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발등 찍기 금지

몽리

by 김미령

화장대에 앉아 베개에 눌린 머리카락을 드라이로 펴면서 독서회 모임 장소에 가는 길을 머리로 상기시켜 본다. 다이소 앞 도로에서 직진이었나? 우회전인가? 에잇 헷갈린다. 역시나, 길치인 나는 길이 헷갈린다. 똑같은 길을 몇 번이나 달렸는데 아직이다.

서점 앞에 주차할 자리가 있어 요리조리 기어를 조절하며 차를 움직이고 있는데, 멀리서 걸어가는 영지가 보인다. 곧이어 가방을 들고 서점 쪽으로 뛰어가는 중년의 여성도 보인다. 뒷모습이라 누군지 모르겠지만, 독서회 회원일 것이다. 나도 차 문을 닫고 가볍게 달린다. 모임이 반복될수록 참여하는 나의 마음이 설렌다. 소설의 인물과 내용, 작가에 대해 누군가와 얘기한다는 것. 한 권의 책을 같이 읽고 여러 사람의 다양한 생각을 듣고 대화할 수 있다는 것이 매력적인 모임이다. 여기가 아니면 얘기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다. 까끌까끌한 노동으로 일상화된 생활 속에서 먹고사는 것과 무관한 이야기가 오가는 만남. 나의 친정 아빠가 아시면 ‘그거 한다고 쌀이 나오냐? 돈이 나오냐?’ 했을 두 시간의 대화는 아직 내 삶에 여유가 있음을 나타내는 지표가 된다. 따라가듯 휩쓸려 시작한 모임이었는데,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


일주 만에 다시 본 회원들은 서로의 안부를 묻고 커피를 준비하고 서로가 정성스럽게 완성한 독서록 종이가 손에 들려있다. 준비한 글을 인원수별로 나눠 주며 작은 테이블에 의자를 당겨 앉는다. 오늘 모임의 선정책은 《슬픈 카페의 노래》다.

저자 : 카슨 매컬러스

번역 : 장영희

출판 : 현대문학

발행 : 2007.11.25.

줄거리 : 소설 속 등장인물을 사시와 폭력 범죄자, 꼽추로 설정하여 그들이 풀어내는 기이하고 독특하며, 독창적인 사랑을 표현하고 있다. 일반화된 사랑을 비틀어 놓은 러브스토리가 책을 덮으면 감동이 되어 기억된다.

사랑에 대한 소설이다 보니 회원들의 첫사랑 이야기가 하나둘 나온다. 각자가 생각하는 사랑에 대한 기준이 제시된다. 영지는 나가지 않으려고 했던 소개팅 자리에 대타로 억지로 나가서, 첫 만남에 이야기가 통하는 지금의 남편을 만나게 되었다고 한다. 만나지 못했을 지금의 남편은 공무원이다. 진짜 확실하게 꽃을 단단히 피웠다. 무궁화로

반려견을 산책시키며 알게 되어 썸 타는 관계를 가지게 된 호연님의 썸남은 만나고 보니 곧 군대 갈 남자였다고. 썸만 타다 국가로 보내버리고, 다시는 만나지 못하게 되었다는 민식 씨를 기억해 냈다. 종은 님은 사랑은 사람하고만 하는 게 아니라서 자신이 얼마 전에 구매한 반려식물에 대한 글을 준비해 오셨다. 이름도 따로 지었다며 ‘봄이’라고 했다. 식물도 ‘사랑해’라는 말과 클래식을 들려주면 싱싱하게 잘 자라고 꽃도 예쁘게 핀다 해서 첫아이 태교하는 기분으로 예쁜 화분에 옮겨 담아 키우고 있다고 하신다. 뭐든 키우는 건 관심과 따스한 손길이 필요한 일이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식물이든 나의 영역으로 들어오면 나의 숨결과 시간으로 가꾸어야 하는 정성이 된다.


나의 이번 주 《슬픈 카페의 노래》 독서록은 내가 생각하는 사랑의 신뢰를 에세이 형식으로 기록해 보았다.


내 발등 찍기 금지

김미령

《슬픈 카페의 사랑》 노래라고 글을 입력한다. 입력하는 동안 책 제목이 좀 유치하다고 생각했다. 도서관 검색 창에 찾는 도서가 없다고 한다. 친구의 카톡을 확인한다. 착각이다. 책 제목은 《슬픈 카페의 노래》다. 다시 검색한 도서는 청구기호가 843 매 874슬이다. (뭐래?) 낯선 청구기호처럼 소설 속 사랑 이야기는 아름답지 않았고 어색했다. 마지막 장을 덮으며 ‘이건 진짜 소설 속에서만 가능한 이야기다’라고 생각했다.

