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 모

몽리

by 김미령

<2023 원북 독서동아리 모집> 선정된 독서동아리는 부산 원북원 도서를 읽고, 도서에 대한 활동을 일정한 양식에 맞게 작성하여 도서관에 제출해야 한다. 그래서 몇 주 전 배부받은 부산 원북 도서 『단어의 집』은 이번 주 선정도서가 되었다.


도서 : 단어의 집

저자 : 안희연

출판 : 한겨레

발행 : 2021.11.24

줄거리 : 《단어의 집》은 저자가 아끼는 단어들에 관한 에피소드를 시인의 감성으로 엮은 책. 사회적 문제의식이나 삶에 대한 통찰 같은 무거움보다 편안한 감성이 가득하다.


<변모>라는 단어를 선택해서 독서록을 완성해 보았다.

변 모

김미령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다고 서울로 온 지 6개월….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확실한 결과를 만들어 보겠다고 상경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내 손에 든 깃발을 정확히 꽂을 수 있을까?'라는 불확실함만 커져 간다. 내가 확신할 수 있는 건 합격이 아니라 불안감의 수직곡선이다. 젠장!!

세수 후 느껴지는 얼굴 건조함도 날이 갈수록 심해진다. 내 삶도 그러하다. 청춘의 유희가 언제였던가? 극장에서 마지막으로 본 영화가 기억이 안 난다. 쩍쩍 갈라진 논바닥처럼 황폐함으로 찌들어가는 내 청춘의 시간에 합격의 단비는 언제 일까? 합격은 멀어도 고시원 앞 마트는 가깝다. 로션도 떨어지고 일용할 라면도 구입해야 하니 마트나 다녀와야겠다.

“어서 오세요. 오늘까지 브랜드 세일 40%입니다.”

오호, 이수라 화장품이네.

“저기요~로션은 얼마예요?”

“네 고객님 오늘 기초 5종 제품 세트로 구매하시면 추가 할인 5% 더 해드려요. 세트로 알아봐 드릴까요?”

“아니요. 그냥 로션만 주세요.”

“아. 네. 만원입니다.”

“ 마트 포인트 적립도 할게요. 아, 잠깐만요. 여기 속눈썹 2천 원이에요?”

“네. 유통기한이 다 되어 서요. 드릴까요? 진열된 지 오래되었지만 상품은 좋아요. 따로 접착제도 필요 없고요. 잘 떨어지지도 않고 눈썹모도 좋은 거예요.” 본드 없이 그냥 붙는다고? 신기하네. 세상은 날로 발전하는구나. 그래, 마스카라 살 돈은 없어도 2천 원은 나도 있지.

“로션이랑 같이 주세요”

아~우, 날씨는 이렇게 좋은데 오늘도 고시원에서 공부만 해야 하는구나. 이번엔 꼭 합격해서 화창이 극에 달한 주말에 소개팅해서 키 크고 잘 생긴 남자친구도 사귀어서, 손잡고 유채꽃, 벚꽃, 장미꽃 다달이 구경도 다녀야지. 꿈은 아름답고 완벽하게 꾸는 거지. 이루어질 나의 꿈을 위하여. 자~ 정신 차리고. 하자! 공부!

한참 고개를 숙이고 공부했더니 목 고개가 뻐근하다. 시간을 확인했더니 벌써 새벽 1시. 내일은 수업이 없는 토요일이지만 규칙적인 생활 리듬과 체력 관리는 수험생의 기본이니 이젠 자야겠다. 휴대폰 알람을 오전 6시로 맞추고 5분 간격 3회 추가 알람설정 후 침대에 눕는다.

