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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벗 Apr 30. 2024

말의 문을 열다.

자신만의 장벽을 뛰어 넘는 것.

유년 시절, 나는 심각한 ‘선택적 함구증’을 앓았다. 중년이 되어서야 알게 된 사실이다.. 티비에서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모 육아 프로그램을 통해서였다. 사춘기나 갱년기처럼 아동기에 잠깐 왔다가는 불안장애라고 했다. 웬일인지 그 요상한 불청객은 대문 밖을 나서면 말문을 단단히 걸어 잠궜다. 누군가 벙어리냐고 물어봐도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가족들과의 의사소통은 전혀 문제가 없었기에 그 누구도 나의 어려움을 알아채지 못했다. 심지어 나조차도 그랬다. 그저 말수가 적고 숫기 없는 성격 탓이라고만 생각했다. 하필이면 이런 유전자를 물려준 어느 조상님을 그렇게도 원망했다.    

  



하긴 질병이라는 것을 알았어도 달리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그 시절 나는 불안의 장벽에 둘러 싸여 있었다. 일년 중 반 이상을 병원에서 지내야 했던 어머니의 부재는 어린 아이에게 온통 불안이었다. 입원기간이 길어질때면 친할머니가 오셨다. 어린 손자들과 아들을 살뜰히 챙겨 주셨지만 미안한 마음에 아버지는 늘 죄인이 되었다. 가끔 외할머니가 오시기도 하셨다. 당신 딸 때문에 생긴 일이니 당신이 책임지라는 친할머니 성화 때문이었다. 타지역에 살고 계셨던 외할머니는 그런 날에만 볼 수 있었기에 낯설고 어색했다. 어머니가 아플 때면, 아버지는 항상 미안함과 어색함 사이에서 고민하셨지만 가끔 불편함을 택하기도 했다. 잦은 도움에 면목이 없어지는 날이면 아버지 홀로 세상과 장벽을 쉼 없이 넘나들며 어린 자식들을 보살폈다.    

  



사춘기가 되도록 장벽에 둘러싸여 있었다. 다만 키가 자라면서 장벽 너머를 볼 수 있게 되었다. 모든 것이 밝게 빛나는 세상일 거라고 믿었다. 놀랍게도 그 너머에는 아름다운 꽃동산도 있었지만 높은 산과 험한 골짜기도 있었다. 아슬아슬 암벽을 등반하는 사람들의 처절한 신음소리와 깊은 골짜기를 헤매는 이들의 구슬픈 곡소리에 나는 이상한 안도감을 느꼈다. 유독 나뿐이라는 생각은 비단 나뿐만이 아니라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그 무렵 말문이 조금씩 열리기 시작했지만 차마 말로 할 수 없는 것 투성이었다. 아픈 어머니에 대한 연민도 가엾은 아버지에 대한 고마움도 결코 말로 다 할 수 없었다. 사춘기 여린 가슴에 터져나는 말!말! 말들은 활자가 되어 일기장에 소복히 쌓였다. 언젠가 좋은 날이 오면 모두 말할 수 있기를 기도하면서. 만약 그 시절, 글을 쓰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음성 언어로 발산되지 못한 감정과 생각에 잠식되어 질식해 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나의 사춘기는 가열찬 글쓰기로 점철되었다.           




성년이 되면서 고약한 문지기는 완전히 사라졌다. 아동기에 잠깐 왔다 간다던 녀석은 꽤나 오랫동안 그 자리를 지켰다. 그런 탓인지 성년이 되어도 ‘스피치 공포증’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사람들 앞에 서면 심장이 터질 듯 뛰고 호흡은 가파왔다. 말을 하자면 숨을 쉴 수 없었고 숨을 쉬자면 말을 할 수 없었다. 마치 숨길과 말길이 하나로 딱 붙어 있는 느낌이었다. 일본의 저명한 심리상담사 고코로야 진노스케는 ‘말도 안되는 일’ 의 실행만이 인생을 바꿀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피력한다. 나에게 ‘말도 안되는 일’이란 ‘말을 하는 것’이었다. 간호학과를 졸업하고 중환자실 3교대를 해왔던 나였지만 결혼을 하고 외지에서 아이 둘을 키워야 했기에 병원 교대근무를 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더군다나 ‘말을 하는 것’에 대한 도전을 더는 미룰 수 없었기에 병원 대신 간호학원 강사로 지원하게 되었다. 간호학원은 대치동 스타강사가 판을 치는 곳은 아니지만 단 한번의 강의로 평가를 받고 잘려 나가기도 하는 살벌한 곳이다. 대가는 혹독했고 준비를 위한 시간은 촉박했다. 허기진 위장의 뱃고동(stomach horn)소리와 터질듯한 방광의 팽만감 사이에서 열정은 악지스럽게 타올랐다. 고작 한 시간 남짓 쪽잠을 자며 한 끼 식사로 허기를 채웠다. 그렇게 꼬박 한 해를 보냈다. 시간이 갈수록 요동치던 심장은 잠잠해졌고 목소리를 되찾은 인어공주처럼 모든 것이 평온해졌다.       




어느덧 나는 12년 차 소문난 베테랑이 되었다. 멀리서 강의를 듣기 위해 찾아오는 학생도 있으니 그 ‘말도 안되는 일’을 제대로 실행한 셈이다. 하지만 나는 아직 태고적 열병을 온전히 극복하지 못했다. 여전히 말문 앞에 서면 10살짜리 소녀가 된다. 말과 글이 뒤엉킨 세상에서 말로 할 수 없는 것은 글이 되고 글로 할 수 없는 것은 말이 된다. 그러니 말은 글이고 글은 곧 말이다. 말문을 연다는 것은 단순히 성대를 울려 소리를 내는 행위가 아니다. 자신만의 장벽을 뛰어넘는 일이다. 그 너머에 있는 아름다운 꽃동산을 향해 질주하는 일이다. 때로는 암벽을 타고 깊은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결코 장벽 뒤로 숨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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