사시의 아밀리아와 폭력적인 메이시, 꼽추 라이먼의 사랑은 균형이 맞지 않는 시소처럼 한쪽으로 심하게 기울어져 있다. 너무 높거나 낮아 불안이 가득한 상태의 사랑이다. 아밀리아는 자신에 비해 너무나 보잘것없고, 이기적이며 비열한 라이먼에게 어머니와 같은 사랑을 베푼다. 희생적인 사랑이다. 메이시는 자신과 가장 비슷한 모습의 남성적인 여성인 아밀리아를 사랑한다. 이성의 또 다른 자신을 사랑한 형태다. 나르시시즘적 사랑이다. 꼽추 라이먼은 자신이 가질 수 없는 크고 힘이 넘치는 육체와 폭력성을 갖춘 메이시를 사랑한다. 자신의 결핍이 충족된 상대에 대한 동경의 사랑이다.


흔히들 사랑을 핑크와 빨강으로 표현한다. 사랑스럽고 행복한 “핑크”, 서슬 퍼런 복수와 분노의 “빨강”. 소설 속 사랑은 색맹인의 눈으로 본 핑크와 빨강 같은 사랑 같았다. 작가는 삐뚤어지고, 안정감 없는 사랑을 독특한 인물과 사건으로 서술한다. 사랑은 하나의 문장으로 정의할 수 없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 수만큼이나 다양하다. 옳고 그름의 판단도 사랑 앞에선 경계가 모호 해진다. 그러니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말도 있는 거다.

아밀리아가 희생적으로 사랑한 라이먼은 그녀가 생각하는 작고 연약한 존재가 아니었다. 약삭빠르고 상대를 이용하고 탐욕스러운 난쟁이 인간이다. 작품 속 아밀리아와 함께한 동네 이웃들은 알고 있었다.

남성미 넘치는 메이시가 사랑한 아밀리아는 메이시가 기대하고 상상한 사랑을 주지 않았다.

꼽추 라이먼이 사랑한 메이시도 라이먼이 받고자 하는 사랑을 라이먼에게 주지는 않는다.

소설 속 인물들은 자신이 사랑하는 마음 자체를 즐기고 사랑하며, 현실 속 상대를 자신이 바라는 상상 속 인물로 투사해 그리워하고 사랑한다. 그들의 기이한 외형과 마음처럼 그들의 사랑 또한 기이하고 삐뚤어진 모습이다.


아주 이상하고 이기한 사람도 누군가의 마음에 사랑을 불 지를 수 있다. 의미 없는 말만 지껄이는 미치광이도 누군가의 영혼 속에 부드럽고 순수한 목가를 깨울지도 모른다.


책을 다 읽고 다시 이 책의 첫 부분을 읽으면, 이 문장들은 새롭게 읽힌다. 사랑을 해 본 사람은 안다. 누군가에게 지른 자신의 불이 예고도 없이 꺼지거나, 조심스레 깨운 목가가 어떠한 이유로 더럽혀질 수도 있다는 것을 말이다. 내가 책 제목을 정확히 인식하지 못해 헤맸듯이 누구나 자신의 눈으로 보고 기억한 것들이 진실이라 믿지만, 오판인 경우도 많다. 참이라 여겼던 사랑이 참이 아닐 때, 내가 상대를 보며 소망하고 상상한 사랑이 다른 모습으로 자신에게 현실화할 때, 사람들은 ‘내가 생각한 사람과의 사랑이 아니다. 이런 건 내가 원하던 사랑이 아니야.’라고 탄식한다. 이 말의 속뜻은 ‘내가 내 발등 찍었다.’라는 거다. 잘못 찍은 발등이 아파 죽겠다는 후회가 가득한 현실에서 괴롭다는 이야기다. 내가 어설픈 사랑으로 정신 못 차릴 때 주변에서 해주던 충고가 뒤늦게 진리처럼 인식되는 시점이면 더는 답이 없다. 상처 줄 만큼 주고, 입을 만큼 입은 쌍방과실이 된 상태다.

사랑은 마주 보는 것이 아니라 같은 방향을 바라보아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가끔은 서로를 마주 볼 때도 있다. 그 순간 상대의 모습이 낯설어진다면 너무 오랫동안 상대를 쳐다보지 않았다는 거다. 상대가 나에 대한 사랑이 변화하는 모습을 놓쳤고, 사랑하는 대상이 변화하는 모습도 놓쳐 버려 예전과 다른 모습에 몹시 당황했다는 거다. 사랑은 서로를 마주하는 경험과 같은 곳을 바라보는 것의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 마주한 서로의 모습이 고와 편하게 온전히 받아들이는 여유가 있어야 한다. 나와 손잡고 걷는 현실 속 익숙한 상대가 과거와 미래에도 동일하게 존재한다면 나의 사랑은 행복이다.