아랫배가 묵직해서 일어나 보니 아침 9시다. 뭐지? 알람이 안 울렸나? 내가 끄고 잤나? 갑자기 짜증이 확 올라온다. 핸드폰에 알람을 현재 시각으로 설정해서 확인해 보니 소리가 안 난다. 아우, 미쳐버리겠네! 고장이다. 액정 필름지에 긁힘도 많고, 휴대폰에 달아놓은 인형도 색이 벗겨져 있다. 어느덧 6년이 된 휴대폰. 이제 슬슬 고장 날 시긴가보다. 아침을 대충 챙겨 먹고 서비스센터에 다녀와야겠다. 샤워 후 로션을 찾아 바르려고 하는데, 어제 산 속눈썹이 급 생각나네. 어디다 뒀더라? 포장 그대로 바닥에 던져놓은 속눈썹이 보인다. 저걸 붙이고 학원 갈 생각을 하니 손발이 오글거린다. 오버다. 그곳은 이 아이가 있어야 할 곳이 아니다. 에잇. 토요일 기분도 낼 겸, 조금 있다 서비스센터 갈 때 속눈썹을 붙이고 가야겠다. 거울 앞에 앉아 속눈썹을 섬세하게 붙인다. 이쑤시개로 꼭꼭 눌러 섬세하게 붙여 본다. '오호, 잘 붙었네' 완벽해.라고 생각하며 고개를 숙이고 머리카락을 말린다. 물로 뭉쳐있던 머리카락들이 보슬 해진다. 고개를 들어 거울을 본다. 헉!! 이. 럴. 수. 가. 얼굴이 달라졌다. 예뻐짐이 예술이다. 뚜렷한 이목구비, 귀여운 고양이 이미지의 미인이 되어 있네. 머리카락을 손가락 사이에 끼워 한 뭉텅이 잡아당겨 본다. 아야, 진짜네. 꿈은 아닌데…. 뭐임! 이 얼굴. 천상천하 유아독존인데? 속눈썹 상자를 찾아 확인해 보니 유통기한이 한 달 남았다. 세상 이런 일도 있구나! 예뻐졌는데, 남자 친구도 없고 갈 곳도 없다. 흥분이 급감된다. 느낌상 ‘한 달 후엔 이 마법의 얼굴은 끝나겠구나!’하는 싸한 기분도 든다. 그래도 ‘자정 12시 신데렐라보단 기네’라고 생각하며 고시원을 나온다.


고장 난 휴대폰을 손에 쥐고 신호등이 바뀌길 기다리고 있는데, 건너편 코너에 사람들이 꽤 많이 모여있다. 꿍짝꿍짝 음악소리도 요란하고, 팔이 긴 풍선인형은 반복적으로 팔을 접었다 편다. 또 다른 풍선 인형은 키가 커졌다 작아졌다 난리다. 저긴 얼마 전에 새로 오픈한 프랜차이즈 아이스크림 가게다. 공짜 시식이라도 하나 싶은 호기심에 발걸음을 옮겨본다. 입구엔 “샤이니 아이스크림의 모델을 찾습니다.”라는 플래카드가 보이고 즉석 공개 오디션 중이란다. “1등 아이스크림 광고모델, 2등 5성급 제주도 호텔 숙박권, 3등 최신 삼성 휴대전화기 증정”이라는 광고문구가 보인다. 와~ 3등이면 최. 신. 폰. 이라잖아. 이 얼굴로 도전을 안 할 순 없지. 무대로 올라가서 선다. 나를 포함한 약 20명 정도가 무대 위에 서 있는 듯하다. 심사위원들의 심사가 진행되고, 나를 포함한 최종 5명만 남기고 다 탈락이다. 꼭 이런 식이다. 세 명만 뽑을 거면서 추가로 2명은 왜 뽑아 무대에 세우는 건지. 괜한 기대감은 긴장감을 높인다. 진행자의 빠른 진행으로 최종 3명이 남았다. 세상에 내가 그 3명 중에 있다. 3등은 나다. 휴대폰은 내 것이다. 으하하!

“자~ 1등을 발표하겠습니다. 정은희 씨 앞으로 나와 주세요.” 이런 나라고? 대략 난감하네.

“축하드립니다. 대단한 미인이시네요. 예상하셨나요? 소감 말씀해 주세요.”

“아…. 네 저는 휴대폰만 있으면 되는데, 암튼 감사드립니다. 1등 해도 휴대폰은 주시는 거죠?”

“은희 씨는 유머 감각도 좋으시네요. 자 사진 촬영이 있겠습니다. 여기 아이스크림 3개 주세요. 은희 씨 한 손에 아이스크림 들어주시고요. 다른 미인 분들도 모이세요. 자, 다 같이 스마일” 찰깍!

이렇게 뜬금없이 나의 모델 활동은 시작되었고, 오늘은 소속사 대표와 대면 회의가 있다고 한다. 햇살이 잘 드신 통창 사무실 소파에 앉아 있는데, 검은색 슈트를 쫙 빼 입은 중년의 여성이 문을 열고 들어온다. 그냥 딱 봐도 걸어오는 포스가 대표다.

“안녕하세요. 처음 뵙네요. 은희 씨는 공인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헐~ 이 여성분 굉장한 직진 스타일이네

“네. 글쎄요. 유명한 사람? 아닐까요?”

