. 패션도 시크하게 꾸안꾸(꾸민 듯 안 꾸민 듯) 패션이 더 멋스럽다는데, 글도 그래야 하나 보다. 자신에게 어울리는 멋을 모르고 무작정 흉내 낸 화려함은 부자연스러움이 가득해 보는 이가 불편하다. ‘내 글도 많이 불편한 글이었구나!’ 하는 깨달음이 있었다.

저번 주 수업시간에 종강 기념으로 다 같이 식사하자는 의견이 있었다. 종강을 기념한 점심 식사는 도서관과 가까운 파스타 집으로 예약되어 있었다. 화이트 색감으로 단정히 꾸며진 식당 내부는 건물 밖에서 예상한 것보다 단정하게 예뻤다.

식사 전 강사님과 수강생 모두 마스크를 벗는다. 삼 개월 동안 매주 한 번씩 만난 사람들인데 마스크를 벗은 얼굴은 무척 낯설다. 강사님이 “우리 초면이죠?” 하니 모두가 웃음이 나온다. 코로나 감염이 두려워 착용한 마스크 때문에 길거리에서 아는 사람과 스쳐 지나쳐도 누군지 알아볼 수 없는 상황이라며, 우리도 밖에서 보면 알아볼 수 없겠다는 대화가 오고 간다.

하얀색 넓은 접시 위에 담겨 나온 파스타와 피자는 먹음직스러웠다. 도서관 수업은 끝났지만, 회원들끼리 따로 모여 독서회를 이어 가면 좋겠다는 의견이 대화의 주를 이룬다. 나는 피자를 오물거리며 상황을 지켜보는데, ‘오호, 여기 분위기 심상치 않네’라는 생각이 스친다.

아쉽게도 오후 출근이 있어 나는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야 한다. 강사님과 그동안 함께한 회원들께 인사하고 식당을 나온다. 근무처로 이동하는 동안 예상치 못한 이 흐름에 기대감이 생긴다. ‘절반은 늦게 시작한 만남에도 어떠한 이유가 있을 거야. 이런 게 운명이지.’라는 생각을 하며 도로를 달린다.

출근 후 퇴근만 기다리는 노동의 시간에 “카톡” 알람이 울린다. 단체 카톡방에선 지속적인 독서회 참여에 동참자를 모집한다는 내용이 올라와 있다. 4명 이상이면 지금과 같은 형식으로 강사님 없이 우리끼리 모여서 해보자고 한다. 예상보다 많은 인원으로 나를 포함한 6명이 빛의 속도로 동참의견을 올린다. 나도 “저요! 저요!” 하며 큰 이모티콘을 보낸다. 일사천리로 독서회모임 장소와 다음 모임에 읽고 올 책까지 정해진다. 휴대폰을 켜고 빨간색으로 “화요일 오전 10시 독서회모임” 하루 전 알람이라고 설정하고 입력 저장했다.


기분 좋은 예감이 든다. 나는 은쟁반 위에 오징어 땅콩 같은 글쓰기 실력이지만, 계속 글을 써 보겠다는 결심을 한다. 언젠가는 옥구슬이 되어 반짝일 날이 오겠지! 사실 안 와도 어쩌겠는가? 오징어 땅콩이 부서지지 않고 은쟁반 위에 굴러만 다녀도 다행이라고 토닥인다. 자세히 보면 스낵 오징어 땅콩엔 작은 무늬도 있고, 고소한 땅콩도 비밀처럼 숨기고 있다. 나는 그런 글을 쓰고 싶고, 속이 텅 비지 않은 오징어 땅콩을 맛있게 응원한다.

얍! 얍! 얍! 찹! 찹! 찹!



내가 완성한 이번 주 과제는 담백한 일기 같다.


경주 가는 길

김미령


남편 : 영아, 안전벨트 메고, 오늘 가는 데가 어디라고?

나 : 경주 운곡서원에 겁나 큰 은행나무 볼낀데, 오후에 비 온단다. 걱정이네.

남편 : 아직은 날씨 괘안네. 영아, 이번 주에도 도서관 갔다 왔나? 그 수업 언제까지라 했지?

나 : 응, 인자 끝난다. 다음 주가 종강이고, 마지막이라고 같이 파스타 먹는다더라.

남편 : 저번에 과제 하드만, 냈나? 뭐라하데? 쌤이 잘 적었다 하제?

나 : 못 적었단다.

남편 : 진짜? 설마?

나 : 진짜다. 신경질 터지니까 자꾸 물어보지 마라. 내가 볼 땐 잘 적은 것 같은데, 아닌 갑더라. 읽기 어렵단다. 은쟁반 위에 옥구슬이 아니라 오징어 땅콩이란다.

남편 : 에헤이, 그 샘 뭘 모르네. 오징어 땅콩이 얼마나 맛있는데? 그라면 그 디저트 작가도 이제 안 할 거가?

나 : 아이고, 내 참 브런치다. 헷갈리나? 오빠 디저트는 …

남편 : 안다, 안다. 디저트나 브런치나 그서 그지!

나 : 다르거든.

남편 : 그라면 브런치 작가는 포기하는 거가?

나 : 포기가 아니고 작가를 선택 안 하는 거거든. 몇 달 동안 도서관 다니면서 재미있었지. 과제 한다고 인터넷 쇼핑몰 잘 안 들어가가 이것저것 많이 안 샀다 아이가.

내는 글 쓰는 게 어렵거나 싫지 않고 재미있더라고. 그런데 잘 쓰지는 못 하는 갑더라. 그래도 잘 모르는 사람들이랑 책이랑 작가 얘기도 하고 진짜 작가처럼 글 쓴다고 고민도 하면서 재미있었다. 그러면 됐다. 작가 할 꺼라고 내가 포기한 여러 가지 취미들을 이제 다시 찾아서 할끼라. 내가 오빠랑 결혼한다고 3억 명의 남자들을 포기했다 아이가? 작가 한다고 포기한 많은 기회를 다시 생각해 볼꺼다. 인생은 선택이 아니라 무수히 포기한 것들의 집합인 기라.

남편 : 영아, 과제 쓸 때 금방처럼 그렇게 적었나? 그라면 사람들이 읽기 어려웠겠다. 무슨 말이고?

나 : 뭐라카노? 마 빨리 식당가가 맛있는 밥 먹고 노란 은행나무 단풍이나 보러 가자.

남편 : 영아, 마 좋게 생각해라. 어차피 12월부터 매일 골프 강습받고 출근도 하는데, 도서관 갈 시간도 없다.

나 : 맞제? 신의 계신갑다. 근데 오빠 ‘김 여사의 골프 입문기’라고 글 한 번 적어 보까?진짜 그래 보까 싶기도 하데이.

남편 : 금방은 또 안 한다드만, 역시 우리 와이프 변덕변덕!

나 : 히히 맞제.


3번 카메라 차 뒷모습을 비추고 차는 단풍길 도로를 달리며 멀어진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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