어느 날 서로가 집힌 불을 서로의 목가에게 따뜻하게 나누며, 온기로 가득 채울 수 있는 사랑이 실체화되어야 사랑이라 부를 수 있지 않을까? 사랑은 가슴 아픈 갈구가 아니다. 사랑은 서로에 대한 보살핌이 있고 쓰다듬이 있는 부드러운 손이 스친 경험이고 실존이다. 어느 봄날의 고양이 낮잠처럼 평온하고 조용한 쉼이 있는 사랑이 곱다.

- 끝-


내 글을 보고 “투머치라고 얘기하고 두 번 읽을 글은 아니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냐, 이해가 안 되는 글”이라고 얘기하는 회원이 있었다. 독자 입장에서 매우 아쉬운 글이라고 했다. 당황스러워 하마터면 직진의 나의 성격이 그대로 상대에게 폭격기처럼 날아갈 뻔했다. 그러나 나의 글에 대한 다른 회원들의 긍정적인 반응으로 나의 감정은 서행 운행하다가 정확한 정지선에서 멈췄다. ‘모임에서 내가 준비한 글은 독자를 생각하는 작가의 글이 아니다. 두서없이 편히 내 생각을 얘기하고, 나누어 보는 경험의 즐거움이 좋아 참석하고 가볍게 일기처럼 글을 써 준비해 온 글이다. 당신이 나의 독자일 필요가 없다. 작가들의 합평 시간이라고 착각하느냐? 당신의 글은 너무 보편적이고 정형화되어 식상하다. 나도 식상한 당신의 글은 두 번 읽고 싶지 않다’라고 얘기하려고 했지만, 모든 걸 참았다.

순간적인 감정의 높은 파도를 잠재우기가 나에겐 너무 힘들다. 참고 나면 그 순간을 제압하지 못한 억울함에 내가 바보가 된 듯해서 꽤 오랜 시간 화가 지속된다. 곱씹고 곱씹어 감정의 땅굴이 지구 핵까지 도달할 정도다. 흔히들 얘기하는 뒷. 끝. 작. 렬. 이 나의 밑 인성이다. 하루와 반나절의 시간을 더 가진 뒤, 나도 몇 달 전 처음 보는 사람에게 공개적인 모욕을 준 일이 생각났다. ‘그래, 돌고 돌아 그 화살이 내게 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독서회에서 느낀 분노가 가라앉는다. 인과응보라고 생각한다. 감정적 대립에서 늘 지지 않으려고 하다 보니 잡음이 나는 일들이 많았다. 한 번 참고 넘기는 게 어려워 표현하고 나면 두세 개의 일들이 도미노처럼 일어났던 상황들이 있었다. 멈추지 못했던 나의 숱한 분노들을 되돌아본다. 독서 모임에서 나를 모욕한 사람에게 나의 화를 되돌려 정확하게 타격하는 것은 내겐 일도 아니지만, 그러고 나면 독서회를 잃을 것이다. 따뜻한 분위기를 차갑게 만들었으니 그에 대한 책임이 나에게 따라오겠지. 얻는 것보다 잃게 되는 것이 많다. 이번은 참고 넘겨야겠다고 결심한다.

이런 계산을 할 수 있을 때까지 많은 세월의 시간이 필요했다. 나의 20대 30대는 이런 생각의 틀과 여유가 없었다. 나의 상처 난 자존심만 돌보려 했다. 상처에 연고를 바르다 말고 앉으려 하는 딱지를 떼어 흉을 남긴 일들이 스친다. 내가 잃었던 친구들 내가 끊어낸 인연들을 되돌아본다. 후회는 한숨이 되어 나온다. 일주일 후 그 회원과 또다시 같은 테이블에 앉아 같은 공간에서 같은 공기로 숨을 쉬겠지만 괜찮다. 이젠 괜찮다.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짧아지고 머리 위 흰머리도 익숙해진 나의 시간은 중년에 와 있다. 더는 인연의 후회가 남지 않기 위해 정성을 다할 시간이 되었다. 나이가 많아지면 남아있는 사람끼리 친구가 되어 어울린다고 했다. 나를 화나게 했던 그 회원의 생명 시간이 나와 비슷하더라도 친구가 될 확률은 꽤 낮다고 생각된다. 그의 관상은 장수할 관상이었다. 가꾸어 보자 인연의 밭을. 나의 인연 밭엔 아직 채우지 못한 공간이 많다. 나의 덕 없음이 후회스럽다.

지금보다 많은 시간이 지나 내 인연의 밭에 활짝 핀 꽃들이 가득한 모습을 상상해 본다. 참 보기 흐뭇할 것이다. 봄날에 만개한 벚꽃처럼 마지막 순간까지 고울 것이다.


※ 모든 글은 재구성하여 쓴 글이며 실재 인물과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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