“공인은 말이죠…. 자기 소멸과 변모가 동시에 가능한 사람이에요. 자기가 원하는 자신이 아니라 대중이 원하는 모습이 되어야 해요. 자기 소멸의 과정을 가지고 대중을 위한 변모를 빠르고 정확하게 한 다면 스타가 되는 거예요. 대중의 방향은 늘 변화기 때문에 스타는 민첩하고 대담한 방향성도 지녀야 하고요. 스타는 개인의 고유성보다 대중이 원하는 독특함에 집중해야 합니다. 은희 씨는 잘하실 거로 생각합니다. 나머지 전달사항이나 계약은 김 비서가 안내할 겁니다. 만나서 반가웠어요. 제가 좀 바빠서. 우리 자주 봐요. 그럼 담에 기회가 되면 또 뵙죠.”

‘이건 뭐지?’ 학원 수업도 아니고 혼자 말하고 혼자 마무리하고 나가네. 학원 강사님들은 수업 종료 전 최소한 질문 없냐고 묻기라고 하는데 말이다. 나는 김 비서님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그곳에 자필 사인을 한다.

SNS에서 나의 인기는 급상승하고 실시간 검색 1위다. 나는 공시생에서 "새로운 별의 탄생 정은희"가 되었다. 의류회사에서 광고 표지모델과 의상 촬영 섭외가 들어왔다. 내가 수락하는 게 아니고 소속사에서 계약 여부를 판단한다. 대표님의 말처럼 나는 자기 소멸 중이었다. 체중 관리를 위해 먹으라는 거만 먹고, 대중적 이미지 관리를 위해 말하라는 것만 말하는 존재가 되어 간다. 오늘은 신상품 촬영이 있다고 해서 이동하고 있는데, 매니저님이 의류광고 촬영 전 얼굴에 경락을 받는다고 한다.

“매니저님 얼굴 경락을 왜 갑자기…?”

“아, 네. 이쪽 분야에서 엄청 유명한 분이시고요. 연예인이라도 예약 없인 관리받기도 힘든 곳이에요. 유명 스타들은 촬영 전에 경락을 꼭 받죠. 순간적으로 얼굴이 날렵해져 턱선이 살 거든요. 뜨거운 음식은 피부의 긴장감을 떨어뜨려 경락의 효과를 감소시키니 촬영이 끝날 때 까진 드시면 안 돼요." 이것도 내 마법의 속눈썹과 비슷하네. 유지시간이 신데렐라 마법보다 짧다는 것만 빼고 말이다. 얼굴경락이 시작된다. 얼굴 위로 바닷가 몽돌들이 여기저기서 굴러 다니는 것 같다. 이거 아프잖아! 아, 아. 윽, 윽.


눈 감고 경락사의 손끝에 초집중되어 있는데, 얼굴 마사지 중 나의 소중한 눈썹을 건드린다. 눈썹 일부가 떨어지는 느낌이 왔다. 순간적으로 몹시 당황한 나는 경락 마사지사에게 엄청나게 화를 내고 얼굴을 가린 채 경락원을 빠져나와 택시를 타고 소속사가 제공해 준 고급 오피스텔로 향했다. 오피스텔에 도착하자마자 거울을 찾아 얼굴을 봤다. 마법이 풀리고 있다. SNS에선 난리가 났다. “정은희 인성 쓰레기, 버럭 은희, 경락마사지사 폭행, 갑질 연예인 줸장, 나는 안 때렸다고. 내가 안 한 일까지 수도 없이 적혀있네. 완전 피곤모드다. 온 세상이 내 욕으로 가득했다. 에~라이 다 때려치워라. 나는 반쯤 붙어있는 속눈썹을 잡아당겼다. 눈커플이 앞으로 당겨져 아프다. 짐을 챙겨 택시를 타고 나의 좁은 고시원으로 돌아왔다. 시끄러운 세상을 뒤로하고 그대로 침대에 누웠다.


배가 고파 일어나 보니 한밤중이다. 화장실 불을 켜고 거울을 본다. 순도 100% 공시생 정. 은. 희. 가 보인다. 싱크대에서 짜장라면과 너구리 라면을 꺼낸다. 라면은 한방에 2개씩 먹어줘야 정은희지. 2주 동안 닭가슴살만 먹었다. ‘이러다 달걀도 낳겠네.’라는 생각을 하며 먹었다. 닭이 될 뻔했다. 라면을 먹으며 큰 소리로 말했다. “안 해 못해. 자기 소멸 지나가는 개나 줘버려라!”

오늘은 늦었으니 라면 후딱 먹고 공부하고 내일은 일찍 서비스센터에 가야겠다.

나에겐 아직 고장 난 휴대폰 한 대가 남아 있고, 이루어야 할 목표가 분명하다. 꽂아야 할 깃발이 펄럭인다.


변모 : <명사> 모양이나 모습이 달라지거나 바뀜. 또는 그 모양이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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